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도시와 건축에 대한 소고
<논단>도시와 건축에 대한 소고
  • 승인 2004.01.2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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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동 본부장(한국건설교통기술평가원)


도시와 건축의 관계와 역사적 고찰

하루의 일을 마치고 석양에 빛나는 고대 로마의 광장을 가로질러 쥬피터 신전의 계단을 오르는 시민은 행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것처럼, 도시는 사람에게 편안함과 행복감을 주도록 건설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도시를 건설하는 데에는 단지 기술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그 무엇보다도 예술성이 중시되어야 한다.

도시와 건축은 인간이 삶과 동시에 형성하여 온 집단적 작품이고 서로가 그 존재의 이유를 주고받는 필연의 관계를 통해 부분과 전체로 공존하는 것들이다.

또한 도시는 점진적으로 형성된 문화물이지만 늘 명확한 현실로 존재하고, 쇄신과 변화를 통해 성장하는 인공물이다. 그리고 도시를 형성하는 모든 건축작품 역시 다양한 역사적 현실들에 대한 연속된 해석의 결과물이며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일종의 역사물이다.

그러므로 도시에는 역사의 수많은 변화 속에서도 지속되어 온 집단의 정신이 다양한 건축들 속에 형성되어 있다.

집단의 문화를 그 시대에 적합한 형태로 표현해야할 과제를 위임받은 건축가는 그 역할을 정확히 인식하고 실행하여 더욱 완성된 형태의 문화를 그 주체인 집단에게 다시 되돌려 주어야 할 임무를 띠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서, 위대한 건축가인 익티누스와 조각가 페이디아스가 건설한 파르테논 신전은 전 세계 어느 곳에도, 어느 시대에도 이와 견줄만한 건축물이 존재한 적은 없다.

그것은 지극히 고결한 사고에 자극을 받은 한 인간이 그 사고를 빛과 그림자의 조형물로 결정화함으로써 역사적 창조물을 탄생시킨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기념물은 예술의 열정이 만들어 낸 그 어떤 작품보다도 더한 기쁨과 감탄을 오늘날까지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 건축의 부정적인 자화상을 씻어내자

건축가 이동언씨는 그의 저서 ‘삶의 건축과 패러다임 건축'에서 우리 건축의 현주소를 직시하고 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의 삶을 담는 것이 건축의 가장 본질적인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일제 이후 건축공학이라는 이름으로 예술적 감수성이 배제된 채 건축작업이 공학적인 기술문제에만 매달려온 결과, 우리의 도시가 오늘과 같이 무미건조하게 되기에 이르렀다고 지적한다.

바람직한 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복잡다단한 우리의 삶을 직관적으로 가슴으로 체험하여 이를 건축적 아이디어로 전환시켜야 하며, 그렇지 않고 머리만으로 건물이 구축된다면 그것은 공학적 구조물에 불과하다고 그는 말한다.

앞으로는 삶의 복합성을 만질 수 있는 건축적 사유가 선행되지 않은 채 공학적·경험적 논리만으로 고정된 건축은 점점 그 설자리가 없어지는 시대가 다가올 것이며, 국제적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건축설계분야에서는 삶의 해석을 수반하는 인문학과 예술적 사유가 함께하지 않고는 경쟁을 위한 출발선에도 설 수 없게 되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우리는 왜 우리가 속해있고 살고 있는 도시와 주변의 건물을 보면서 선뜻 그것들에서 어떤 살아있는 감흥을 받지 못할까? 이는 건물들이 진부한 일상성에 의존하는 논리나 정서를 전달하는 수단에 그치고 그 이상의 것들, 즉 진부한 일상성을 타파하고 창조성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라는 존재의 새로운 모습들을 일깨워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건축설계를 주어진 상황의 문제를 해결하는 조건반사적이고 기계적인 도구로 이용되는 현실, 즉 대지분석, 기능분석, 동선분석 등의 분석작업과 이에 따른 배치계획, 평면계획, 입면계획 등의 기계적인 프로세스를 거쳐 보기 좋게 다듬어 내는 통상적인 해결방식이 과연 진정한 건축행위라고 할 수 있는가? 컨베어벨트에서 조립생산되는 기계제품처럼 건축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건축이 정체되어 있는 여러 가지 이유 중의 하나가 설계에 대한 고정관념이라고 보여 진다. 건축에서 정면성이나 축선 등이 절대적으로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든지, 어느 특정한 건축의 형태, 재료, 색깔 등이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며, 건축의 기능이 모든 것을 우선한다고 믿는 등이 그것이다.

이제 건축이 예술성을 회복하고 그 역할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부정적인 자화상의 모습을 씻어 내고, 창조적인 사고방식으로 혁신해야 한다. 알맹이 없이 껍데기만 현란하게 포장하여 도시의 부조화를 조장하거나, 비슷비슷한 생명력 없는 건물들이 온 국토를 점령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건축도 시민들의 삶의 요구들을 직접적으로 만족시켜주고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예술이 되도록 변화하고 혁신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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