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욕망과 건축에 대한 고찰
[논단] 욕망과 건축에 대한 고찰
  • 최창식 대한건축학회장
  • 승인 2023.11.20 1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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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안전 최우선으로 하는 '안전패러다임' 대전환 필요
'건축안전청' 등 건축 전분야 망라할 법·제도 마련 촉구
최창식 제40대 대한건축학회장.
최창식 제40대 대한건축학회장.

연말이면 흔히 하는 말 중 하나가 '다사다난한 한해'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말이 참으로 무겁게 느껴진다. 작년의 광주화정 아파트 공사현장 사고, 올해의 검단신도시 아파트 공사현장 지하주차장 사고, 분당 정자교 붕괴사고 등 우리 일상의 안전을 위협하는 많은 사건사고들이 있었다. 
지금도 건설공사 안전관리 종합정보망에는 끊임없이 사고사례가 업데이트되고 있다. 이러한 안전사고의 원인은 매 상황마다 다양하지만, 지적되는 주요 원인 중의 하나는 안전불감증, 안전의식 저하이다.

우리 대한건축학회는 안전하고 행복한 삶의 공간 구현과 지속가능한 사회 발전을 위해 '안전패러다임'으로의 대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 모두 그 중요성을 익히 알고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안전'에 대하여 '욕망'과 연관지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는 그 동안의 과오를 반성함과 동시에 우리 모두에게 희망찬 미래를 그려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고자 함이다.

건축평론가 로완 무어(Rowan Moore)는 저서 '우리가 집을 짓는 10가지 이유(Why We Build)'에서 "건축은 안전을 바라는 것이든, 위엄·안식·정주를 위한 것이든, 만드는 사람의 욕망(desire)에서 시작된다. 건물은 사용하고 체험하는 사람들의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들의 욕망이 다시 건물을 바꾸고 변화시킨다"고 욕망의 영향을 기술하고 있다. 
욕망은 건축이라는 행위 생성의 기원으로서 순수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가족을 이루어 함께 삶을 영위하기를 바라는 자가 만든 집(home)은 가족의 삶 그 자체이자 건축의 본질이다.

하지만 욕망은 가끔씩 도구적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이들이 만든 집(house)은 개별자가 꿈꿀 삶을 표준화, 익명화하는 대신, 경제적 이익과 편리함을 제공한다. 
욕망의 영향을 건축산업과 사회 전반으로 확장해 생각해보면, 건축 행위가 벌어지는 모든 시작과 과정, 그리고 여기에 연관되어 있는 모든 이해관계자들은 욕망의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 특히 건축프로세스에서 욕망의 주체와 방향은 사업의 모든 결정을 좌우한다.

건축은 우리 모두가 가진 욕망으로부터 발현된 인류 공동의 산물로서 공공성을 또한 지닌다. 
개인의 욕망은 자유이자 권리 실현이므로 권장돼야 마땅하나, 사회 속에서 욕망 간 영향은 자칫 혼란을 야기할 수 있으며, 특히 집단의 욕망, 사회적 욕망은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자 공적 자본이 동반되므로 공공성의 관점에서 관리돼야 한다.

좋은 건축과 좋지 않은 건축을 구분한다면, 건축의 공공성 측면에서 품격과 품질을 기준으로 구분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여기서 '품격'이란 '주변환경과의 관계, 규모, 형태, 구조, 재료, 시공수준 등을 통해 그 목적과 지역의 정체성을 창출할 수 있는 적절성'을 말하며, '품질'은 '안전, 보건, 기능, 쾌적, 자원절약과 재활용 등의 객관적 성능'을 말한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도구적 욕망에 대한 관리로서 '안전패러다임으로의 대전환'이다. 건축이 국민의 모든 생활과 연관돼 있듯 건축안전은 범부처적일 수밖에 없다. 
문제 발생 자체를 방지하는 대책으로서 기획부터 시공 후 안전까지 건축 전분야를 망라하는 역할을 수행할 상위 법과 기관이 필요한 시점이다. 
따라서 우리 대한건축학회는 선제적 실행전략으로 '건축안전보장특별법' 제정과 '대통령직속건축안전보장위원회' 설립, 나아가서는 '건축안전청'의 설립을 제안해본다. 

한편으로는 성능기반 설계를 장려하고, 설계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통한 검증과 프리콘(Pre-construction)의 도입, 건축 생애주기에 따른 절차별 안전계획 수립 및 정비, 명확한 책임과 권한 부여, 감리와 검사 프로세스 개선, 전문자격 검증, 법적 기준 개선 등 건축물의 품격과 품질의 향상을 위하여 실효성 있는 법제들을 마련, 정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정부와 산업계, 학계에서는 안전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선도할 기술과 기준의 발전을 위해 '뉴노멀시대 건축산업 설계‧생산‧유통‧시공‧유지관리 기술 및 생태계 개발' 등 거시적 차원의 대단위 연구과제(R&D)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건축안전은 건축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이자 원론적인 목표여야 한다. 이제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구현, 지속가능한 안전사회 구축을 위해 정부, 산업계, 학계 등 모든 분야에서 힘을 모아 건축안전을 최우선으로 관리하는 '안전패러다임'으로 대전환해야 마땅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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