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산업시설의 개조와 도시재생
<칼럼> 산업시설의 개조와 도시재생
  • 승인 2005.12.28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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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상 교수 (서울대 환경대학원)
현대 우리 도시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아마도 ‘개조’라는 말일 것이다. 산업시설의 개조는 그 변화의 대표적 현상 중 하나이다. 최근까지 도시 경제활동을 이끌면서 활력을 부여해왔던 산업시설들이 이제는 오히려 도심쇠락현상을 가속화시키고 환경을 열악하게 하는 주범으로 뒤바뀐 것이다. 이로 인한 문제가 결코 단순하지 않는 것은 이들이 대개 넓은 부지에 크고 작은 각종 구조물과 설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시환경을 개선하고 지역경제를 되살리는데 있어 이들은 가장 우선적으로 다루어야 할 대상으로 부각되는 것이다.

우리 도시에서 목격되는 산업시설의 변신은 규모나 유형에서 다양하다.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져간 작은 공장들에서부터, 불과 몇 년 만에 전체 단지가 공장에서 첨단 빌딩군으로 바뀌어버린 구로디지털단지와 같은 곳도 있다. 한 때 국가 경제를 주도해왔던 반월, 시화, 부평, 주안 등 전국의 산업단지에도 그 정도가 다르기는 하나 변신은 진행형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 도시에서 산업변신은 이처럼 외면할 수 없는 현상으로 대두되고 있는데 반해 그것을 유도하고 대처하는 전략이 과연 존재하며 적절한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봐야할 것 같다. 변신의 내용과 방향을 적절히 리드하고 조절하는 공공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지부터가 심히 의심스럽다. 기존 시설의 완전 철거 후 고층 건축물 신축이라는 방식은 아마도 현재 우리 주변에 벌어지는 가장 대표적인 양상일 것이다. 대개 그것들은 민간부문에 의해 경제성에 입각한 사업으로 추진되기에 공공이나 일반 시민들이 알지도 모르는 사이에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도 현행법의 테두리 내에서 추진되는 만큼 사실 특별히 문제 삼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유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관점에 근거한다.

첫째, 변신과정에서 철거되는 기존 산업시설들 그 자체가 우리의 소중한 문화자산일 수도 있다는 시각 때문이다. 내용과 정도는 다를지언정 기존 산업시설들은 대체로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일정한 역할을 담당해온 지역사회 구성요소 중 하나였다. 많은 경우 그들은 그 지역을 먹여 살려온 경제적 구심체로서, 말하자면 오늘의 우리가 있게 한 장본인인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연방정부와 주정부가 힘을 합쳐 추진한 이바 엠셔파크 (IBA Emscher Park)이다. 용도가 다한 공장과 산업시설들을 철거해 버리는 대신에 존치하면서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과 생태적 해법을 통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장소로 재생시켜낸 이바 엠셔파크의 교훈은 우리에게도 좋은 참고가 될 만하다. 독일의 그것들에 비해 우리의 산업시설들이 비록 보잘 것 없고 초라한 것일지라도 우리에게 그것들은 분명히 남다른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도 서구 여러 나라와는 현저히 짧은 기간에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 것이 우리의 근대 산업시대의 공과임을 감안해 본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 같이 초라한 시설로 이만한 성장을 거둔 것이니 가히 자부심을 느껴도 되지 않는가 말이다.

둘째, 산업시설은 그 자체가 많은 이들의 삶에 있어서의 관계망 형성의 핵심이었다. 기존시설을 철거한다는 것은 적어도 물리적으로는 그 관계망을 제거해 버리는 것과 같다. 그것은 그렇지 않아도 메마른 공간과 무의미한 기표가 난무하는 현대도시에서 유의미한 장소를 없애 버리는 결과라고 봐야하는 것이다.

셋째, 산업시설 철거 후 고층화라는 도식에서 짚어야 할 체크포인트는 도시 공공인프라에 관한 것이다. 변신 전후의 이용인구나 연면적의 차이가 큰 만큼 도시 인프라를 추가하여 확보하지 않는 한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 최근 이름을 바꾼 구로디지털산업단지가 그 좋은 예이다. 첨단빌딩으로 바뀌어 연면적이나 유동인구에서 저층 공장위주의 예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그곳은, 고층건물군의 대단지에 걸맞은 공원녹지나 문화예술시설 등의 공공시설은 너무 미비한 상태이다. 공공시설을 비롯한 도시의 다양한 활동이 결여된 채 그저 물리적으로 고층화하고 번듯한 건물로만 채워진다면 그곳은 또 다른 거대한 공룡일 뿐일 것이다.

넷째, 오래된 산업시설은 오랜 시간적 의미 못지않게 물리적인 관점에서 유용하게 해석될 수 있다. 시설 자체가 독특한 요소이므로 잘만 활용하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공장 건물을 재활용하여 새로운 명소로 탄생시킨 사례는 세계적으로 무수하다. 대체로 공장건물의 높은 층고는 실내공간 활용에 유리하고, 오래된 붉은 벽돌이 주는 물성은 변신 이후 장소에 대한 정서적 교감을 더하기에 효과적이다.

결국 산업시설 변신은 환경적으로 열악하기 만한 우리 도시에서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하는 셈이다. 공원녹지와 공공 문화예술 시설이 절대 부족한 채 과밀로 치달려온 우리 도시에서 새로운 땅을 확보하여 숨통을 쉬게 해 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바로 산업시설의 개조과정에서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이미 과밀한 도시에 또 다른 고층 건물을 짓는 것 보다는 기존 시설을 존치 활용하면서 다양한 문화와 그린을 통해 새로운 명소로 변신시키는 것이야말로 우리 도시를 보다 친환경적으로 재생시키는 가능 유일한 방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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