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
[특별인터뷰]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
  • 김덕수 기자
  • 승인 2018.07.11 1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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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건설업계 혼란, 정부의 명확한 가이드라인 없어

한국건설신문 김덕수 기자 = 7월부터 주당 근로시간 한도를 기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종업원 300인 이상 사업장에 의무 적용됐다.
정부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시대의 개막을 선언했지만 산업계 전반에서는 지나친 업무시간 단축에 따른 경영난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근로 시간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업종 특성상 건설업계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을 만나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과 건설업계의 대응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또한 지난 4월 9일 출간돼 건설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4차 산업혁명, 건설산업의 새로운 미래>의 출판 계기와 핵심 내용에 대해서도 살펴봤다.

 

- <주 52시간 근무제>가 전격 시행됐다. 너무 성급하게 이뤄진 조치라는 평가도 있다. 건설업계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이번 근로시간 단축 조치는 너무 급박하다.
일본이 8년간에 걸쳐 4시간, 프랑스가 16년간에 걸쳐 4시간을 단축했다. 독일은 29년간에 걸쳐 5시간을 단축했다.
이들 선진 외국 사례에 비춰볼 때 이번 조치는 너무나 급박하게 이뤄진 감이 있다. 급하게 먹는 밥이 체하는 법이다.
우리 정부와 기업의 준비가 충분한지를 묻고 싶다. 시행시기가 임박했어도 쟁점이 되고 있는 많은 사안에 대한 정부의 명확한 가이드라인도 없다.
건설업계는 자구책 마련에 분주하면서도 매우 혼란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건설업계 입장에서는 건설산업의 특성을 반영하고, 공사비 상승분을 보전하는 과제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건설산업은 수주산업이다. 수주 시점에서 계약을 통해 사실상 수익구조가 확정되는데, 시설물의 완성 이전에 근로시간 단축과 같이 사업자 귀책사유가 아닌 변동사유가 발생했을 때는 계약변경을 통한 공사비 보전이 필요하다.
장기간이 소요되는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는 그 필요성이 더욱 크다. 또한 건설업체들은 프로젝트 단위로 현장을 운영하고 있다. 건설현장에서는 날씨나 계절적 요인에 따른 근로시간의 편차도 크다. 탄력 근무제가 필요하다.
한 개의 공사현장에 대기업과 수많은 중소기업이 협력해 작업을 수행하기 때문에 기업의 상시 근로자 수가 아니라 현장규모를 기준으로 근로시간 단축 대상을 정할 필요도 있다.
해외현장에서는 현지국 및 제3국 인력과 함께 작업을 수행해야 하고, 국내 근로기준법 개정을 이유로 해외발주처와의 계약을 변경하기도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해외공사에 대해서는 폭넓은 예외가 인정돼야 한다.

- 주 52시간 근무제가 공사비 상승을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최근 우리 연구원에서는 37개 공사 현장의 원가계산서를 통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공사비 상승효과를 분석해봤다.
근로자의 기존 임금을 삭감하지 않고 주 52시간 근로제를 시행할 경우 직접노무비는 평균 8.9%, 간접노무비는 평균 12.3% 증가할 것으로 추정됐고 총공사비는 평균 4.3% 가량 상승할 전망이다.
하지만 경영상태가 열악한 건설업체들이 근로시간 단축에도 불구하고 근로자 임금을 계속 유지할 것 같지 않다. 일부 신규인력의 충원이 있더라도 기존 근로자의 임금은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삭감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기능인력보다는 상대적으로 관리직의 근로시간이 더 길다. 만약 기존 임금을 유지한 채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따른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한다면, 기능인력보다 관리직 임금이 더 늘어날 것이다.
현장관리자가 많은 대규모 사업장에 비해 중소규모 사업장의 경우는 현장관리자의 추가 고용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에 따라 중소건설업체의 인건비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기계화 시공물량이 많은 토목공사에 비해 인력투입이 많은 건축공사는 공사비 상승분이 더 클 수 있다.
대부분 EPC(Engineering-Procurement-Construction) 턴키방식으로 수행되는 해외플랜트 공사나 단기간에 돌관작업을 통해 준공해야 하는 반도체공장 등 첨단시설공사에도 엄격하게 주 52시간 근무제를 적용한다면 공사비는 더욱 크게 상승할 것이다.

- 공사비 상승에 대한 해법은?

7월 이후 발주되는 신규공사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적정 공기와 공사비 산정기준의 정비가 필요하다.
이미 계약이 체결돼 공사가 진행 중인 현장도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공공이건 민간이건 간에 기존 공사는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기존의 공공공사에 한해서라도 굳이 7월부터 적용하겠다면 국가계약법령에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항목을 명확하게 마련해 공사비 상승분을 보전해 줘야 한다. 국내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해외공사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 건설산업 ‘생산성’ 고민해야


- 최근 <4차 산업혁명, 건설산업의 새로운 미래>라는 책을 출간하셨다. 책을 쓰게 된 동기와 책의 내용에 대해 소개해달라.

2016년부터 4차 산업혁명은 단연코 화두였다.
4차 산업혁명과 건설산업에 관해 전문가들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기술된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쓰게 됐다.
한국 건설산업은 분업과 전문화라는 산업화 초창기의 낡은 패러다임에 갇혀 있어 생산성 혁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연결과 통합이라는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용해야만 생산성 혁명도 기대할 수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수용은 스마트 디지털 기술만 도입한다고 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법・제도와 문화를 포함한 총체적인 산업구조의 혁신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번에 출판한 <4차 산업혁명, 건설산업의 새로운 미래>는 4차 산업혁명의 실체를 규명하고 한발 앞선 글로벌 건설산업의 트렌드와 현황을 조명해 한국 건설산업의 나아갈 바를 제시하고자 한 전략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 건설산업에서의 4차 산업혁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건설산업에서도 스마트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이다.
노동인력의 투입을 줄이고, 건설프로세스와 상품을 혁신해 공사 기간을 단축하며, 공사비를 절감하고, 품질·성능·안전도를 제고함으로써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우리 정부나 건설업계도 어떻게 건설산업의 생산성 혁명을 달성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처럼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서는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특히 지금은 최저 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고용 확대를 위한 규제 강화, 적폐청산 내지 사회적 약자 보호를 명분으로 한 하도급 규제 강화 등이 이뤄지고 있다.

- 우리 건설산업의 4차 산업혁명 기술수준은 어떻다고 보는가?

4차 산업혁명 기술에 관한 한, 인공지능(AI) 기술과 활용 등을 비롯해 중국이 이미 우리보다 앞선 영역은 대단히 많다.
지금 따라잡지 않는다면, 앞으로 그 격차는 더 크게 벌어질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기술수준 자체보다 기술의 활용을 제약하고 있는 법·제도와 규제가 4차 산업혁명을 가로막고 있다.
‘연결과 통합’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데, 우리나라는 2차 산업혁명 다시 말해서 산업화 초창기의 ‘분업과 전문화’에 기반한 칸막이식 규제가 건설 관련 법·제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연결과 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의 활용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 국내 건설사의 대응방안은?

국내 건설사들도 건설사업의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서둘러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선진건설사 벤치마킹이 필요하고, 각사가 필요로 하는 디지털 기술의 선정 및 도입과 시범적용 사례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Digital Transformation을 위한 중장기적인 로드맵의 수립과 디지털 기술 및 인력교육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전략적 관점에서는, 전사적인 로드맵만 만들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디지털화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 점차 적용 영역을 확대해 가는 ‘점→선→면’ 전략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현장소장과 직원들을 상대로 디지털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 4차 산업혁명의 향후 진화방향과 건설 생태계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4차 산업혁명은 아직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초기 상황이다. 향후 20~30년 정도 지나면서 기술의 성숙도는 물론 법・제도나 사회구조 및 문화에도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수용되면 경제의 생산성도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건설 생태계도 스마트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파편화된 설계-시공-유지관리 기능들이 서로 연결되고 통합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비즈니스가 창출되고, 건설생산 및 관리방식의 혁신이 일어날 것이다.

- 한국건설신문이 창간 30돌을 맞았다. 조언 말씀 부탁드린다.

<한국건설신문>의 창간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대한민국 건설산업 발전을 선도하는 전문 언론’이라는 자부심으로 제작에 임해오신 임직원 여러분께도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한국건설신문>은 창간 이래 통찰력 넘치는 논평과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건설산업 각 분야의 이슈 발굴과 보도를 통해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대한민국 최고의 건설산업 전문지’로 평가받고 있다.
앞으로도 일자리창출과 국민복지 향상에 기여하는 건설산업의 중요한 역할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산업 전반의 현안 발굴과 대안을 마련하는 역할을 다해주시기를 바란다.
애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건설신문>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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