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인문학⑪> 탈산업사회의 지식노동자… 초국적 자본에 의해 통제될 뿐이다
<건설인문학⑪> 탈산업사회의 지식노동자… 초국적 자본에 의해 통제될 뿐이다
  • 이오주은 기자
  • 승인 2016.10.10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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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두 대구대학교 지리교육과 교수

희망의 도시, 어떻게 이론화할 것인가_ (1)도시인의 소외와 정의로운 도시

▲ 사진=픽사베이

탈산업사회의 지식노동자…
초국적 자본에 의해 통제될 뿐이다


< 첨단기술과 풍요로운 삶은 양립할 수 없다 >
└ 학력 상승, 높은 소비… 육체노동자보다 자유로워 보여
└ 갈수록 복잡해지는 분업체제, 컴퓨터ㆍ사무기기의 노예
└ 분업체계 내의 한 지점에 붙들려 파편화된 객체로 전락


▲ 최병두 교수
(대구대 지리교육과)
<지난호에 이어> = 반면 포드주의에서 포스트 포드주의로의 전환에 따른 유연적 전문화 노동은 ‘인간화된 노동’, 즉 소외가 경감되거나 해소된 노동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주장되기도 한다.

최근 대도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첨단기술의 발달은, 노동과정에서 노동자의 자율성을 확대시키고 나아가 도시인들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할 것이라고 기대하게 했다.

첨단기술 서비스나 지식경제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보통 높은 교육과 지식, 체화된 기능을 가지고 있기에 지식노동지들은 작업장의 육체노동자들에 비해 훨씬 덜 소외된 노동이라고 추정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노동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지식과 기능을 가진 노동 즉, 상당한 책임감과 통제력을 가진 노동과정임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기술이 자본축적 과정에 더 깊게 편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소외는 오히려 더 심화되었다.

첨단기술에 바탕을 둔 이른바 지식기반경제나 창조경제에서는 인간의 창조성(정신적 노동)까지 상품화되고 인간 자신이 아니라 자본의 축적에 기여하도록 추동된다.

달리 말해, 자본주의에서 과학과 지식의 발달과 기술과 정보의 역동성은 ‘인간의 창조성이 상품화ㆍ화폐화’ 될 경우에만 유의한 것으로, 왜곡시킴으로써 자아 상실감을 오히려 촉진하고 인간의 실존적 영역을 축소시킨다.

이러한 기술혁신의 궤적은 노동자의 풍요로운 삶에 대한 희망과 양립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기술의 발달은 이에 내재된 도구적 합리성과 이를 추동하는 기술관료적 계획에 의해 도시적 소외를 촉진한다. 하이데거의 주장처럼,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술은 과잉 발전했고 과잉 가치화되어 있다.

이러한 점에서 르페브르는 “과잉 가치화된 기술에 내재된 위험”을 인지하고, 근대 기술의 본질적 위험을 기술적 생산물이나 과정에서 찾기보다는 특정한 재현양식 또는 그가 명명한 ‘틀지우기’(enframing)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즉 기술의 위험은 자연의 물리적 파괴만이 아니며, ‘틀지우기’(enframing)가 모든 다른 재현 양식들을 배제하게 되는 세계 그리고 공간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기술관료적 (도구적) 합리성에 바탕을 둔 이러한 공간의 재현은 단순히 자본주의적 사회적 관계의 물신화된 표현이라기보다 “체험된 경험에 대해 무서운 환원적 권력을 휘두르는 추상화”의 기술로 기능한다(Lefebvre, 1991b, 52).

그 예로, 기술관료적 합리성에 바탕을 둔 공간의 재현은 오늘날 도시공간의 계획과 재편이 도시인의 삶을 배제하고 자본과 권력이 지배하는 추상공간을 만들어 내도록 한다.

이러한 점에서 현대 도시의 소외는 생산수단의 소유와 임금노동에 기반을 둔 소외라기보다 노동에 활용되는 기술관료주의적 속성에 더 많이 근거를 둔다고 주장될 수 있다.

한편, ‘기술의 발달’이 자연과 인간 간의 노동과정에 물리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을 고도화하는 것이라면, ‘분업의 발달’은 노동과정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기 위해 사회적 관계를 조직하는 방식을 체계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분업은 인간의 개별적인 신체적, 정신적 조건에 근거를 두고 육체적 노동과 정신적 노동 간 사회적, 기능적 분화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자원 분포의 지리적 차이에 근거하는 생산의 지역적 특화와 이에 따른 생산물의 교환, 즉 노동의 공간적 분업도 생산성의 증대와 경제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했다.

하지만 공간적 분업 역시 생산과 소비의 공간적 분리, 생산체계의 공간적 분화, 그리고 이에 따른 교환에 전제되는 사적 소유와 상품화의 촉진 등을 통해 자연과 노동의 소외를 심화시켜왔다.

우선 사회공간적 분업의 발달은 특정 지역에 특정한 생산과 소비를 촉진함으로써 생산 지역의 자원 고갈과 소비 지역의 폐기물 누적을 초래한다.

생산과 소비의 사회공간적 분리는 특정 집단이나 지역에서 생산된 상품이 다른 어떤 집단이나 지역에서 소비될 것인가를 알기 어렵게 하고, 또한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이로 인해 생산자는 소비에 대해, 소비자는 생산에 대해 소외되도록 한다. 즉 노동의 분업은 생산과정에서 투입되는 노동과 자연의 능력을 착취하는 것이고, 이들의 존엄성을 박탈함으로써 이들로부터의 소외를 심화시킨다.

오늘날 노동의 사회공간적 분업은 생산체계의 분화로 더욱 촉진되고 있다. 즉 상품의 생산체계가 원료 생산에서 부품이나 중간재의 생산, 그리고 완제품의 생산에 이르는 다양한 단계들로 분화되고, 특히 상품을 기획하고 연구ㆍ개발하는 구상기능과 상품을 직접 생산하는 실행기능 간 분화가 촉진되고 있다.

이에 따라 사무실 공간에서 구상기능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은 작업장 공간에서 실행기능을 담당하는 육체노동자들에 비해 노동의 물리적 강도는 약화되고 노동 시간과 이에 대한 자율성이 어느 정도 보장된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그러나 공장노동자들이 기계의 부속품처럼 노동하는 것처럼, 오늘날 사무실 노동자들도 컴퓨터와 각종 전자사무기기에 의해 억매인 노동을 하고 있다.

요컨대 노동자들은 갈수록 복잡해지는 분업체계 안에서 자신이 생산하고자 하는 상품이 무엇인지, 누구를 위해 생산을 하는지를 알지 못한 채, 분업 체계 내의 한 지점에 붙들려서 파편화된 객체로 전락하게 된다.

이로 인해 노동자는 고립ㆍ개별화되고, 경쟁에서 서로에게 소외되며, 전체에 대한 느낌이나 의식을 상실하게 되었다. 분업의 사회공간적 확장으로, 지역적 불균등과 사회적 불평등은 더욱 커질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소외는 더욱 깊어가고 있다.

 

3. 후기 자본주의 도시와 소외의 심화

산업 자본주의에서 후기(탈산업) 자본주의로의 전환은 과연 소외를 완화시켰는가 또는 더 심화시켰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Archibald, 2009).

일부 학자들은 작업장에서 소외된 노동이 오늘날 높은 소비 수준에 의해 보상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력의 상승과 기술의 체화로 노동과정에 대한 노동자의 통제력이 증가함에 따라 소외가 점차 줄어들거나 사라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탈산업사회로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소외가 줄어들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심화되었다는 증거가 더 많다는 주장도 있다.

후기 자본주의적 도시화 과정에서 소외가 더욱 심화되었다. 우선 지구-지방화 과정에서, 생산체계는 지구적 규모로 확장ㆍ분화되고, 각 지역의 생산과 소비는 지구적 거리로 멀어졌을 뿐만 아니라, 초국적 자본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는 점에서 나타난다.

도시인들은 생산수단뿐만 아니라 생활수단들이 상품화되면서 소외된 소비로 내몰리게 되었고, 소외된 생산과 소비는 물질적 부문뿐 아니라 비물질적 부문(다양한 생산자 서비스 부문과 과학, 지식, 정보, 이미지 등의 생산과 소비)으로 확대되었다.

또한 과잉축적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자본과 국가의 신자유주의적 전략은 금융화와 건조환경을 통한 ‘탈취에 의한 축적’을 만연시켰고, 이에 따라 도시적 소외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즉 후기 자본주의 사회와 도시에서 노동자들은 노동시장과 작업장에서 피고용자의 지위 향상이나 노동조건의 개선으로 소외를 줄였다기보다는 여전히 실업과 고용 불안을 겪고 있다.

이러한 노동의 소외에 더하여, 자본주의 경제(분업체계)의 지구-지방화, 소비 및 여가, 나아가 일상생활 전반의 상품화, 비물질적 생산과 소비의 역할 증대, 도시 건조환경을 통한 자본 순환의 확대, 금융자본의 발달과 도시공간의 금융화 등에 의한 소외가 중첩적으로 가중되고 있다. 

우선 자본주의 경제의 세계화 또는 지구-지방화로 인해 상품뿐만 아니라 자본과 노동이 세계적으로 유동하게 되었다.

생산과 소비 간 관계, 생산체계의 각 부문들 간 연계, 그리고 자본과 노동 간의 관계가 세계적 규모로 확장되었고, 이에 따라 소외의 조건은 지구적 맥락으로 확장되었다.

또한 자유무역과 세계 시장의 통합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는 국가간 교역을 가로 막는 모든 장애들을 제거함에 따라 생산과 소비 간의 물리적 거리를 지구적 차원으로 확대시켰다.

소외란 단순히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느끼는 소원함은 아니다. 생산과 소비 간 물리적 거리의 확장은 상품의 기능적 관계를 강화시킴으로써 사회적 관계가 상품들 간의 관계로 치환되는 것을 더욱 촉진한다. - <다음 호에 계속>

정리= 한국건설신문 이오주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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