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영국의 건설산업 혁신이 주는 교훈
<특별기고>영국의 건설산업 혁신이 주는 교훈
  • 승인 2004.07.12 12: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병선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어느 나라건 건설 산업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높다. 비중의 크기에 비해 혁신이 더디다는 것도 나라마다 대체로 유사하다. 건설 산업이 갖는 특수성에 기인한 듯 하다.

비교적 최근에 이 같은 건설 산업의 고질을 타파하고자 하는 시도가 선진 여러 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영국이다.

영국은 일찍이 국민경제에서 건설 산업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공공의 주도하에 혁신운동에 나섰다. 그리고 금년에는 여러 운동조직을 통폐합하여 건설혁신센터를 발족시켰다. 이 조직은 공공과 민간 공동의 자금지원을 받아 건설 산업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이밖에도 이미 90년대부터 시작된 혁신운동은 공공부문의 건설조달업무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흔히 개혁이나 혁신을 추진할 때,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을 초래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영국은 발주자와 건설업계의 상생(win-win)에 혁신의 초점을 두고 있다.

혁신을 통해 발주자는 예산절감과 품질제고라는 성과를 거두고, 건설업계는 사업의 안정성과 수익성을 높이고 있다. 이를테면 ‘만족한 발주자, 돈버는 건설업체’가 혁신이 겨냥하는 목표다. 건설업체는 폭리(暴利)만을 취한다고 불신하고, 발주자는 능력과 결탁을 의심해서 신뢰하지 못하는 우리의 풍토와는 대비된다.

우리정부가 국제표준(Global Standard)이라고 해서 최근에 확대 도입하고 있는 최저가낙찰제만 해도 그렇다. 영국은 최저가낙찰제가 반드시 공사비절감과 품질향상을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래서 최저가를 대신하여 최고 가치(best value) 낙찰방식을 도입해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 방식은 값싼게 비지떡이니 차라리 능력 있는 기업에게 정당한 보상을 주어야 발주자의 예산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실은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 회원국이나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최저가 보다는 최고가치 낙찰방식을 많이 쓰고 있다.

이렇게 보면 최저가 보다는 최고가치 낙찰제가 오히려 국제표준에 보다 가깝다고 하겠다. 정부재정을 절약한다는 명분 아래 최저가낙찰제를 계속 확대코자 하는 우리 정부도 깊이 참고해야 할 대목이다. 재정 절약에만 몰두하다 불량만두 같은 사태를 초래할 수는 없지 않은가. 더욱이 국민의 삶의 질을 책임지는 건설 산업에서.

건설 산업의 혁신을 위해서는 공공발주자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생각도 영국 건설 산업 혁신의 핵심이다. 리더십 강화, 우수시공(best practice)사례의 발굴, 교육 훈련, 각종 지침의 개발과 활용 등을 통해 영국의 공공발주자는 혁신의 수동적인 수용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주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계약관계상 ‘갑’의 지위에 있는 공공발주자들이 ‘을’인 건설업체에게 일방적으로 개혁이나 혁신을 요구하지 않고, 스스로가 먼저 변함으로써 건설 산업 전반의 혁신을 주도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 하다.

시범사업을 시행하면서 혁신을 단계적으로 건설 산업 전반에 확산시킨 접근방법도 주목할만한 혁신전략이다. 채택된 혁신방안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에 대한 검증 없이 전면적으로 도입되면 사후적으로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경우는 그런 사례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오랜 논의를 거쳐서 종합적으로 체계화한 혁신방안을 만들었다. 이렇게 마련한 방안은 시범사업을 통하여 직접 실험해 보고, 성과를 객관적으로 측정했다.

그 결과 합리적이라고 판정된 혁신의 방법을 널리 확산시켜 나가는 절차를 취했다.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한 접근방법이다. 우리나라는 이 점에서도 영국에 비해 뒤떨어진다.

이를테면 최근에 건설 산업의 개혁수단으로 도입된 최저가낙찰제, 건설사업관리(CM)제도, 턴키제도, 책임감리제도 등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개혁수단을 고수하는 것은 건설 산업의 선진화를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보다 신중하고 길게 보는 이른바 체계적이고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물론 영국이라고 해서 우리보다 모두 나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닐 게다. 뿐만 아니라 영국은 우리나라와는 전통이나 사회 환경이 판이하다.

따라서 영국의 혁신방법이 우리에게 반드시 적합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혁신은 언제나 어느 곳에나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영국 건설혁신센터가 내세우고 있는 한 마디 경구는 그래서 신선한 감동을 준다. “만일 우리가 과거의 방식만을 고수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과거를 넘어설 수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