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칼럼] 오늘, 헌법을 읽는 이유
[조경칼럼] 오늘, 헌법을 읽는 이유
  • 김아연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
  • 승인 2023.11.20 1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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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고 쾌적한 환경, 헌법으로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
헌법 속 의무와 권리 톺아보며 조경-국가 관계 재정립 필요
김아연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
김아연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

사람들은 왜 헌법을 읽을까. 그 이유가 개인적인 억울함이든, 변화를 바라는 집단의 염원이든,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인간의 존엄, 그리고 기본적인 권리를 국가가 보장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법으로 확인하는 일은 어떤 위안을 준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 누구나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쉽고 간결한 문체로 서술되어 있다. 

관심이 가는 조항들이 눈에 들어온다. 건설업에 만연한 불공정 관행과 설계 크레딧 이슈는 제11조 평등권과 제22조 저작권과 상충하며,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의 소극적 대응은 세대 간 불평등(제11조)을 심화하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권리(제35조)를 위협한다. 공원일몰제는 공공이 도시계획시설 지정 후 오랜 기간 집행하지 않아 개인의 재산권(제23조)을 침해한다고 판단한 구 도시계획법의 헌법 불합치 결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는 제35조의 환경권은 공간복지와 공원의 형평성, 주택정책 및 환경보호와 관련한 근본적인 가치를 제시한다. 9장의 제120, 122조는 국가가 국토와 자원을 보호해야 하며 균형 있는 개발과 이용을 위한 계획을 수립해야 함을 명시한다. 

‘국가의 상징’이라는 헌법의 개별 조항을 읽다 보니 하나의 큰 질문이 생긴다. 우리에게 국가는 어떤 의미인가. 국가는 정부인가? 국회인가? 아니면 국민인가? 우리는 국가정원, 국가도시공원 등 ‘국가’라는 접두사를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가라는 맹목적 권위에 사로잡히기 전에, 헌법에 명시된 국가의 의무와 국민의 권리를 꼼꼼하게 살펴 공공의 이익과 국토 경관의 보호, 그리고 국민의 건강과 행복을 실천하는 조경과 국가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지난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용산공원은 우리에게 ‘국가’의 화용적 의미를 보여주었다. 한쪽에서는 용산공원에 공동주택을 짓겠다고 했다. 또 다른 쪽에서는 용산공원에 대통령실을 옮기겠다고 했다. 
첫 국가도시공원인 용산공원의 ‘국가’는 국민이 함께 만든다는 의미가 아니라 국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용산공원 국민참여단이 오랜 숙의 끝에 제시한 7대 제안 중 일곱 번째가 “국민 참여 과정이 역사가 되는 공원”이다. 
그러나 국민 참여가 역사의 일부가 되는 국민과 국가의 관계, 헌법에서 그리는 국가의 표상과 현실에서 국가가 작동하는 방식이 멀어지는 것 같아 왠지 씁쓸하다. 

카프카의 “법 앞에서”라는 단편에서 주인공은 ‘법’이라는 문을 지키는 험악한 문지기에게 이제 들어갈 수 있냐는 질문을 반복하고 저지당하며 늙어간다. 죽음을 앞둔 주인공은 왜 이 오랜 시간 동안 나 말고 문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사람이 없었냐고 묻는다. 이 문은 오직 너만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며 문지기는 문을 닫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문지기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하고 늙어갈까. 문 속으로 첫발을 내딛는 것은 우리, 국민의 권리이자 책임이다. 
오늘, 넘을 수 없는 벽을 느낀 하루였다면 헌법을 읽어보면 어떨까. 현실은 비루해도, 인간의 존엄을 확인받는 뜻밖의 위안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니.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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