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軸 斷想 (2)
Z軸 斷想 (2)
  • 강주형 (주)생각나무파트너스 건축사사무소 대표
  • 승인 2017.11.29 1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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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주형 건축가
((주)생각나무파트너스 건축사사무소 대표)

2600년 전의 고대세계에서도 이미 그러했는데 첨단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미래에는 어떤 모습이 될까. 사람들의 상상을 시각적 이야기로 공유할 수 있는 좋은 도구인 영화가 발명된 이후로, 가장 괄목할 만한 변화는 미래의 모습을 그리는 공상과학분야(SF)에서 찾을 수 있다. SF장르가 다루는 주제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물음에서부터 외계생명체, 인공지능과 로봇, 우주제국과 수퍼히어로에 이르기까지 무척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가까운 미래의 도시와 건축에 대한 상상을 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이 눈에 띄는데, 예외 없이 수직적 공간 구분과 쾌적한 환경의 정도가 사회계층의 차이를 표현하는 핵심 요소라는 점이다.
최초의 장편 SF영화라 할 수 있는 <메트로폴리스>(프리츠 랑 감독, 1927년)에서는 종교, 사랑, 복제인간이라는 소재의 교반도 흥미롭지만, 지상(고층)과 지하세계로 나누어진 배경과 등장인물의 배치가 근대산업사회의 이면에 대한 솔직한 성찰뿐만 아니라 9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영향력이 여전히 유효한 메타포어라는 점에서 진정 위대하다.
비운의 천재작가 필립 K. 딕의 원작이 바탕인 <블레이드 러너>(리들리 스콧 감독, 1982년)에서도 400층이 넘는 빌딩들이 가득한 2019년의 LA를 배경으로 복제인간들의 ‘추노’ 이야기가 펼쳐진다. 인간은 무엇으로 규정되는가라는 묵직한 주제에 걸맞게 무겁고 어두운 도시 이미지가 함께 한다. 돈이 없어 지구를 떠나지 못하는 빈민들이 사는 낮은 지상레벨은 늘 어둡고 비가 내린다. 휴머노이드의 창조자 인간은 고대세계의 지구라트(수메르인들이 지상세계의 수호신을 모시던 곳)를 본뜬 초거대 고층도시 꼭대기에 사는데 실내는 로마신전의 건축양식으로 가득하다. 지상의 뒷골목에서 쫓기던 ‘제품’들은 그가 사는 최상층을 찾아가 ‘인간’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지만 거부당하고, 자신에게 입력된 4년짜리 운명을 받아들이며 겨우 6층짜리 건물 옥상에서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최후를 맞이한다. (자신이 인간인 줄 알았던 주인공 해리슨 포드는 97층에 살았다.) 이처럼 공간적 배경의 높이값에 주제를 함축하는 방식은 흔히 볼 수 있다. B급 액션영화인 <데몰리션맨>(마르코 브람빌라 감독, 1993년)에서도 2032년의 LA에는 추방당한 자들이 지하 레벨의 더러운 터널과 하수구에 사는 것으로 그려졌으며, <제5원소>(뤽 베송 감독, 1997년)에서 2215년 뉴욕의 유토피아적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조너선 스위프트 작, 1726년)에는 하늘을 나는 섬 ‘라퓨타왕국’이 나온다. 여기서 영감을 받은 일본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1986년)에 등장하는 ‘세상을 지배했던 종족의 도시’도 이후 많은 작품들에 모티브가 되었다. <총몽>(키시로 유키토 작, 1990년)의 공중도시 자렘이 있으며 <아스트로보이>(데이빗 보워스 감독, 2010년)의 공중도시 메트로시티도 있다. <엘리시움>(닐 블룸캠프 감독, 2013년)에서는 아예 오염된 지구 밖 우주에 띄워 올린 도시 엘리시움의 선민들이 지상의 하데스에 사는 열등 인류를 감시하고 지배한다. 미래 도시가 반드시 상업영화 몇 편에 묘사된 모습으로 되리란 법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직형 설국열차의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모두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은 명백하다.
언어를 학문으로 다루는 사람들 관점에 따르면 표현의 종류가 다양하고 많을수록 그 분야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다른 언어에 비해 친척과 촌수에 관련된 용어가 상당히 발달한 것은 우리가 오래 전부터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및 그 속에서의 내 위치를 비중 높게 다뤄왔다는 반증이라는 것이다. 미래를 준비해야 생존할 수 있는 고위도 추운 지방 민족일수록 미래시제에 대한 분화가 매우 발달했다는 점도 유사하다. 더 확장해서 생각하면 어휘의 존재 유무와 다채로움이 그 대상에 대한 인식 및 이해의 깊이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땅에 살아온 사람들이 예전부터 붉고 푸른 색에 대해서는 매우 다양하게 인식해왔지만, 초록에 대한 개념은 외부에서 수입되었기에 한자어뿐이라는 의견도 있다. 마찬가지로 어제, 오늘은 순우리말인데 내일은 한자어이다 보니 오래 전부터 과거를 더 중시했다는 주장도 있다. 학술적 진위를 떠나 나름 의미 있는 통찰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개념과 실재 사이의 상호 관계를 규정하는 이론이 ‘해석학적 순환’인데, 개념(용어)이 성립되면 그에 따른 존재가 생기고 다시 그 개념을 강화하는 순환구조를 설명한다. 따라서 높다/낮다/길다/짧다/넓다/좁다 외에도 공간의 정서를 표현하는 풍부한 어휘의 필요성은 늘 새롭다 할 것이고, 미래 흐름을 선도하는 디자이너라면 어떤 언어로라도 개념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공학적 기술과 인문적 철학이 교차하지 않는 공허한 건축/도시/조경을 원하지 않는다. 한때는 ‘극락’이었고 ‘기능’이었던, 그리고 이제는 도태와 진화의 갈림길에서 ‘차별’이 되려고 하는 내러티브는 필요치 않다. 미래의 Z축 도시조경은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조금 더 맑은 가치의 내러티브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데이터 중심’이 아닌 ‘스토리 중심’의 디자인을 기대하는 이유이고, 미래의 기술과 요구를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개념의 변화를 이끌어 줄 디자이너가 필요한 까닭이다.

 

한국건설신문 지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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