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에 맞는 일을 제대로 시켜야 책임과 권한이 명확해진다
최근 건설현장에서 붕괴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2월 25일 세종~안성 고속도로 청룡천교 공사현장에서 거더가 무너져 작업자 4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다. 3월 24일에는 서울 강동구 명일동 지하철 9호선 연장 터널 공사구간 위 도로에 대형 땅꺼짐이 발생해 지나가던 오토바이 운전자가 목숨을 잃었다.
4월 11일 광명 신안산선 지하터널 공사현장이 무너져 작업자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으며, 인근 주민이 대피했다. 12월 11일에는 광주대표도서관 신축현장에서 옥상층 콘크리트 타설 중 구조물이 지하층까지 연쇄 붕괴해 작업자 4명이 매몰돼 모두 사망했다. 그리고 올해 5월 26일, 서울 도심 서소문고가차도 철거현장에서 상판이 무너져 3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이 사고들은 서로 다른 구조물, 서로 다른 공종에서 일어났지만 공통점이 있다. 모두 현장에서 공학적 검토를 철저히 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사고라는 점이다.
■ '안전'이라는 말이 뒤섞여 있다
요즘 건설현장에서 '안전'이라는 단어가 명확한 구분 없이 오남용되고 있다. 작업자의 추락, 협착, 전도 같은 사고는 주의를 기울이고 조심하면 예방할 수 있는 사고다. 안전모를 쓰고, 안전대를 걸고, 개구부를 막고, 신호수를 세우면 막을 수 있다. 이것은 관리의 영역이다.
그러나 붕괴는 다르다. 붕괴는 기술적 사고다. 기술적 사고는 눈으로 본다고 보이는 것이 아니다. 거더가 전도되기 직전의 받침 상태, 동바리에 걸리는 하중, 터널 상부 지반의 응력 변화는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순찰을 돌아도 보이지 않는다.
계산해 보아야 보인다. 붕괴는 조심한다고 막아지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으로 검토해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사고다. 그렇다면 관건은 그 기술적 검토가 어느 시점에, 누구에 의해 이루어지느냐다. 필자가 보기에 지금 대한민국 건설현장에서는 이 기술적 검토가 실종된 상태다.
■ 기술적 검토는 어디로 갔는가
1990년대 중반까지 원도급 시공사가 직영으로 공사를 할 때는 기술적인 사항을 시공사가 직접 챙겼다. 가설구조물의 안정성, 시공순서에 따른 단면력의 변화, 현장 여건에 맞춘 상세도 작성이 모두 시공사 기술자의 몫이었다. 그러나 IMF 이후 하도급 체계로 전환되면서 현장의 기술적 검토는 하도급업체로 떠넘겨졌다.
문제는 하도급업체인 전문건설업의 설립 요건이 초급기술자 보유라는 점이다. 전문건설업체는 기술조직이라기보다 기능조직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즉 원도급 시공사의 지도를 받아 시공을 수행하는 조직이다. 그런 조직에 공학적 검토까지 떠넘기다 보니 현장에서 기술적 검토가 실종되고 만 것이다.
감리는 어떤가. 본래 감리의 역할은 현장에서 생기는 기술적 문제에 대해 기술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감리는 기술적 검토를 하는 역할이라기보다 감시를 하는 역할에 가깝다. 설계도대로 시공하고 있는지를 지켜보는 역할이다. 설계도와 다른 상황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기능은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결국 발주자, 책임감리, 원도급자, 하도급자 모두 공학적 판단에 대한 부담 때문에 그 판단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분위기다. 그러는 사이 공학적 검토는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이 되어 버렸다.
현장에서는 설계와 다르게 시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드시 생긴다. 지반이 다르고, 장비가 다르고, 공정이 바뀐다. 이때 현장에서 상황에 맞는 공학적 판단을 내리면 되는데, 국내 현장에서는 그것이 잘 되지 않고 있다.
■ 시공엔지니어링, 그것은 곧 '시공상세설계'
필자는 외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Construction Engineering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말로 하면 시공엔지니어링이다. 시공자가 엔지니어링사에 공학적 검토와 샵드로잉을 의뢰하는 것이다. 물론 시공사가 자체 기술조직으로 직접 수행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엔지니어링'이라는 말의 개념이 명확히 정립되지 않았으므로 필자는 이를 '시공상세설계'로 부르고자 한다.
설계는 설계단계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현장에서도 현장 상황에 맞춰 시공상세설계를 해야 한다. 설계단계의 설계는 완성된 목적구조물의 안전을 검토하는 것이다. 시공단계에서 가설구조물과 시공 중인 본구조물의 안전은 현장 상황에 맞춰 시공단계에서 검토하는 것이 맞다.
거더는 완성된 교량 위에서 안전한 것이 아니라 크레인에서 내려져 받침 위에 놓이는 그 순간에도 안전해야 한다. 슬래브는 콘크리트가 굳은 뒤가 아니라 타설되는 순간에 버텨야 한다. 이 순간들의 안전을 검토하는 것이 시공상세설계다.
■ 도면만 그리는 시공상세도
국내에서는 2010년 국토해양부가 '건설공사 시공상세도 작성지침'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고, 엔지니어링사업대가의 기준에 시공상세도 작성비 기준이 운용되고 있다.
그러나 시공상세도 작성비 대가기준을 보면 그 구성이 도면 작성 기능인으로 되어 있다. 시공상세도를 그리는데 검토 없이 도면만 그리는 꼴이다. 설계도를 확대해 옮겨 그리는 것은 상세도일 수는 있어도 상세설계는 아니다.
시공상세도 작성비를 시공상세설계비로 전환하고, 공학적 검토비를 반영해 공사비에 계상해야 한다. 시공단계의 기술적 검토 비용이 간접비에 이미 포함되어 있지 않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물론 간접비에 녹아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발주자가 시공상세설계비를 명확하게 책정해 주고 그 대가에 맞는 일을 제대로 시키는 것이 책임과 권한을 분명히 하는 길이다. 비용이 없는 곳에 책임이 자리 잡을 수 없고, 책임이 없는 곳에서 검토가 이루어질 리 없다.
■ 시나리오와 콘티
필자는 시공상세설계를 영화감독이 하는 일에 비유하곤 한다. 시나리오에는 조명의 위치나 배우의 자세 같은 세세한 부분까지 다 적혀 있지 않다. 그런 것들은 감독이 현장에서, 또는 현장에 나가기 전 콘티 단계에서 상세하게 검토하고 결정한다.
만일 시나리오에 조명의 위치와 배우의 자세, 표정까지 모두 쓰려 든다면 이야기는 산으로 갈 것이다. 시나리오는 극의 흐름에 집중하고, 디테일은 감독이 결정해야 좋은 이야기가 좋은 영화로 완성된다.
설계도는 시나리오다. 시공상세설계는 콘티다. 설계도에 시공 중의 모든 가설 상태와 현장 변수를 담을 수는 없고, 담으려 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현장에서 현장의 기술자가 계산하고 결정해야 할 몫이다. 지금 우리 건설현장에는 시나리오만 있고 콘티가 없다. 그리고 콘티 없이 촬영에 들어간 결과가 위에 적은 다섯 건의 사고다.
붕괴사고는 조심한다고 막아지지 않는다. 계산해야 막아진다. 그 계산에 이름을 붙이고, 비용을 책정하고, 책임을 부여하자. 그것이 시공상세설계다.


건설을 딱 두가지로 나누면, 사람과 기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에 기술이 축적이 되어야 합니다.
현장 기술인력을 살펴보면, 정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협력사의 기능인력으로 구성됩니다. 현장소장, 공무, 관리, 안전 등에는 정직이 시공, 품질 등 몸으로 더 힘든(?) 직무에는 비정규직이 대부분 배치됩니다. 시공을 담당하는 공사직 대부분인 비정규직은 2년이면 다른 현장으로 가야하는 환경에서 기술이 축적되기는 커녕 로얄티도 가지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시공상세설계가 온전히 시행된다하더라도 이러한 인력의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한 대형사고는 끊이지 않을 것 입니다. 현장에 진짜 기술자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