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판교개발…앞으로의 과제
논단-판교개발…앞으로의 과제
  • 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
  • 승인 2001.06.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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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판교를 개발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이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매번 찬반론이 엇갈리며 결정이 늦추어졌다. 그나마 정책방향이 “개발”로 확정된 지금에도 서울시, 경기도, 환경단체들의 강렬한 반대가 계속되고 있어, 정말 판교개발이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마저 생기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서울시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 요지는 판교개발이 서울의 교통난을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즉 판교개발로 인해 발생하는 교통의 혼잡비용을 서울시민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판교지역개발로 인해 교통난이 심각해 질 것 같지는 않다. 현재 계획되어 있는 각종 도로와 철도가 입주시기에 맞추어 완공된다면 판교의 개발밀도로 미루어 보건대, 지금보다 악화된 교통환경이 발생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판교지역 주변에서 일어나게 될 무임승차식 개발을 막지 못한다면, 서울시의 우려가 어느 정도 적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판교가 개발되면, 서울시 거주 인구의 일부가 판교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서울로의 접근성도 용이할 뿐만 아니라 판교가 가지고 있는 자연환경적인 요건이 쾌적한 주거환경을 원하는 수요자들에게 매우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시는 용도지역세분기준을 결정하고, 재건축사업 시 지구단위계획 수립을 의무화함으로써 기존 주택의 개축에 많은 제한을 가하고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주택의 교체수요에 대한 공급방법에 한계가 있다. 또한 서울의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는 벤처단지도 일부는 판교 벤처단지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서울로서는 중상층의 주거이동과, 벤처기업들의 유출로 상당부문의 세수감소가 예상된다.

경기도의 입장은 서울시와 조금 다르다. 개발 자체를 부인하거나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주거단지의 비중을 줄이고 벤처단지의 부지면적을 좀 더 확대하자는 것이다. 경기도가 내세우는 명분은 판교개발의 자족성 확보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주장에는 다소 무리와 모순이 있다. 서울과 30㎞가 떨어진 수도권 5개 신도시도 자족성을 확보하는데 실패했다. 그런데 서울에서 불과 4㎞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판교지역에 과연 자족성이 가능한 이야기인가? 그리고 벤처단지를 확대할 경우 벤처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한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서울보다 임대료 수준이 저렴하다던가 아니면 기반시설을 조기에 확보하여 접근을 용이하게 하고, 정보 통신망을 이용하기 수월해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을 경기도가 부담하여 줄 것인가? 성남시가 주변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도 판교를 주거단지 위주로 개발하려는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판교지역에 개발될 주거단지는 수요자가 많을 것이라는 것과, 이에 따른 개발이익의 확보가 사업추진의 담보가 되기 때문이다.

환경단체들의 반발은 여전하다. 서울 주변의 마지막 녹지를 보존하여 환경피해를 줄이자는 것이다. 그러나 보존을 위한 대책에는 미흡한 실정이다. 영국의 유명한 환경보호 단체인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는 1895년 영국에서부터 시작된 환경운동으로 국민들의 자발적인 헌금이나 기부를 바탕으로 보전할 가치가 있는 토지, 환경, 문화재, 동식물, 시설 등을 매입한 후 이를 영구히 관리해 가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운동을 일컫는다. 지금은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의 여러 나라,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등 세계 각지에서 이 운동이 보편화되고 있다-는 개발압력이 존재하는 지역의 보존을 위해 회원단체들이 자금을 모아 해당 지역의 토지를 아예 매입해 버린다. 해당 토지를 국유화하거나 공유화 하지 않는 한 개발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환경단체들도 판교지역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대가를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판교지역에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재산권 피해를 “환경보호”라는 명분으로만 무마시킬 수 있겠는가? 만약 자신의 토지가 개발지역에 있다면, 그걸 포기하고 개발을 반대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70년대 도시화가 급격히 진전과 함께 경제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수행된 많은 지역개발과 도시개발에는 오로지 한가지 목표만 있었다. “개발=잘 사는 길” 이라는 모든 주체들의 공동목표였다. 따라서 개발이라는 명분이 다른 모든 것을 우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점점 “개발”이 어려워지고 있다. 개발의 명분만이 아니라 보존의 명분도 중요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관련된 주체들간의 이해관계가 더욱 첨예한 사안이 되고 있다. 우리도 지역이기주의, 일명 님비(NIMBY: Not In My Back Yard)현상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 같다.

요즘 남녀간의 세태를 들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유행어가 있다. 개발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우리지역에 이로우면 지역발전이고 해로우면 환경파괴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의 대립 속에서 21세기 우리의 국토개발과 지역개발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지금까지는 대의명분이 있으면 작은 목소리들이 무시되어 왔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작고 다양한 명분이 존중되는 시기이다. 판교개발을 둘러싼 많은 명분 중에 어느 하나만을 선택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동시에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다면 명분에 우선순위를 매기자. 그리고 하나 하나의 명분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자.

지금은 “저밀도 환경친화적 개발”에 우선순위를 두자. 그 다음은 지난날의 과오를 교훈 삼아 신도시 주변의 난개발을 철저히 방지하자. 중립적인 위치에서 이러한 우선순위대로 개발을 이끌어줄 정부 당국의 책임감 있는 역할이 새삼 아쉬울 뿐이다.

김현아 책임연구원
<한국건설산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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