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EU 택소노미, 어떻게 볼 것인가
[논단] EU 택소노미, 어떻게 볼 것인가
  •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 승인 2022.02.10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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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선 토론에서 제시된 EU택소노미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일반인은 물론 전문가에게도 생소할 수 있는 단어인 택소노미가 대선 후보 토론에서 나왔다는 것은, 정치가에게도 이에 대한 상당한 지식이 필요함과 더불어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이슈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반증이다.
택소노미(Taxonomy)는 ‘분류체계’라는 의미로, 주로 생물학이나 광물학 등 다양한 성격의 물질이나 생명체를 특성에 따라 분류하는 체계를 말한다. 
예를 들어 생명체를 동물과 식물로 구분하고 동물을 척추동물, 무척추동물로 나누고 다시 척추동물의 하위로 온혈동물, 냉혈동물 등으로 구분해 나가는 것이다. 
EU택소노미는 유럽연합 27개국에 공통으로 적용하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경제활동을  가리키는 것으로, 기업이 수행하는 다양한 활동을 기후변화 대응의 관점에서 바람직한 활동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라고 보면 된다. 
유럽연합은 택소노미에 대해 회원국들이 과민하게 반응할 것을 경계해 택소노미가 강제조항이 아니라 민간투자자들에게 주는 투자 지침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회원국들에게는 택소노미에 따라 각국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어디에 얼마를 투자했는지를 보고해야 하는 의무가 있어 그 무게가 작지 않다. 
즉, 투자 여부는 각국의 자유지만 투자 사실은 EU에 반드시 보고해야 하며, 이를 통해 EU 회원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노력을 평가하겠다는 의미다.
EU택소노미는 2020년에 제정돼 지난 1월에 개정안이 제시됐다. 개정안의 핵심은 가스발전과 원자력발전을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개정안은 4개월의 회원국 동의 절차를 거쳐 빠르면 오는 6월, 2개월의 동의 검토 기간 연장을 거쳐 늦어도 8월이면 발효할 예정이다. 단, EU 27개 회원국 중 20개국 이상이 반대하거나 인구비율로 65% 이상의 회원국이 반대하고 유럽의회의 과반수가 반대하면 부결될 수도 있다. 
그러나 2년 가까이 검토하고 사전에 여러 위원회와 각국 간 조정을 거쳐 제시된 만큼 개정안이 부결될 것으로 전망하는 외신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EU택소노미가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논란이 된 것은 개정안을 두고 당사국들 사이에서 막판까지 치열하게 벌어졌던 논쟁이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재현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환경주의자들은 이번 EU택소노미 개정이 이른바 ‘그린 워싱(Green Washing)’을 조장했다고 비난한다. 
그린 워싱은 탄소중립에 기여하는 에너지원이 아님에도 그린 에너지로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것을 말하는데,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가스발전과 환경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 사용후핵연료 처분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원자력발전이 EU택소노미에 포함됐다는 것이다. 
EU 회원국 중 원전 대국인 프랑스를 필두로 한 12개국은 애초부터 원자력발전 포함에 찬성했으며, 탈원전을 대표하는 독일 등 5개국은 이를 반대해 유럽재판소에 제소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EU는 기후변화 대응에 가장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21세기 내에 지구 온도상승을 섭씨 2도 이하로 제한하는 목표를 세운 파리기후변화협약을 주도한 것은 물론, 유럽이 최대로 온실가스를 배출한 1990년 대비 2030년에 55% 배출 감축을 목표로 하는 ‘FIT for 55’를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는 배출권거래제 강화, 탄소국경조정제 도입, 2035년부터 내연기관 출시 금지 등 매우 강력한 규제수단을 포함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이 세계적으로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이용을 선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EU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택소노미에 가스와 원자력을 ‘Transition Energy’ (잠정적 에너지)라고 하면서까지 포함한 것은, 재생에너지만으로는  2050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없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또한 가스는 기존의 석탄 및 유류발전을 대체하는 조건으로 2030년까지 투자를 허용하고 있으며, 원전은 신규 원전은 2045년까지 건설허가를 취득하는 프로젝트, 기존 원전은 2040년까지 계속운전을 위한 발전소 업그레이드 프로젝트에 투자를 허용하고 있다. 
원전의 통상 계획 건설기간이 5년이고, 계속운전 허용 기간을 10년으로 보면 이는 가스발전의 경우 2030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까지만, 원전은 2050 탄소중립까지만 활용하라는 의미이다. 이는 탄소중립을 위해 가스보다는 원전의 이용 확대에 실질적으로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K택소노미를 발표하면서 가스는 포함했으나 원전을 배제한 바 있다. 이는 국제적인 동향과 동떨어진 것으로, 유럽에 비하면 우리는 재생에너지로 탄소중립을 달성하기가 훨씬 어렵다. 
유럽마저도 현실적 한계를 인정하고 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하고 있는데, 여기서 우리가 망설일 이유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정리=한국건설신문 황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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