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위험을 통제하는 주체가 누구였는지 살펴야
1. 문제의 소재
산업안전보건법은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관계수급인의 근로자가 작업하는 경우 도급인에게도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조치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위반해 관계수급인의 근로자가 사망하는 경우 형사책임을 부담하도록 정하고 있다.
다만 건설공사의 경우 모든 발주자가 곧바로 이러한 ‘도급인’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건설공사를 도급하는 자 가운데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관리하지 아니하는 자를 ‘건설공사발주자’로 별도로 정의하고, 이러한 건설공사발주자는 도급인에게 적용되는 형사책임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문제는 대규모 건설공사의 발주자가 공정관리를 위한 조직을 두고, 시공사들과 공정회의를 진행하거나 안전작업허가서를 승인하는 등 일정 부분 공사에 관여한 경우다. 이러한 관리행위만으로 발주자를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관리하는 도급인’이라고 볼 수 있는지, 아니면 여전히 건설공사발주자에 해당하는지가 실무상 중요한 쟁점이 된다. 이와 관련한 최근 대법원 판례가 있어 소개한다.
2. 판례의 입장 [대법원2026. 6. 25. 선고2024도5902 판결]
가. 사실관계 및 원심의 판단
전력사업을 영위하는 회사는 발전소 건설을 위해 별도의 건설본부를 두고 전체 공사를 27개 업체에 나누어 발주했다. 그런데 공사 과정에서 변압기의 상회전 테스트를 진행하던 중 고압부에서 아크 폭발이 발생해 근로자 1명이 사망하고 수인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발주회사와 그 임직원, 시공회사 관계자들이 산업안전보건법위반 및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됐다.
제1심은 발주회사를 산업안전보건법상 ‘건설공사발주자’로 봤지만, 항소심은 발주회사가 별도의 건설본부를 두고 전체 공사를 관리하면서 현장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했다고 보고 ‘도급인’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나. 대법원의 판단(원심 파기)
대법원은 발주회사가 건설공사에서 일정한 관리행위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으로 봐서는 안 되고, 해당 공사에서 발생하는 유해·위험요소에 관한 관리권한과 공사에 대한 영향력, 전문성 및 시공능력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에서 발주회사는 발전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로서 배연탈황설비를 직접 시공하기 위한 면허나 전문 기술인력, 설비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반면 시공회사는 관련 공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대형 건설회사로서 현장 위험성평가와 각종 작업절차서를 직접 마련해 운용하고 있었다. 실제 설비의 설계와 시공도 시공회사 측이 담당했다.
한편 대법원은 특히 발주회사가 주간공정회의를 열거나 안전작업허가서를 승인한 점에 대해, 여러 전문업체가 동시에 투입되는 대규모 공사에서 업체별 일정과 작업구간을 조정하는 행위는 발주자가 공사를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업무고, 공정 지연에 대해 대책을 요구하는 것 역시 계약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성격을 가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행위가 구체적인 작업방법이나 시공방법에 대한 지시에까지 이르지 않았다면 그 자체만으로 시공을 주도한 것으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법원은 발주회사가 이 사건 공사의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한 도급인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발주회사와 일부 임직원에 대한 유죄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
3. 결론
대상판결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발주자가 안전을 확인하고 공사를 조정했다는 사실을 곧바로 도급인 책임의 근거로 삼는다면 오히려 발주자로 하여금 현장 안전관리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도록 만드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점이다. 즉, 발주자의 ‘관여 여부’와 ‘시공에 대한 지배’가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그러한 형식적인 접근보다 실제 위험을 통제할 수 있었던 주체가 누구였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발주회사가 전문면허와 기술인력을 보유하고 있었는지, 시공방법을 결정하거나 변경할 수 있었는지, 작업절차 및 위험성평가를 누가 수립했는지, 사고가 발생한 설비와 작업구역을 누가 관리하고 있었는지 등이 보다 중요한 판단자료가 될 수 있다.
대상판결은 발주자와 시공자 사이의 역할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대규모 건설공사에서 판단기준이 될 수 있는 판례로 보인다.
한국건설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