<건설인문학⑩> 임금노동 … ‘노동을 통한 창조의 본능’을 상실한 인간의 소외
<건설인문학⑩> 임금노동 … ‘노동을 통한 창조의 본능’을 상실한 인간의 소외
  • 이오주은 기자
  • 승인 2016.09.29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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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두 대구대학교 지리교육과 교수

희망의 도시, 어떻게 이론화할 것인가_(1)도시인의 소외와 정의로운 도시

<사물은 인격화, 인간은 사물화>
└ 중세 인클로저(enclosure) 이후 토지는 물상화 되고
└ 생산수단을 잃은 농민들은 도시에서 노동을 팔아 살고
└ 기술과 분업의 발달로 인간의 노동은 더욱 상품화 되고

▲ <사진=픽사베이(Clker)>

2. 근대 도시의 발달과 소외의 근원

▲ 최병두 교수 (대구대학교 지리교육과)

<지난호에 이어> = 근대 도시의 발달에 따른 자연으로부터의 소외는 특히 자본주의 경제와 기술의 발달로 심화된다. 자본주의의 사적 소유와 교환가치의 일반화는 자연으로부터의 소외를 심화시킨다.

사적 소유제로 인한 생산수단으로부터 생산자의 분리는, “인간을 그 자신의 신체 그리고 외적 자연과 정신적 측면, 즉 그의 인간적 측면으로부터 괴리시킨다”(Marx, 1977, 69). 또한 “교환가치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면서 상품(그 사용가치)과의 촉감을 통한 접촉은 사라지고 자연과의 감각적인 관계는 막혀 버렸다”(Harvey, 2014, 389).

자본주의적 기술의 발달은 이러한 자연으로부터의 소외를 더욱 촉진한다.

도구와 기술은 인간과 자연 간을 매개하는 노동의 연장이며 이를 통해 자연과의 효율적 신진대사 관계를 구축할 수도 있지만, 근대사회(도시)에서 기술은 인간에 의한 자연의 대상화와 지배를 가속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이러한 자연으로부터의 소외는 최근 자본과 국가에 의한 신자유주의적 자연 관리(또는 생산)전략에 의해 심화되고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적 ‘환경적 조정’은 자연의 모든 측면들을 사유화, 상품화, 화폐화하고 있다.

공해오염물질의 처리시설에서부터 유전물질의 복제에 이르기까지 자연을 통제하고 관리하고 생산하는 과정은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었다(최병두, 2009b). 또한 자연을 구성하는 무수한 이질적이고 다양한 구성요소들은 상품화와 사유화 과정에서 교환가치로 환원됨에 따라 동질화, 정량화, 추상화되게 되었다.

추상화된 자연은 그 내용물을 상실하고 도구적 기술의 지배 대상이 되지만, 또한 동시에 인간 본성으로부터 소외되고 또한 인간 본성을 소외시키게 된다.

요컨대 자본주의 도시의 발달과 자본축적을 위한 ‘환경적 조정’은 인간과 자연과의 신진대사 관계를 점점 더 자본의 지배하에 두도록 했으며, 이로 인한 자연으로부터의 소외는 결국 인간 본성과 인간 종이 지닌 잠재력으로부터의 소외를 동반한다.

이러한 자연의 구성요소들 가운데 인간 생활과 자본축적 과정에 가장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는 요소가 토지이다. 토지는 기본적으로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의 공여물’이며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고 공동으로 이용하는 공유재로 인식된다.

그러나 사적 소유제의 확립과 이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경제의 발달 과정은 토지에 가격을 매겨서 마치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는 것처럼 물신화시킴으로써 이에 따른 도시적 소외의 주요 근원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공유지의 사유화 과정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전환 과정에서 나타났던 ‘인클로저(울타리치기)’와 이에 따른 시원적 축적 과정에서 대규모로 이루어졌다. - 인클로저(enclosure)는 중세 유럽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던 토지(삼포식 개방경지, 공동 목초지, 황무지 등의 공유지)에 영주나 지주가 울타리를 둘러쳐서 사유지를 삼고 농민을 추방한 일을 말한다. 15세기 말에서 17세기 중엽 영주가 양을 방목하기 위해 농민의 이해를 무시하고 폭력으로 울타리를 친 ‘제1차 인클로저’와, 18세기 초에서 19세기 중엽 대지주들이 의회를 통해 합법적ㆍ개별적으로 울타리를 쳐서 자본주의적 대규모 농장을 만든 ‘제2차 인클로저’로 나뉜다. - <편집자주>

16~17세기 장원체제에서 근대적 토지 소유관계로 전환하면서 자행되었던 인클로저는 토지의 사적 소유관계를 확립시켰을 뿐만 아니라 농노들을 토지로부터 분리시켜 도시의 자유 임금노동자가 되도록 했다.

인클로저는 영세농민들의 토지 이용을 박탈하고 토지를 사적 소유의 대상이 되도록 함으로써 자본의 순환 과정에 투입될 초기자본의 형성에 기여했다. 또한 봉건영주로부터 뿐만 아니라 생산수단(토지)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도시의 임금노동자의 누적을 가능하게 했다.

인클로저와 이를 통한 토지의 사유화와 상품화는 단순히 농촌 공동체의 해체나 장소성의 상실에서 나아가, 생산 및 생존수단으로부터 농업노동자들을 분리시키고 소외를 심화시키는 물상화 과정이었으며, 명목상으로 자유로운 주체가 도시의 노동시장과 자본축적의 객체로 전환되는 소외의 과정이었다(Amaral, 2015).

한편, “인클로저에 의한 토지의 탈취 과정은 자본주의 초기 즉 시원적 축적단계에서 나타났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늘날 대도시에서도 만연해 있다”(Sevilla-Buitrago, 2015; 김용창, 2016). 즉 오늘날 선진국, 후진국을 막론하고 지구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도시 재개발 과정은 이러한 인클로저의 현대판으로 간주된다.

도시재생, 젠트리피케이션 등의 이름으로 전개되는 도시 재개발 과정은, 도시공간의 기존 사용가치 또는 공적 가치를 제거하고 도시의 약자들을 축출 및 배제하여 토지로부터 소외시키는 한편, 토지 그 자체가 마치 가치를 가지는 것처럼 물상화함으로써 더 높은 교환가치와 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는 공간으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현대 도시 공간에서의 울타리치기(인클로저)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도시에서 소외를 유발하는 핵심적 요인은 자연 그리고 토지로부터의 소외와 더불어 ‘인간 노동의 소외’다.

농촌을 떠나온 즉, 생산수단을 상실한 도시의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하여,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임금을 대가로 자신의 유일한 소유물인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팔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자들은 법적으로 자신의 노동력에 대한 사용권을 정해진 기간 동안 임금을 받고 자본가에게 양도(소외)한다. 노동자는 노동계약 기간 동안, 그리고 일반적으로 계약기간 이후에도, 다른 노동자로부터, 자연과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들로부터 멀어질 뿐만 아니라 자신의 노동의 산물에서도 멀어진다. 박탈과 탈취는 노동자 자신의 창조적 본능이 좌절된 데 대한 슬픔과 상실의 감정으로 경험되고 내면화 된다”(Harvey, 2014, 388).

이와 같이 노동력이 양도되기 위해 우선 노동시장에서 노동의 상품화와 화폐에 의한 측정이 전제된다. 이 과정에서 구체적 노동은 시간단위로 계산되는 추상적 노동이 된다.

 

이러한 노동의 상품화는 노동시장에서 평등한 것처럼 보이지만 작업장(즉 생산과정)에서는 불평등한 관계와 소외의 근원이 된다.

상품화된 노동(임금 노동자)은 작업장에서 자신이 받은 임금보다 더 많은 가치 즉 잉여가치를 생산한다. 그러나 그렇게 실현된 잉여가치는 자본가의 이윤으로 전유된다.

이 과정을 촉진하기 위해 작업장의 생산과정은 잉여가치(이윤)의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는 ‘상품의 교환가치 생산’을 중심으로 조직된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생산과정과 이를 통해 생산된 상품들에 대해 아무런 통제권을 가지지 못한다. 상품은 분명 노동의 생산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는 것처럼 신비화, 즉 물신화된다.

‘상품의 물신성’과 이를 매개하는 교환가치는 인간들의 사회적 연계를 사물들의 사회적 관계로 전환시킨다. 

이에 따른 “사물의 인격화와 인간의 사물화”는 노동의 조건이 마치 자율적인 힘을 가지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며, “노동의 물질적 조건이 노동자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그것들에 의해 지배받는 관계”를 만들어낸다 (Marx, 1976, 1054). 노동자는 가치를 생산하지만 자신이 만들어낸 가치에서 소외되고, 노동의 조건으로 지배받게 된다.

이와 같이 자본주의 (도시)사회에서 소외란 개인의 문제,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현상이다. 또한 실제 권력의 문제로 이해된다. 즉 소외는 생산 과정에서의 임금노동에 기인하며, 그 결과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가 사물(상품)들 간의 관계로 전환되고, 이에 의해 지배됨을 의미한다.

자연과 노동의 상품화와 이에 따른 소외는 이들 간의 관계에 개입하는 기술 및 분업의 발달에 의해 더욱 심화된다. 기술은 자연에 개입하는 인간 노동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과정에 투입되는 기술은 노동자의 존재를 풍요롭게도 할 수 있고 또 초라하게 만들 수도 있다. 기술은 분명 노동의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노동에 수반된 고통과 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술 변화의 역동성은 노동자의 권력을 빼앗고 노동의 참여기회를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즉 기술은 자연을 도구적인 방식으로 대상화하고 진정한 노동의 실현 기회를 박탈했다. 이러한 점에서, - 기술 그 자체로는 양면성을 가진다고 할지라도 - 자본축적 과정에서 생산성과 잉여가치의 증대에 동원되는 기술은 자연을 더 많이 지배한다. 또한 이를 위하여 인간의 노동과정, 나아가 인간의 삶 전체를 지배하고자 한다.

특히 산업혁명을 전후하여 ‘장인-도제’ 관계와 주문자 생산에 주로 의존했던 가내수공업에서 대량생산 공장제 기계공업으로의 전환은 노동자들이 기계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뿐 아니라, 단순한 기계조작자이거나 기계의 부속물이 되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공장제 공업의 발달은 노동자를 ‘노동시간의 장소(작업장)’과 ‘비노동 시간(여가)’, 그리고 ‘그러한 장소(일상생활의 장소)’로 각각 분리시켰다.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을 자신의 삶을 위한 것으로 느끼지 않게 되었고, 시계(시간)에 맞춰진 작업장 출근은 도시인들을 소외의 공간으로 들어가도록 했다. 자본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장인의 주문제 수공업을 공장제 기계공업의 조립라인 노동으로 전환시켰으며 이로 인해 노동의 소외는 더욱 증대하였다. - <다음 호에 계속>

정리= 한국건설신문 이오주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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