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건설업역 및 생산체계 개편 위한 두가지 접근방법
<논단>건설업역 및 생산체계 개편 위한 두가지 접근방법
  • 승인 2004.04.06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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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정책동향연구부장(한국건설산업연구원)


어떤 제도개선이건 간에 두가지 접근방법이 있다. 하나는 점진적·단계적 접근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급진적·혁신적인 접근방법이다.

두가지 접근방법 가운데 일반적으로 점진적·단계적 접근방법이 채택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점진적·단계적 접근방법이 통용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특히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저항의 강도가 큰 사안일수록 점진적·단계적 접근방법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건설산업의 경우 건설업역 및 생산체계 개편이 이런 사안에 해당될 것이다.

건설업역 및 생산체계 개편과 관련하여 지난 3월 18일자로 입법예고된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의 내용은 점진적·단계적인 접근방법을 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일반건설업과 전문건설업간의 겸업제한을 폐지하겠다던 공청회 당시의 혁신적인 방안 대신, 단계적으로 겸업허용 업종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의무하도급제도는 전문건설업계의 준비기간을 감안하여 2007년부터 폐지하겠다고 했다. 직접시공제도는 일차적으로 30억원 미만 공사에 적용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이해관계 집단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개선방안이 포함된 것만 해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제도개선 추진과정을 생각해 보면, 이같은 점진적·단계적인 개선방안들이 현실화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일반건설업과 전문건설업간의 겸업제한 문제부터 보자.

이 문제는 이미 1998년에 규제개혁위원회에서 폐지하기로 결정했던 사안이다. 다만, 건설업역 및 생산체계의 일대 변혁을 가져올 사안이기 때문에 충분한 준비기간을 준다는 취지에서 2002년말까지 폐지하도록 한다는 유예기간을 두었다.

그런데 폐지 시한이 1년이 지난 지금도 겸업허용 업종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렇다면 ‘단계적으로' 겸업허용 업종을 늘리는 것은 가능할까? 이 또한 어떤 업종부터 할 것인가로 들어가게 되면 숱한 논란을 겪으면서 시간만 질질 끌게 될 소지가 높다.

의무하도급제도를 2007년부터 폐지하겠다지만, 이것도 그때 가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부대입찰제 사례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폐지 시한을 정해 놓고도 두 세차례에 걸쳐 시한을 연장한 사안이 어디 하나 둘인가.

그만큼 정부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이 박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직접시공제도 또한 어떤 구조에서 실효성이 있을 것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일반건설업과 전문건설업간 겸업제한 폐지가 이루어진다면, 대기업인 일반건설업체와 실제 시공을 담당하는 공종별 전문건설업체간의 공동도급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라면 직접시공제도가 큰 효과를 보여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건설업역 및 생산체계를 전제로 할 경우, 직접시공제도는 원도급자의 위장직영 등과 같은 여러 가지 문제를 내포하게 될 것 같다.

반면에 하도급 저가심사제도는 당장 의무화하겠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의무하도급제도는 하도급자의 물량 확보 수단이고, 하도급 저가심사제도 의무화는 하도급 금액의 보장 수단이다.

이들 제도는 둘 다 하도급자가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보호되어야 한다는 논리에 기반하고 있으며, 일반건설업과 전문건설업간 겸업제한이란 규제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지금 현재의 건설산업 구조는 이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예컨대, 최근 몇년 사이에 등록한 일반건설업자중 상당수가 입찰브로커에 불과한 페이퍼 컴퍼니인데도 ‘건설산업기본법'에서는 일반건설업자이기 때문에 ‘계획, 조정, 관리'를 하면서 시공하는 업자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에 전문건설업자는 수십년을 영위해 오면서 수백억원, 수천억원대의 매출을 올려도 ‘공종별로 시공'만 하는 업자에게 불과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건설산업 내부의 환경변화를 법령이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아무튼 일반건설업과 전문건설업이라는 이원적인 업역구분과 겸업제한은 건설생산체계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각종 하도급 규제의 근원도 여기에 있다 보니, 겸업제한의 타파없이 건설생산체계의 개편이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겸업제한의 폐지가 없는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은 핵심을 비껴 나간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 점진적·단계적인 방법으로 겸업허용 업종을 늘려서 먼 미래에 겸업제한을 없애는 접근방법을 채택할 것이 아니라, 겸업제한의 전면폐지를 먼저 단행하고, 이와 관련된 건설업역 및 생산체계의 개편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건설업역 및 생산체계의 혁신적인 개편은 최저가 낙찰제 확대와도 연계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최근 들어 최저가 낙찰제 공사의 낙찰률은 40%수준으로까지 떨어졌다.

낙찰률이 떨어지면 질수록, 건설업체가 기술력과 창의성을 발휘하여 공사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일반건설업과 전문건설업의 업역구분, 겸업제한, 의무하도급, 하도급 저가심사 의무화가 지속될 경우 효율적인 건설생산체계를 구성하기 어렵고, 공사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여지도 그만큼 적다.

건설업역과 생산체계의 개편을 최저가 낙찰제 확대와 병행해서 추진해야 할 필요도 여기에 있다.

아직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은 최종 확정된 안이 아니다.

입법예고기간 동안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되, 전문건설업종이 생기던 1975년부터 지금까지 형성되어 온 건설업역 및 생산체계를 혁신할 수 있도록, 이미 작년 11월의 공청회에서 제시하였던 바와 같이, 겸업제한 폐지방안을 재차 상정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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