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인문학①> 독일ㆍ일본ㆍ미국 등 ‘도심제조업’ 부활정책 수립
<건설인문학①> 독일ㆍ일본ㆍ미국 등 ‘도심제조업’ 부활정책 수립
  • 이오주은 기자
  • 승인 2016.06.28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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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며-정소익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사무국장

창간29주년 특별기획 <건설인문학①>: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며
“독일ㆍ일본ㆍ미국 등 ‘도심제조업’ 부활정책 수립”

▲ 정소익 사무국장(서울디자인재단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최근 벌어지는 여러 건축, 도시 관련 비엔날레나 축제, 회의들의 주제를 살펴보면 ‘첨단기술’은 분명 현대 도시의 핵심화두 중 하나이다.

첨단기술의 발달이 삶의 방식을 어떻게 바꾸는지, 또는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 묻고 논의하고 상상한다. 첨단기술 중에서도 디지털 기술, 즉 사물인터넷이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릴 정도의 엄청난 사회경제적 변혁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은 기정사실인 듯하다.

모든 것이 연결되고, 소통하고, 통제되는 사회, 각종 데이터로 끝없는 편의를 제공하는 사회, ‘스마트’한 사회가 된다고 한다. 이에 따라 집과 직장, 일과 레저 간 구분이 모호해지고, 이동 방식이 바뀌어서 우리가 사는 공간, 도시의 이해, 구성과 활용 방식에도 커다란 변화가 올 것이라 생각된다.

첨단기술이 선도하는 이러한 변화에 대한 묘사는 대부분 아주 ‘매끈하다’. 매끈한 서비스, 매끈한 건물, 매끈한 거리, 매끈한 공기, 매끈한 자동차, 매끈한 가전제품, 흡사 영화 <아일랜드>의 한 장면처럼 우리의 미래는 매끈할 것이라는 메시아적 메시지가 끊임없이 전해지고 이를 이끄는 기술 발전에 대한 낙관과 희망을 북돋운다. 여기에 첨단기술 발전에 대한 의구심과 잠시 멈추고 생각해보자는 태도는 일견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낙오자의 뒷북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사실 첨단기술은 하나의 현실이고 현상이지 첨단기술 자체가 도시에, 삶에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이나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물인터넷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것인지, 아니면 독거노인들의 안녕을 살필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사물인터넷 그 자체가 아니라 사물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첨단기술이 엄청난 기회가 되느냐 끔찍한 위험이 되느냐는 첨단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선택에 달려있는 것이다.

여기서 생각할 것은, 그렇다면, 첨단기술을 어떻게 사용할지 판단하는 주체는 누구인가와 그 방법은 어떠해야 하는가이다. 첨단기술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몇몇 기업, 그들의 자유 이성이 우리 삶을 더 윤택하게, 우리 도시를 더 좋은 곳으로 바꾸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갈 것인가 자문도 해야 한다. 이에 대한 지혜로운 답은 아마도 ‘그렇다’보다 ‘글쎄요’일 것이다.

<사피엔스: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의 저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1976~)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시장은 그 자체만으로는 사기, 도둑질,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데다가 인간은 욕심과 욕망 앞에 상당히 약하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market) 스스로 선택하기 어려운 ‘사회 공동의 이익’
정부가 나서서 사회 안정과 상호 신뢰 구축하는 방법 모색…

우리는 비슷한 사례를 이미 경험하고 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자들의 단골 메뉴인 낙수효과가 그것이다.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가 늘고 서민들의 삶도 좋아진다는 것은 오직 기업 이윤이 투자와 노동 환경 개선으로 이어질 때만 가능한 것이어서 기업주들이 이윤을 위해 조금이라도 욕심을 더 낸다거나 이기적이 되는 순간 이 안이한 낙관주의는 그 한계와 부작용을 극명히 드러내왔다.

그래서 정치와 정책이 필요해진다. (이론적으로) 정치와 정책은 공공의 선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최소비용으로 최대이윤을 추구하는 시장이 스스로 선택하기 어려운 '사회 공동의 이익'을 지향하여 사회 안정과 상호 신뢰를 구축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독일, 일본, 미국 등이 4차 산업혁명 안에서 도심제조업을 되살리고자 하는 정책을 세우고, 서울과 암스테르담은 공유도시를 선언하며 공유경제를 지원한다.

도심제조업과 공유경제가 부의 총량 증대를 가져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들 정책이 고사 직전 전통 산업의 활로를 개척하고 도시 산업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공정거래를 견인하면서 사회 안정과 보다 지속가능한 도시 발전을 가져온다고 판단하고 선택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사물인터넷과 같은 첨단기술은 공공의 선에 다가갈 기회를 제공한다.

반대로, 우리가 매일 목격하는 것처럼, 비뚤어진 공공의 선을 위한 잘못된 정치와 정책도 있다. 잘못된 정치와 정책은 시장의 이기심보다 더 위험하다. 미래에는 더더욱 그러하리라고 상상된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아일랜드>, 심지어는 <007> 최신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대중영화도 그 심각한 위험을 그리고 있다. 그들의 중심에서 비뚤어진 공공의 선을 지탱하는 것도 첨단기술이다.

첨단기술 자체를 찬양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첨단기술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고민이 먼저이다. 첨단기술이 무엇을 위해, 어디에 어떻게 지금 적용되는지, 미래에 적용될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건축, 도시도 마찬가지의 관심을 가져야한다.
건축과 도시는 사회, 정치, 첨단기술의 변화를 반영한다. 또한 정책 적용의 대상이자 결과, 정책 소통의 매개이다. 선택에 따라 매끈해질 수도 있고 폐허가 될 수도 있다. 첨단기술이 건축과 도시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예상하고 대응하는 것은 첨단기술에 대한 우리의 선택과 변화를 예상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생각하는) 공공의 선과 첨단기술이 접목되는 도시 공간을 제안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보여주는 것으로 정책 수립, 정책 거버넌스와 직접 연결될 수 있다.

첨단기술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4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우리 건축과 도시가 마주할 미래는 무엇인가 고민한다면, 4차 산업혁명, 건축, 도시에 대한 입장과 선택을 담은 도시 공간을 제안해보자. 그 제안이 실제 공간으로 체험될 수 있고 체험 현장에서 이야기될 수 있으면 좋다. 그래서 우리의 판단에, 정책 수립에 힌트를 줄 수 있다면 더 좋다. 

 

▲ 2017년 9월 서울시 최초로 ‘제1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개최된다. 서울시와 서울디자인재단은 최근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사무국을 신설하고 6월 17일 공식 오픈행사를 가졌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초대 총감독은 배형민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와 알레한드로 자에라폴로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공동 임명됐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측은 내년 첫 행사에 앞서 다양한 사전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5월 9일에는 DDP에서 워크숍을 개최하고 ‘도시의 공유지도’라는 주제로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한편 참가자 섭외를 위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또 5월 25일 오픈한 이탈리아 베니스국제건축비엔날레에 참가해 세계적인 건축가, 도시건축학자들을 대상으로 국제 세미나와 전시를 열고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홍보에 나섰으며, 6월 2~11일 런던건축페스티벌에 참여해 주영 한국문화원에서 국제 세미나 ‘런던/서울: 진화하는 공유도시의 건축’을 진행했다.
오는 9월 중국 베이징디자인위크와 10월 서울시 건축문화제와의 연계를 통해 비엔날레의 구체적인 계획을 널리 알릴 계획이다.(사진_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SNS)

 

글 /  정소익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사무국장

연세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이탈리아로 유학, 밀라노 I.S.A.D. 실내건축 석사와 밀라노공대 도시학(Urbanism)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디자인재단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그는 도시 패러다임 변화, 도시 인지, 상향식 도시설계 등을 주제로 하는 공공 프로젝트와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고 있다.주요 프로젝트로는 제4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협력큐레이터), 제3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협력큐레이터), ‘Great Hanoi' 거버넌스 프로젝트(총괄), 문화역서울284의 전시 <인생사용법>(큐레이터), 대림미술관과 협업 아래 하자센터와 공동 추진한 <Streetology>(큐레이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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