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軸 斷想 (1)
Z軸 斷想 (1)
  • 강주형 (주)생각나무파트너스 건축사사무소 대표
  • 승인 2017.11.2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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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주형 건축가
((주)생각나무파트너스 건축사사무소 대표)

잠시 다시 여름인 듯한 10월말의 어느 날 오후, 회의실에 앉아서 건축주와의 미팅을 기다리고 있다. 북한강과 맞닿은 경사지에 여러 사람이 함께 살 수 있도록 테라스하우스 타입의 집합주거를 건축하는 프로젝트이다. 의뢰인은 강, 하늘, 구름, 햇살, 바람 등을 모든 세대가 함께 나눌 수 있는 계획안을 기대한다. 역시 자연요소와 풍광의 가치에 대한 이해가 깊은 분이다.
요즘은 건축설계 의뢰인들이 이미 여러 도서 및 자료를 둘러보고 수집하여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주로 인터넷이나 책에서 얻은 외국의 주택 사례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에도 못지 않은 분위기의 주택과 건축물이 많은데도 굳이 그런 이미지 속의 실내공간들이 분명 남다른 느낌을 주는 까닭은 무엇인가. 고급 마감재료? 디테일의 품질? 그런 차이도 있겠지만 잘 살펴보면 공간 내에서 늘 꽃이 함께 하고 조경과의 교감이 한결같음을 알 수 있다.(필자도 설계안이 건축물로 완공될 때면 각 공간의 컨셉에 맞춰 꽃을 조화롭게 배치하고자 늘 훌륭한 플로리스트와의 협업을 원한다. 아예 제인 패커나 맥퀸즈 같은 과정을 직접 다녀오고 싶은 마음도 있다.) 건축과 조경이 서로 반응하는 건 지금도 어려운 일이라고들 한다. 녹색건축인증제도에서 평가점수를 획득하기 위한 실내정원이나 비오톱처럼 거창하지 않아도 좋겠다. 침실과 식당의 꽃, 거실과 테라스의 풀, 마당과 정원의 나무가 주는 삶의 차이도 충분히 소중하지 않겠는가.
‘테라스(terrace)’는 아래층의 돌출부 상부, 즉 건축물의 일부분을 지칭하는 것으로 쓰이지만, 메소포타미아문명에서 원래의 기원은 녹지이자 정원이었다고 한다. 즉, 자연-건축-사람으로 연결되는 삶의 양식이자 문화였다는 뜻이다. 고대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흔히 고향을 그리워하는 왕비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알려진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애틋한 러브스토리 외에도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바빌론 중심부에 30층(추정) 높이로 건설된 바벨탑의 꼭대기에는 그들이 섬기는 신 중의 왕을 모셨지만, 7개의 층과 단으로 구성된 공중정원은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수많은 어려움이 있음에도 굳이 들어올려진(영어로는 하늘에 매달린) 테라스를 추구한 이유는 무엇일까? 건축구조적 보강, 방수와 방근, 급수와 배수, 수목이식 및 운송기술 등 현재도 감탄할 기술이 필수적인데도 말이다. 왕에게는 왕비를 위하는 사랑이면 충분했겠지만 수많은 백성들의 피와 땀이 필수적인 그것이 당시엔 최고의 이상향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은 천국과 극락 등 사후세계를 엘리시온이라고 불렀다(반대어는 하데스.) 앗시리아인들의 관념에서도 엘리시온은 마천루나 기념비적인 구조물이 가득한 모던 도시가 아니라 자연이 함께하는 무릉도원의 이미지였던 것이다. 이는 현대인들이 갈구하는 파라다이스가 화려한 고층빌딩 대신 물, 풀, 꽃, 나무, 향기라는 점과 다르지 않다. 이상향에의 간절함과 절대권력은 기술적 어려움을 충분히 극복하게 만들었고,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남다른 높이값으로 차원이 다른 신성함을 담았던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X(가로), Y(세로), Z(높이), T(시간)라는 네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타임머신이 실현되기 전까지 T축은 인간의 능력 밖이고, X와 Y축은 모든 인류에게 공평하면서도 그 자체로 한계이다. 하늘의 신과 땅의 인간 사이에 존재하고픈 권력자들의 욕망과 권위를 표출하기에 Z축의 높이값은 가장 매력적이고 독보적인 대상이 아니었을까.
오늘날의 도시건축에서도 Z축 조경과의 연애담은 계속 된다. 20년 전 건축가 노만 포스터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63층짜리 코메르츠방크(CommerzBank) 사옥에서 고대인들은 상상도 못할 정도의 높이로 들어올려진 공중정원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비록 바벨탑보다 두 배나 높았지만 그 테라스는 신에 대한 더 높은 경외나 천국에 대한 더 깊은 동경이 아니다. 환기, 냉각, 에너지절약 등의 키워드로 축약되는 건축물의 기능 향상과 거주자의 심리적 쾌적함을 통한 업무생산성 향상이라는 논리에 따라 이루어진 자본투입의 결과물이었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보스코 베르티칼레(Bosco Verticale) 빌딩으로 주목 받은 건축가 스테파노 보에리는 최근 중국 류저우시 인근에 3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포레스트 시티(Forest City) 프로젝트로 그의 야심찬 도전을 확대한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전체가 거대한 숲으로 보일 정도로 건축물 외부에 테라스정원을 켜켜이 쌓은 것이다. 이 수직숲 도시는 심각해지는 공해와 오염에 대항하여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하며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등 친환경 기치가 높지만, 그 역시 이미 발생한 생존의 문제에 대응하는 기능적 해결방안으로만 강조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21세기에 들어 수직조경 기법의 발달과 버티칼가든의 유행으로 우리 주변에서도 낯설지는 않지만, 친환경이라는 시대의 화두가 너무 강해서 기술과 함께해야 할 가치를 돌아보기에는 여유가 없었다. 그렇다 보니 수많은 건물들의 옥상조경, 벽면녹화 등은 인공적 생태율의 수치로만 평가되고, 건립 당시 세계 최대의 면적이라고 관심을 끌었던 서울시청사의 실내 수직정원조차도 기네스의 기록으로만 기억되는 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 <다음호에 계속>


한국건설신문 지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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