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 명시되어야 할 ‘도시에 대한 권리’
헌법에 명시되어야 할 ‘도시에 대한 권리’
  • 이오주은 기자
  • 승인 2016.09.06 2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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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명시된 OO…” 식의 표현, 쓰지 않은지 꽤 오래된 것 같다. 법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어서인지 국가를 믿지 못하게 된 까닭인지. 그러다 간혹 취재를 하면서 “헌법에 OO이 제정돼 있다…” 라는 말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새삼 실감할 때가 있다.

작년 이맘때였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서 기획한 국제컨퍼런스의 주제는 ‘보행권’. 스위스에서 온 국제보행자연맹 사무총장 크리스티안 토마스(Christian M. Thomas)는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스위스 교통정책 패러다임의 변천사를 소개하면서 “스위스는 일찌감치 국민투표를 통해 보행권을 헌법으로 보장했다”고 말했다. 무려 1970년대의 일. 강력하게 뇌리에 박혔다. 일종의 문화적 쇼크였으므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가 아니라 “사람이 적어도 자동차보다는 소중해…”, 꼰대 같을지 모를 기자에게는 당연한 상식이 대한민국의 어디를 걸어 보아도 수호되지 않고, 거의 매순간을 폭주기관차 같은 각종 ‘차’에 시달릴 때마다 그 때 그 스위스 할배의 한마디가 떠오른다.

이번엔 다른 이야기.
지난 8월 22일, 일과를 마치고 퇴근한 저녁 문래동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문래동에 와본 적이 거의 없었음을 깨닫고 도시농업이나 예술인마을 등 공동체의 새로운 이슈가 다양했던 문래동의 정서를 채집해가며 목적지를 찾아 헤맸다.

서울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랍게 허름한 2층 건물에 숨어 있던 목적지에서는 (사)문화도시연구소 정기황 교수의 강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발표용 프로젝터만 밝힌 어두컴컴하고 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붙다 못해 바닥까지 가득 채워버린 사람들의 그림자가 한가득. 우선 놀랐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온 것인지.

정기황 교수는 “도시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매우 열띠게 설명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학생으로 돌아간 듯 취재가 아닌 청강 모드로 강사의 한마디 한마디를 새겨들으면서 또 한 번 문화충격을 받아야 했다. “브라질 헌법에 명시된 도시권”이 그 발단이었다. - 우리는 브라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남미 최초로 올림픽을 치룬 나라, 아님 룰라 대통령(Lula, 2003~2010)의 나라? 

브라질은 1988년 세계 최초로 ‘도시권’(The Right to the City)을 헌법으로 제정했다. 도시에 대한 권리를 보증하는 수단(제182조/183조)과 주거권 및 참여예산제도 등이 포함됐다고 한다. 이후 브라질에서는 국가도시개혁 포럼을 통해 헌법을 구체화할 도시법 제정운동을 펼쳤고, 그 결과 2001년 「도시법(City Statute)」이 제정됐다.

쉽게 예를 들자면 소유권에 조응해 사용권을 부각시킨 것이다. 소유권보다 사용권, 단편적으로 토지를 사용하지 않는 소유자보다 사용하는 거주자의 권리가 존중받는다고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물 전기 난방 취사연료 등 생존과 직결된 공적 재화는 경제력(지불 능력)과 무관하게 공급되어야 한다는 도시 서비스의 정책 방향도 제시하고 있다.

도시에 대한 권리, <도시인권헌장> 제정 운동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프랑스 리옹과 낭트, 캐나다 몬트리올 등 전 세계 수백 개 도시로 확산됐다. 2010년 UN은 세계도시포럼에서 <도시에 대한 권리>를 선언했다. 경제적ㆍ사회적ㆍ환경적으로 포용하고 지속가능한 도시화, 이른바 ‘포용도시’ 어젠다(agenda)이다. 도시권은 아직 추상적이다. 그러나 앞서 열거한 도시들의 사례를 들여다보면 어느 정도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더워도 더워도 그렇게 더울 수 없었던 2016년 8월, 다락을 닮은 문래동 어느 갤러리에서 정기황 교수는 용익권(이용권)ㆍ호혜성ㆍ참여권 등 난도가 높은 키워드를 열거했다. 그러나 이보다 와닿은 것은 ‘소유권보다 사용권’이었다.

최근 몇년 사이 선풍적으로 휩쓸고 있는 新문화, ‘공유주택’과 ‘셰어하우스’…. 이는 유행이 아니다. 시민들의 절실함에서 필연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삶의 방식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도 부동산 투자가치가 거론되고 있다. 물론 투자와 발전 좋다. 그러나 본질을 알고 있으면 덜 경박하고 덜 어리석게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할텐데…아쉽다.
 

한국건설신문 취재부 차장  = 이오주은 수석기자 yoje@conslove.co.kr

▲ 8월 22일 문래동에서 열린 정기황 교수의 <도시에 대한 권리 - 도시를 바꿔라, 인생을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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