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지골에서 - 조달청의 '응수타진'
낙지골에서 - 조달청의 '응수타진'
  • 승인 2002.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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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용
취재1팀장

응수타진(應手打診)이란 말이 있다. 국어사전에는 없는 말이지만 바둑용어로 잘 쓰이는 말이다. 바둑판에서 상대방의 의사를 물어보는 행위를 일컫는 말쯤으로 해석될 듯 싶다. 내가 던진 돌을 상대방이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작전을 선택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응수타진은 대부분 고수가 하수에게 사용한다. 따라서 하수는 고수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큰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고수에게는 비교적 여유있는 상황에서 상대가 내수를 읽고 있는지 시험해보는 행위인 셈이다. 하수에겐 기분상하는 일이지만.
조달청이 건설업계와 지방자치단체를 향해 응수를 타진했다. 얼마전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조찬간담회에서 김성호 청장이 직접 응수타진한 것이다.
김 청장은 이 자리에서 정부 계약제도 정책방향 등 올해 공공조달시책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공종별 상시 유자격자 명부제와 낙찰가격 심사제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공공공사의 품질확보와 건설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라고 도입배경을 덧붙였다. 지방자치단체의 대형공사를 조달청 발주로 일원화하기 위해 조달청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조달청 입장에서 보면 연초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던진 것이다. 조달청의 발빠른 응수타진으로 상대라고 할 수 있는 건설업계와 지자체는 물론 재정경제부까지 수읽기에 바쁘다.
건설업계는 특히 공종별 상시 유자격자 명부제 도입에 주목하고 있다. 공사종류별로 일 잘하는 업체를 선정해 이들 업체가 해당 공사를 충분히 수주하도록 운용하겠다니 업체로서는 관심이 클 수밖에.
조달청은 교량, 터널 등 6개 공종별 5위까지 업체를 선정해 발표했다. 공종별로 5위안에 들어있는 업체와 그렇치 못한 업체는 희비쌍곡선을 그렸다. 공교롭게 현대 삼성 대우 등 이른바 빅3로 불리는 업체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나름대로 선정기준에 의한 것이겠지만 일반적인 상식으론 이해하기 어렵다. 서울시 교량 대부분을 시공했거나 시공중인 현대가 교량에서 5위권내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시공실적, 기술능력, 경영상태, 신인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결과라고 조달청은 설명했다.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일 듯 싶다. 현행 PQ기준으로는 시공실적이나 기술능력은 대부분 만점이기 때문에 경영상태가 크게 좌우한 결과가 아닐까. 조달청이 스스로 밝힌대로 능력있는 건설업체만이 정부공사를 수주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라면 선정기준부터 새로운 틀을 가져야하지 않을까. 유자격자 명부제의 성공여부는 객관성과 신뢰성이 뒷받침된 선정기준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정된 업체에게 어떤 방식으로 인센티브를 적용할 지도 아직 명확하지 않다. 응수타진으로 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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