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건설정책, 실패사례 연구에도 눈을 돌려야
<논단>...건설정책, 실패사례 연구에도 눈을 돌려야
  • 승인 2001.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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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설산업연구원 이상호 연구위원

최근 일본 기업에서는 성공사례가 아니라 실패사례 연구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한다. 실패사례가 일종의 반면교사(反面敎師)로서,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뜻 수긍할 것이다. 그동안 걸핏하면 무슨 무슨 활성화 대책이니 개선대책이니 하면서 수많은 정책을 양산해 온 정부, 기업경쟁력 강화를 외치면서 이런 저런 경영이론과 기법을 실험해 왔던 기업, 선진외국의 성공적인 정책사례나 일류기업의 성공담을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이 채집해서 유포해왔던 전문가집단도 이제는 자성(自省)하는 차원에서 실패사례 연구에 눈을 돌리면 어떨까.
건설정책의 경우를 한번 보자. 실패사례를 연구한다고 할 때의 ‘실패’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정책의 목적이나 도입취지를 달성하지 못했을 경우, 혹은 정책수립 및 추진시에 공언했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경우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최근 몇 년간 내걸었던 건설정책은 대부분 실패한 것 같다.
건설업계에 많은 혼란을 초래하였던 ‘턴키 활성화 대책’과 국정과제의 하나였던 건설사업관리(CM) 활성화 정책만 하더라도 그렇다. 지난 98년에는 100억원 이상 대형공사 발주건수의 40%, 2002년에는 50%수준으로까지 턴키공사를 발주하겠다던 계획과는 정반대로 98년부터 작년까지 당초 목표의 절반도 안되는 18%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나마 금년과 내년에는 ‘대형공사 입찰방법 심의기준’의 변경으로 그 비중이 더 줄어 들 것 같다. 건설사업관리(CM)도 개념에 대한 이해부터 제각각 달랐고, 활성화는 커녕 발주에 필요한 입찰제도조차 지금까지 오리무중이다.
건설공사 입·낙찰제도는 1년에도 몇번씩, 몇 년간에 걸쳐 바꿔왔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본다면 무엇이 바뀌었는지를 모르겠다. 지엽말단적인 것을 제외한다면, 98년 8월까지는 자율조정이, 그 이후로는 1천365개나 되는 복수예정가격의 추첨 운(運)에 따라 낙찰자가 선정되는 ‘운찰제(運札制)’가 입·낙찰의 근간이 아닌가 싶다. 금년에 새로 도입한 최저가 낙찰제 또한 한때는 획일적인 보증거부 낙찰률의 설정으로 인하여 ‘저가(低價)운찰제’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았다. 70%미만 낙찰시 가해지는 각종 불이익 때문에 수식어는 한가지 더 첨가되어 ‘공포의 저가운찰제’로 불리기도 하였다. 입·낙찰제도의 국제표준(Global Standard)화와 선진화를 외치면서 출발한 최저가 낙찰제였건만, 그와 같은 도입취지를 구현하고 있다는 평가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건설업역구조나 생산체계도 제도에서 규정하고 있는 설계·감리·시공업체간, 대·중소건설업체, 일반·전문업체간 바람직한 역할분담이 이루어지기 보다는 비효율성을 초래하고 있다.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이와 관련된 규제의 대부분을 폐지하기로 의결하였으나, 계속 폐지시한이 연장되어 왔고, 앞으로도 과연 폐지될 것인지 그 전망부터가 불투명하다.
제도도입의 취지와 현실의 괴리를 가장 크게 보여주는 것으로는 공동도급제도를 손꼽을 수 있다. 특히 공동도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동이행방식의 공동도급은 그 필요성과 장점을 제 아무리 미사여구로 치장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도급은 사실상 공공공사 입찰시 의무화되어 있다.
표준품셈에 근거한 예정가격 산정방식을 실적공사비 적산방식으로 전환하자는 정부방침도 10여년간에 걸쳐 연구용역과 몇 개의 시범사업만 실시했지, 아직도 이렇다 할 시행계획이나 방안조차 나오지 않았다.
어디 이 뿐이겠는가? 건설정책의 실패사례는 전수조사(全數調査)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정책실패의 원인을 정부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아마도 건설업체나 전문가집단 또한 실패의 원인을 제공하는데 대단한 기여를 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건설정책의 실패원인에 대한 철저한 분석은 우리나라 건설산업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병폐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정부·기업·전문가집단을 막론하고, 과거의 실패사례를 철저하게 연구하고 반성하는 작업이야말로 앞으로 보다 나은 ‘활성화 대책’과 ‘경쟁력 강화 대책’을 만들 수 있는 ‘실질적인 개선대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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