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인문학34> ‘뒤집어진 로빈훗’… 사익을 공익으로 둔갑시키는 도시 인클로저
<건설인문학34> ‘뒤집어진 로빈훗’… 사익을 공익으로 둔갑시키는 도시 인클로저
  • 이오주은 기자
  • 승인 2017.08.1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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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창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

희망의 도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_(3) 도시 인클로저와 거주위기, 거주자원의 공유화

‘뒤집어진 로빈훗’…
사익을 공익으로 둔갑시키는 도시 인클로저

▲ 사적자본의 이익을 위한 공용수용 사례. 포트 트럼블 도시재개발 대상지 켈로 여사와 소유주택(출처: Dwight Merriam, Kelo v. New London, 2005).

└ 공적 이해관계 정당성 있으면 어떤 목적으로든 사유재산 강제 수용
└ 공익 개념 해석변경… ‘공적소유’ 개념 버리고 ‘경제적 공익’ 개념으로
└ 경제적 공익… 일자리 창출ㆍ지방재정 확충ㆍ글로벌 도시경쟁력 강화 등


3. 도시재생과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인클로저

▲ 김용창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
<지난호에 이어> 현대 도시 인클로저의 결과는 ▷글로벌 도시경쟁력 확보를 위한 사업공간의 생산, ▷도시재생, ▷볼거리를 강조하는 상징 공간의 생산, ▷고급폐쇄주거지의 생산 등 현상적으로는 다양한 모습을 띠고 나타난다.
구체적 메커니즘은 ▷공용수용법, ▷토지구획정리법, ▷주택법 등 법에 근거한 합법적 탈취와 그에 따른 부동산행위 주체들과 이해관계자들에게로 재산의 재집중에 기초한 자본축적 과정이자 공간생산과정이다.
새로운 형태의 도시 인클로저 역시 원리상 시초축적 과정과 유사한 탈취 효과를 지닌다. 사회적ㆍ이데올로기적 효과의 하나가 바로 생산 및 생존수단으로부터 노동자를 더욱 분리하고 소외시키는 물상화(Reification) 효과이다.
인클로저 결과, 일반시민들은 자유로운 장소향유(Place Appropriation)를 제지당하고, 생산수단과 생존조건으로부터 소외를 겪으면서 의지를 가진 자유주체가 시장의 객체로 바뀐다. 이는 일상생활의 측면에서 기존 지역주민이 누리고 있던 일상생활 공간의 자원들을 향유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배제로부터 기존 또는 전통적 지역사회와 도시장소가 해체된다. 푸코가 말하는 신자유주의 주체화 과정이 도시 인클로저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에서 물상화의 심화는 장소의 상품화를 숨기고, 인위적 질서개편을 티가 나지 않도록 세련된 의미로 확산시키면서 도시 인클로저의 일상화를 무감각하게 만든다.
이를 일컬어 은연중에 행위를 드러낸다는 의미에서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에 의한 탈취’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사적이익으로 뒤얽힌(Private Tangled) 사회적 규범들이 공적공간과 공간의 공공성, 자원의 공유성을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현대의 탈취기반 축적과 인클로저 역시 주로 토지를 비롯한 공유재산 또는 공공재산의 사유화 개념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인클로저 자체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도시 인클로저 현상의 가장 기본적인 쟁점은 토지재산권 체계의 변동이다.
그러나 현대 도시 인클로저 연구들은 재산권 체계 변화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 인클로저의 본래적 의미를 실증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도시개발 사업 시행에서 사적자본의 이익을 위한 공익개념의 해석변경과 사적공용수용에 근거하는 도시개발 거버넌스 사례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도시 인클로저 과정에서 두드러진 이데올로기적 측면의 하나는 사익(또는 사적자본의 이익)을 공익으로 둔갑시키는 담론의 형성과 전파이다. 최근의 사적공용수용 연구에 따르면 도시재생지역에서 사적자본이나 사적이익을 추구하려는 목적의 개발사업에 대해 사적공용수용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공적소유 공익개념’을 버리고, ▷글로벌 도시경쟁력 강화, ▷일자리 창출, ▷지방재정 확충과 같은 ‘경제적 공익개념’으로의 공익개념 해석변경과 그 담론의 확산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진다.
동시에 도시재생 지역의 강제수용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논리나 행정부의 논리 역시 시초축적시기의 인클로저 옹호의 논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옹호 이데올로기의 전파자와 인클로저 대상이 현대 자본주의에 맞게 재구성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도시개발사업에서 공익개념에 대한 해석 변경과 확장을 통해서 사적자본의 이익이 공익으로 인정을 받게 되면서 사유재산권의 차별, 사익을 위한 공용수용 남용, 공적 사인수용(Public-Private Taking), 사칭수용(Pretextual Taking), ‘뒤집어진 로빈훗’이라는 논란을 낳고 있다.
신자유주의 도시재생에서 사적자본의 이익을 위한 공용수용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국가로 자본주의가 가장 고도로 발달되었다고 하는 미국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오늘날 미국 도시개발 사업에서는 글로벌 기업의 첨단연구개발시설을 짓기 위해 일반 가족의 집을 허물고, 카지노 주차장을 건설하기 위해 미망인의 재산을 몰수하며, 프로스포츠 팀의 경기장, 거대유통자본의 쇼핑몰, 대자본의 오피스빌딩을 위해 작은 가게와 주택을 철거하는 일들이 공익사업이라는 명분아래 강제매수(공용수용) 방식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 공익 요건에 부합하는 세 가지 공익개념

미국에서 경제개발 목적의 사익을 위한 수용은 건국 전후 제분소법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본격적인 판결은 20세기 이후에 나타난다.
소유주체를 준별하여 협의의 관점을 두개로 나누면 미국 판례 역사에서 연방대법원과 주법원은 일반적으로 세 가지 서로 다른 사법적 공익개념에 대한 정의, 즉 공익 요건에 부합한다고 보는 세 가지 공익개념 범주를 가지고 있다.
◇Public Ownership= 첫 번째는 공익이란 ‘공공소유’(Public Ownership)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으로서 늘 가장 좁은 의미의 해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부가 사유재산을 공공소유로 이전할 수 있다(도로, 병원, 군사기지 등)는 관점이다. 그러나 19세기 초 이래 민영철도회사 등과 같은 사기업에게 공용 수용권을 부여하면서 완전한 공익의 정의로서 공적소유 기준은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Use by the Public, Public Access= 두 번째는 공익을 문자 그대로 ‘공중에 의한 사용’(Use by the Public), 일반 공중의 ‘공적 접근’(Public Access)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에서는 수용이후 재산의 소유권은 의미가 없고, 중요한 판단기준은 해당 재산이 권리의 차원에서 일반 공중에게 개방되어 있는가 여부가 된다.
정부가 사유재산을 수용하여 공중이 이용할 수 있는 재산으로 만드는 사적주체에게 이전할 수 있다(철도, 공공시설, 경기장 등)는 관점이다. 이러한 기준 역시 좁은 의미의 공익개념으로 볼 수 있으며, 연방대법원의 경우 연방헌법의 기준으로서는 1920년대에 이미 사용하지 않았다.
◇Public Purpose or Benefit= 세 번째는 가장 넓은 의미의 공익개념으로서 공익을 ‘공적목적’ 또는 ‘공적편익’(Public Purpose or Benefit)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입장이다. 앞의 두 관점이 공익의 범위를 지나치게 제한하여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공공선 또는 일반복지를 촉진하거나 일반적인 공적편익을 보호하기 위해 사유재산의 수용을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적 이해관계에 따른 정당성이 있으면 어떤 목적으로라도 사유재산을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잠재적으로는 공용수용권력에 제한이 없게 된다. 특정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재산권의 강제적 이전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사고이다.

 
20세기 들어 1954년 Berman v. Parker (이하 ‘Berman’) 사건, 1984년 Hawaii Housing Authority v. Midkiff 사건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독창적인 판례는 도시재개발과 사회적 해악의 제거를 위해서는 사익을 위한 공용수용도 합헌이라는 판결을 함으로써 연방대법원 판결역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공익에 대한 거의 무제한적 의미를 부여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행위가 공공복리차원에서 수행되는지 여부에 대한 법원의 검토(판단)에 대하여 아주 제한적인 역할만을 주장하였다.
이 두 사건을 계기로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공용수용 요건으로서의 공익의 의미가 공적소유나 공중에 의한 사용으로부터 공공목적 또는 공공이익을 뜻하는 것으로 그 의미와 적용범위가 완전하게 이동하였다.
그 결과 경제적으로 이익이 있다고 고려되는 모든 사업을 위해 공용수용권을 자주 사용하고, 실무적인 차원에서는 공익개념이 좀 더 모호한 의미의 공적편익을 뜻하는 것으로 변했다.
2005년 Kelo v. City of New London 사건에서 판결문을 작성한 주심인 스티븐스(Stevens) 대법관은 연방대법원에서 일반 공중을 위해 수용재산을 사용해야 한다는 ‘말 그대로의 공익개념’은 오래전에 버렸으며, 공적목적 또는 공적편익이면 충분하다고 기술했다. - <다음호에 계속>

정리= 한국건설신문 이오주은 기자


(이 글의 참고문헌과 각주는 생략되었습니다. 이 글의 완성본은 <희망의 도시> (2017, 한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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