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시공 등 잠재적 중대재해는 사망자 없어 처벌도 못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어느새 1년 9개월이 지났지만, 법은 여전히 건설업계의 가장 ‘뜨거운 감자’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해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에 그 책임을 묻는 법이다. 1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및 직업성 질병 환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그런데 법이 시행된 이후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경영계와 노동계 양측에서 쏟아지고 있다.
먼저 경영계는 중대재해처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형량이 지나치게 무겁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외국의 경우 중대재해 발생 시 미국은 7,000달러 이하의 벌금형, 영국은 2년 이하의 금고 또는 상한 없는 벌금형, 일본은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엔 이하의 벌금형, 독일은 5,000유로 이하의 벌금형, 프랑스는 1만유로 이하의 벌금형 등을 양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내 기준의 모호함도 문제점 중 하나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4조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이행 조치에서도 ‘필요한’ ‘급박한’ 등의 모호한 단어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떤 기준으로 삼고 있는지 알 수 없으며, 이는 지난해 12월 8일 개정된 이후에도 바뀐 것이 없었다.
노동계에서도 불만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지난해 1월 27일 시행 당시에는 상시고용자 수가 50인 이상인 사업장에 먼저 적용하고, 50인 미만인 사업장에는 내년 1월 27일부터 확대 적용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문제는 대한민국의 사업장 중 절대 다수가 상시고용자 수가 50인 미만이라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2021년 산업재해 현황 분석에 따르면 50인 미만 사업장의 비율은 전체의 98.3%, 전체 노동자 중 50인 미만 사업장에 소속된 비율도 59.8%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산업재해 피해자들 중 전체 72.7%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지난달 7일 임이자 국회의원이 중대재해처벌법의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을 2년 더 유예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노동계의 반발이 더욱 커졌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지난 10년간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가 1만2,045명인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또다시 늦추는 것은 사실상 이들의 죽음을 방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산업재해 발생건수가 오히려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민홍철 국회의원이 근로복지공간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시공능력평가 상위 20개 건설업체들의 산업재해 인정 건수는 2018년 1,807건에서 지난해 3,626건으로 최근 5년간 무려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법 시행 직전인 2021년 2,907건에 비해 719건이 증가한 점, 지난 4월 발생한 인천 검단신도시 신축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는 법이 사실상 중대재해 예방에 전혀 효과가 없다는 것만 여실히 증명하고 말았다. 게다가 최근 다발하고 있는 부실시공 관련 사건들은 이 법으로 처벌할 수도 없다.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가 일어나도록 방조한 ‘과실’의 책임이 아닌 중대재해가 일어났다는 ‘결과’의 책임만을 묻는 ‘반쪽짜리’ 법이다. 특히 다양한 공종이 한 곳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건설업 사업주에게는 더욱 억울할 수밖에 없다. 사업주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중대재해와 인명피해를 예방할 수 있고 또 그 책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조차 알려주지 않으면서 과연 어떻게 중대재해를 방지하겠다는 말인가.
물론 산업재해 중 절대다수가 누군가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을 때 일어나는 만큼 산업재해를 방지하기 위해 각 주체에게 알맞은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고 이를 엄정히 처벌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재해가 발생한 뒤에야 책임자를 색출하고 처벌하는 것은 고육지책에 불과하다. 진정으로 중대재해가 근절되기를 바란다면, 산업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끊이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을 탐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 법에 적용함으로써 법이 모두를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한국건설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