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무생물에도 존재가치가? 그린유토피아(Green Utopia)를 지향하는 가치관
[특별기고] 무생물에도 존재가치가? 그린유토피아(Green Utopia)를 지향하는 가치관
  • 임승빈 환경조경나눔연구원 원장
  • 승인 2018.07.2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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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적, 생태적 가치관 필요
자율적 시민참여와 녹색생활 실천해야
▲ 임승빈 환경조경나눔연구원 원장.

“그린유토피아는 녹색이 충만한 이상적 도시·사회를 말한다”고 정의를 내릴 때 일차적으로는 녹색이 충만한, 녹시율 100%의 이상적 도시 모습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으며, 이차적으로는 성숙하고 행복한 녹색시민이 주인인 이상적 도시커뮤니티를 의미한다.
물리적으로 완벽한 녹색이상도시를 만들었다고 해도, 건강하고 행복한 도시사회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녹색도시의 시민들이 도시커뮤니티 활동에 자율적으로 참여해 꾾임없이 변화하는 물리적, 사회적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하며, 동시에 일상에서 녹색생활양식이 지속적으로 실천돼야 한다.
이러한 녹색활동에 대한 자율적 시민참여와 친환경적 생활양식의 실천을 위해서는, 녹색이상도시의 시민들이 친환경, 친지구적 패러다임을 공유해야함은 물론이다.
최근의 도시개발 및 관리는 전문가 혹은 행정 주도에서 도시의 주인으로서 ‘시민참여,’ 더 나아가 ‘시민주도’로 바뀌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은 시민주도로의 과도기라 할 수 있다. 시민참여란, 한정된 예산범위 내에서 도로를 더 만들 것인지, 공원을 더 만들 것인지, 혹은 방범등을 더 설치할 것인지를 시민들 의견을 물어 결정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시민주도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시민그룹을 만들어 특정목적을 위한 입법과 사업을 주도하는 것을 말하며, 부산에서 100만평 공원 조성을 주도하고 있는 ‘100만평문화공원조성범시민협의회’가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대의 물리적 사회적 환경변화 속에서 이와 같은 시민주도 혹은 시민참여가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시민단체 혹은 마을커뮤니티에 적극 참여해 의견을 개진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와 같은 성숙된 도시행정을 위해 전문가와 행정에서도 가만히 앉아 참여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교육, 워크샵, 홍보 등을 통해 시민들의 참여의식 향상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그린유토피아가치관.

그린유토피아는 종착점이 아니라, 시민참여를 통해 지속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이상적 도시에 살기 위한 출발점으로 이해돼야 한다.
그린유토피아는 녹색만 충만하면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일상생활에서 시민 모두가 친환경 녹색생활을 실천함으로써 비로소 달성될 수 있다.
‘소비는 미덕이다’라는 문구는 그린유토피아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말이다. 지구는 한정된 공간이고, 자원 또한 한정적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한정된 지구 자원을 후속세대와 함께 공유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의 소비생활을 가능한 검소하게 유지해야 한다.
이는 자원 절약뿐 아니라 쓰레기 배출 감소로 이어져 환경보존 및 오염 저감에도 큰 도움이 되며, 궁극적으로는 그린유토피아 달성에 긍정적 효과를 미치게 된다.
이시형 박사의 “물질적으로 좀 부족해도 맑게 살겠다는 청빈의 정신, 명예를 중히 여기는 고매한 인격, 나누고 베품에 극진한 선비정신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는 말은 환경위기 극복을 지향하는 그린유토피아인들도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린유토피아 달성과 유지를 위한 시민 참여와 그린지향적 일상생활의 실천을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시민들의 가치관과 사고의 방향성이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이어야 한다.
오늘날 인류가 환경재앙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인간을 자연보다 우위에 두고 인간만을 고려하는(anthr-opocentrism) 서구의 전통적 가치관에 뿌리를 둔 물질문명의 과도한 발달에 따른 부정적 영향에 기인한다.
아리스토텔레스(BC384∼322)는 인간만이 이성을 소유한다며 인간의 우월성을 강조했으며, 토마스 아퀴나스(1224~1274)는 인간만이 영혼을 지니고 있다 했고, 데카르트(1596~1650)는 동물에게는 의식이 없다고 해 역시 인간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산업혁명 이후 서구에서는 자연을 단순히 생산의 대상으로 이해해 생산성이 있는 경우에 자연은 가치를 가지며, 생산성이 없는 경우에 그 자연은 가치가 없거나 적다고 여겼다.
이러한 인간중심, 경제성 중심의 경향으로 인해 인간 이외의 동물이나 자연을 인간을 위한 도구로 사용함에 있어서 아무런 거리낌이나 죄의식이 없었으므로, 오늘날 환경파괴의 근저에 이러한 가치관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

▲ 덕수궁과 인왕산, 북악산: 고층빌딩군에 의해 자연과 도시가 단절된다. 그린유토피아에서는 자연과 도심을 연결하는 녹색벨트(그린인프라)가 도시축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자연과 도시는 상호의존적이다.

환경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포함한 전 지구적 생태환경을 배려하는 새로운 개념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소비’로의 방향전환이 요구된다.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응용생물학이라 할 수 있는 생태학이 등장(1866)했으며 이어서 환경생태학까지 등장했는데, 생태학에서는 인간이 다른 동물, 무생물과 더불어 자연을 구성하는 일원이며, 이들 모두가 동일한 ‘내재적 가치’를 지닌다고 보았다.
내재적 가치라 함은 모든 생명체가 인간과 동일한 생명가치를 지니며, 무생물 역시 생물과 동등한 고유한 존재가치를 지닌다고 보는 것이다. 즉 생태계의 건강성 유지를 위하여는 생물, 무생물 구별없이 모든 구성요소가 상호 의존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다른 동물, 식물, 무생물을 도구적으로 사용할 수 없으며, 건강한 자연을 위해 상호 존중하고 공동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주장의 한 예로 제임스 러브록은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바라보는 가이아(Gaia)가설을 제시한 바 있다.
이상과 같이 인간, 동물, 식물, 무생물 모두가 자연생태계의 일원으로 동등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으며 상호의존적이라는 사고는 동양에서는 이미 2천500년 전부터 노장사상, 신선사상, 불교사상 등에서 공통으로 제시되고 있는 중요한 개념이다.
환경위기 시대를 맞이해 동양의 전통적 사상이 환경문제 대응을 위한 주류적 가치관으로 등장하고 있음은, 동양권인 한국에 생태적 그린 유토피아 구현을 위한 정신적 바탕이 이미 마련돼 있다고 볼 수 있으며, 따라서 그린유토피아 구현을 선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잠재력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해방 후 개발과 경제성장과정에서 서양의 겉모습 베끼기에 몰두해 우리가 지닌 고유한 내재적 자산을 잊고 주로 밖으로만 시선을 열고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우리 고유의 정신적 자산을 소중히 여기고 이를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린유토피아의 구현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 돼야 한다.

 

임승빈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원장은 현재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이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공학사)하고 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졸업(조경학석사), University of Pennsylvania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 졸업 (조경학 석사), Virginia Polytechnic Institute & State University 환경설계 및 계획학 박사, 영국 런던대학교 박사후 과정(post-doc.), 미국 하버드대학교 조경학과 객원교수(visiting scholar)를 지냈다. 한국조경학회장, 한국농촌계획학회장, 한국경관협의회장, 한국인공지반녹화협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주요저서로 『조경계획·설계론』(2002), 『경관분석론』(2003), 『환경심리와 인간행태』(2007), 『도시경관계획론』(200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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