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자재 관급의무화...>정부정책기조 역행·산업발전 저해
<해설-자재 관급의무화...>정부정책기조 역행·산업발전 저해
  • 문성일 기자
  • 승인 2001.10.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간접비 추가불가피, 건설업 생산체계 흔들어 / 중소업체 판로확대커녕 나눠먹기식 전락 우려
▷중소특위 추진배경 =자재 관급의무화와 공사분리발주 확대 추진 취지에 대해 중소기업특별위원회(위원장 김덕배)는 중소기업 육성·보호 차원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해 중소특위는 이들의 판로를 지원하고 제값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행 국가계약법 시행규칙 제83조에 규정된 ‘관급임의화’를 수요처가 직접구매품목을 사전에 선정, 공사발주시 직접구매 품목별 금액이 5천만원 이상인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관급의무화’로 개정하자는 게 중소특위의 입장이다. 또한 시행령 68조와 관련 현행 규정을 공사가 기본계획서나 설계서 등에서 분리·분할된 경우 분리·분할계약을 의무화하자는 주장도 함께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중소특위의 이러한 요구는 그동안 추진해 왔던 단체·수의계약 물품과 중소기업간 경쟁품목의 관급의무화 제도 개선이 어렵게 되자, 우회적으로 ‘기관별 직접구매품목 지정제도’를 끄집어낸 것에 불과하다는 게 건설업계와 관련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제도 도입 및 변화 =자재 관급제도는 정부가 지난 66년 생산시설의 취약 및 시장경제질서의 미확정 등으로 자재의 안정적 공급 및 품질확보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아 자재관급을 통해 공사의 적기이행과 시공의 질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했다. 이후 지난 88년까지 시멘트·철근(1천만원 이상)의 경우에 한해 의무적으로 관급을 실시하는 등 임의적 관급제도와 병행돼 왔다.
그러다 89년1월1일부터 자재의 품질과 수급상황, 공사현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자재에 한해 관급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의무적 자재관급제도가 폐지됐었다. 이 제도는 또 금년 7월6일 규제개혁위원회 제78차 본회의에서 하자발생시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고 정부가 민간 경쟁시장에 인위적으로 관여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지적에 따라 미수용키로 결정된 바 있다.
이와 함께 공사분리·분할발주와 관련해서는 지난 93년9월10일 당시 행정쇄신위원회가 재무부와 건설부, 대한건설협회, 설비공사협회 등이 제시한 의견을 수렴·종합해 이듬해인 94년6월30일 현행 규정대로 개정, 시행돼 오고 있다.

▷정부 정책기조 역행 =정부는 그동안 세계화와 지방화에 따른 국내외적 환경변화에 부응키 위해 관급자재의 구매·공급제도를 점진적으로 축소하는 정책을 펴 왔다. 또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단체수의계약 품목도 축소내지는 폐지하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결국 시설공사용 자재를 분리발주하자는 주장은 이러한 정부 정책의 일관성에 배치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건설산업연구원 최민수 박사는 “WTO 정부조달협정 가입이후인 지난 97년부터 정부조달시장이 개방된 상태에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단체수의계약을 확대하려는 것은 시대적 조류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시설공사에서 자재를 분리발주할 경우 구매계약에서 대금지급에 이르기까지 절차가 복잡해 행정력 등 간접비용이 추가적으로 발생하게 된다”며 “이는 작은 정부를 구현한다는 정부 시책에도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건설협회 백영권 정책개발실장은 “자재 직접구매를 의무화할 경우 중소자재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3만여개가 넘는 중소건설업체의 희생을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등 산업의 균형육성정책에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공사분리발주 의무화도 건설산업기본법의 건설업 생산체계를 근본적으로 흔들어 국가의 건설산업 정책을 제대로 운영할 수 없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산업 발전 저해 =자재 관급의무화는 사급으로 조달하는 것보다 건설업체의 관리비용을 증가시킬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즉 사전구매될 경우 현장 보관에 따른 유지비용이 증가될 것이며, 반대로 적기공급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공기 지연을 초래하게 돼 추가적 공사비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하자발생시 책임관계가 불분명하게 돼 그로 인한 분쟁발생 우려도 커지게 된다. 이 경우 부실자재납품업체의 판명이 어려워 공급 참여 제조업체간 2차분쟁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함께 공사분리·분할발주의 경우도 공사를 원칙없이 상황에 따라 분리·분할계약함에 따른 공사의 비효율성을 초래함은 물론 입찰·계약의 업무와 특정업체 봐주기 등의 문제점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

▷실효성 의구심 =유망한 신기술·신제품 보유업체의 판로를 확대해 주기 위해서는 정부의 우선 구매 등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건설업체나 전문가들 모두 큰 이견이 없다. 다만 분리발주 활성화가 중소기업의 제품구매를 증대시키는 데 일조할 수 있겠느냐에 대해서는 이들 모두 고개를 젓는다.
중소특위의 주장대로 해당품목 조합과 단체수의계약을 통해 분리 발주된 자재를 계약·공급토록 할 경우 사업자 조합에서 일괄 수주한 후 조합원인 업체의 능력비율에 따라 물량을 배분해 공급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경우 조합원들의 이해관계가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우수 신기술·신제품의 보유 및 개발업체에 대한 판로 확대 유도가 매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결국 신규 중소업체나 유망 벤처기업의 조합 가입도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기존 조합원간의 나눠먹기식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품질보다는 공급업체 선정을 위한 각종 로비와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업계와 전문가들은 관급의무화가 장기적으로 중소자재업계의 발전을 도모하는 최선의 방법인지에 대한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문성일 기자 simoon@conslove.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