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경 50주년, 새로운 ‘비전’을 세우다
한국 조경 50주년, 새로운 ‘비전’을 세우다
  • 황순호 기자
  • 승인 2022.07.11 16: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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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환경대학원서 한국 조경 50주년 비전플랜선언 토론회 개최
조경의 정체성과 전문성, 추구해야 할 가치를 논하다
지속가능한 개발, 현장 중심의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때

조경(造景). 토지나 시설물을 대상으로 인문적, 과학적 지식을 응용해 경관을 생태적, 기능적, 심미적으로 조성하기 위해 계획・설계・시공・관리하는 업이라고 조경진흥법은 정의하고 있다.

자신이 가진 인문적・과학적 지식을 활용해 토지를 계획・설계・시공・관리,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

2022년은 대한민국에 조경이 첫 발을 내딛은 지 50주년이 되는 기념비적인 해이다. 온 나라가 산업화・도시화를 부르짖고 있던 1970년대, 삭막한 도시에 한 조각 ‘푸르름’을 더하고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게 도와준 것이 바로 조경이었다.

㈔한국조경학회(이하 조경학회)는 지난달 29일 서울대 환경대학원 글로컬홀에서 ‘한국조경50 비전플랜선언 토론회’를 개최, 국내 조경 전문가들이 국내 조경의 현주소를 돌이켜보고 앞으로 어떤 길을 향해야 할지를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조경진 조경학회장은 환영사를 통해 “한국조경 50년을 맞아 앞으로 향후 50년 동안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며 “비전플랜 선언 등 준비해 온 내용들을 공유하고 다른 고견들에 귀를 기울여 앞으로의 전략 수립에 보완할 계획”이라고 토론회를 개최한 목적을 밝혔다.

조경학회는 지난해 조경의 새 비전을 모색하고자 비전플랜위원회를 구성해 ▷조경의 개념과 정체성 ▷조경의 영역성과 전문성 ▷미래 환경의 변화와 조경의 대응 등의 분야에서 여러 의견을 수렴해 왔으며, 특히 지난 3월 열린 조경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이론과 실무의 균형 ▷미래 변화 대응 ▷기술 혁신과 사회적 책임 ▷개방적 자세와 문화적 기여 ▷인재 양성 등을 골자로 한 ‘한국조경 50 비전플랜’ 선언문의 초안을 제안한 바 있다.

◼ 조경의 개념과 정체성

이상민 AURI 선임연구위원과 박재민 청주대 교수는 전문가 73명, 일반인 50명, 학생 227명을 대상으로 ‘내가 생각하는 조경은 ○○이다’라는 설문조사를 실시, 현 시점에서 우리가 이해・인식하고 있는 ‘조경’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했다.

설문조사 결과 일반인들은 본인이 생각하는 조경의 ‘정의’에 대해 묻는 질문에 ‘삶의 배경’ ‘삶의 질을 올려주는 요소’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는 기술’ 등 조경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을 구체화한 반면, 학생들은 ‘지속가능한 생태’ ‘식재를 통한 공간 조성’ ‘자연과 인간의 중간거점’ 등 조경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내리려 노력했으며, 전문가들은 ‘비논리적 이상과 현실의 논리적 균형을 찾아야 하는 일’ ‘모든 생명체가 지속 가능할 수 있는 존재 및 수단’ ‘대지, 공간을 다루는 예술’ 등 본인이 생각하는 ‘조경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중심으로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경의 미래 전망을 묻는 문항에서는 일반인의 82% 이상, 학생의 76.1% 이상이 ‘밝음’ 이상으로 응답한 반면 전문가들은 단 47.2%만이 밝다고 응답, ‘어두움’ 이하 또한 29.1%를 기록하는 등 종사자와 비종사자 간 인식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조경을 상상하라! 메타버스로 만난 조경’ 공모전을 개최해 가상 공간 속에서 물리적인 구애 없이 ‘조경’을 통해 자신을 구현하는 자리를 가지기도 했다. 현실에서 공간을 구현하고 특히 인간의 감각을 다루는 ‘조경’이라는 분야가, 그 대척점에 있는 메타버스와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함이다.

참가자들은 사후 설문조사에서 ‘향후 유사한 프로그램이 있다면 참여할 의사가 있는가’라는 문항에 92%가 ‘있다’고 응답, 가상현실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냄과 동시에 미래 조경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했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이상민 연구위원은 “메타버스가 향후 조경의 경계를 늘리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겠지만 지금의 산업구조 속에서 이를 수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면이 있다”며 “조경의 현주소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지점을 살리고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을 개척함으로써 시대적 변화와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조경 산업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조경의 영역과 전문성

서미경 해안건축사사무소 수석과 안명준 느티 조경시공연구소장은 현재 한국 조경의 영역 및 그 전문성의 현주소를 조사 및 분석함으로써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했다.

2013년 10월 개정된 한국조경헌장에 따르면, 조경은 생태적 위기에 대처하는 실천적 해법을 제시하고, 공동체 형성을 위한 소통의 장을 마련하며,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경관을 구현하고자 자연적 가치・사회적 가치・문화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특히 공학・제조・건설 등을 중심으로 자연/사회과학・예술・농/임/어업 등의 영역과 연관이 깊으며, 보건복지・정보통신・교육 등의 분야와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조경 기술 산업은 건축기술 및 엔지니어링을 중심으로 조경서비스・전문기술서비스・연구개발・건설 등에 편중돼 있으며, 설계, 시공 등의 단위사업이 제도에 따라 규정・범주화되긴 했으나 새로운 도전이나 활동의 개척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현실을 지적했다.

안명준 연구소장은 지난 2020년 1월 조경업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조경의 기술적 고유성과 전문성을 감안한 단계별 실무 확대 ▷조경실무의 전문성 강화 방안 강구 ▷사회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장기적인 조경 실무 확대 추진 등을 주문했다.

◼ 미래 환경 변화와 조경의 대응

김건우 한양대 교수와 전진형 고려대 교수는 ‘미래 환경’에 주목했다.

김건우 교수와 전진형 교수는 미래 조경이 지속가능한 시스템 속에서 환경, 공정, 경제적 가치를 포함하며 도시 회복탄력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키워드임을 지적하고, ▷미래 환경 ▷웰빙 ▷기후변화 등의 키워드로 1년간 빅데이터 텍스트마이닝을 거친 결과를 통해 조경이 미래 환경을 위해 수행해야 할 역할에 대해 고찰했다.

먼저 미래환경에서는 각 기업들이 이른바 ESG 경영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고 각 나라마다 지속가능한 개발 등의 목표를 세우고 있는 시대상을 확인,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포착함으로써 변화무쌍한 미래 환경 변화에 대해 그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공공다중이용시설 이용 및 집단 활동이 제한됨에 따라 사람들이 그 대안으로 조경이 제공하는 다양한 혜택 및 안정감 등을 추구하며 조경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이 생겼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웰빙의 경우 건강・다이어트・웰빙푸드 등의 연관어를 바탕으로 보건도시・보행도시・건강도시・도시농업・레저 등 주민들의 건강 증진 및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 영역을 확장해야 함을 시사했다.

또 많은 국민들이 ‘기후변화’와 그 대응책을 현 시대의 가장 큰 패러다임으로 여기고 있는 만큼 탄소중립과 더불어 에너지 사용량 절감 등에서 조경이 기여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진 종합토론에서는 김태경 한국조경학회 수석부회장(차기 학회장)을 좌장으로 ▷심왕섭 환경조경발전재단 이사장 ▷옥승엽 대한전문건설협회 조경시설물설치공사업협의회장 ▷이재홍 대한전문건설협회 조경식재공사업협의회장 ▷이정현 대한건설협회 조경위원장 ▷이홍길 한국조경협회장 ▷정길균 놀이시설조경자재협회장 등이 참석해 의견을 나누었다.

심왕섭 이사장은 조경을 단순한 ‘기술’이 아닌 ‘예술’의 영역으로 바라보며 그 영역을 넓혀 나갈 것을 제안하는 한편, 조경진흥법 등 조경 관련 명문법이 있음에도 현업 종사자들이 이를 잘 알지 못하는 사실을 지적하며 이에 대한 교육을 커리큘럼에 추가해 조경인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고 발전 방향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옥승엽 협의회장은 지난해 조경과 출신자들의 업계 종사 현황을 조사한 결과 전체 11만명가량인 조경산업 관련 기술자 중 6만명가량이 조경 전담 인력으로 종사하고 있으나, 조경시공에 대한 커리큘럼이 상대적으로 부실해 현장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전문건설업의 대업종화로 인해 조경 업역을 지키기 어려워진 상황 속에서 조경시공에 대한 교육 강화 및 조경인의 사회적 위상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재홍 회장은 “약 160조원에 달하는 건설산업 시장에서 조경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7조원으로 전체 4.4%에 불과하다”며 이를 확장・발전하기 위해서는 학계의 교육 고도화, 산업계의 기술개발 등을 통해 조경인들의 전문성을 더욱 높이고 지역마다 기후변화 대응 등에 대한 대책을 연구,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데 민・관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정현 위원장은 조경의 ‘질적 성장’에 주목, 조경이 실생활에 어떻게 와닿고 있는지를 적극 홍보해 국민들의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정길균 협회장은 “공원 조성시 녹지・시설물 조성이 필수인 만큼 연관 업종과의 주기적인 협업・상생 노력을 기울여 이것이 조경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건설신문 황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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