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아파트 풍경 유감 : 더불어 사는 삶터의 진정한 회복을 위해
우리시대 아파트 풍경 유감 : 더불어 사는 삶터의 진정한 회복을 위해
  • 성종상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 승인 2016.04.27 1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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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종상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ㆍ(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운영위원

돌이켜 보자면 우리는 참으로 숨 가쁘게 달려왔다. 통상 반만 년이라고 하는 우리나라 역사는 물론 세계 어느 나라 역사로 봐도 우리 근현대사처럼 급박한 변화를 거친 경우를 달리 찾아보기가 어렵다.
경제적으로는 이미 세계 10위권에 진입했고 문화적으로도 영화, 음악, 한식 등의 한류가 지구촌 곳곳에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외견상으로는 분명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선 셈이다. 하지만 조금만 차분히 우리 삶을 들여다보노라면 선진국이네하고 마냥 자랑만 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중에서도 필자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우리네 삶의 풍경, 특히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다.
우리는 흔히 주위 사람과, 그리고 자연과 조화롭게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고,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과 자연이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우리 시대의 삶에서는 그다지 쉽게 볼 수 없다. 대도시 내 첨단 기법과 소재로 만든 고급 아파트단지일수록 이런 현상이 더욱 분명해진다는 점에서 동시대 우리 주거문화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다’라는 말에는 인간에게 있어서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가가 단적으로 잘 드러나 있다. 이와 관련해 물적 환경을 다루는 조경가로서 이 기회에 함께 생각해 보고 싶은 점이 있다. 삶의 환경을 다루는 전문가로서 우리는 더불어 사는 삶터로서 환경을 만드는 데에 과연 얼마나 기여했던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필자의 기억에 남아 있는 좀 오랜 전에 겪은 경험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독일의 북부 슐레스비히 홀스타인주의 주도 킬Kiel 시에 있는 킬 하세Kiel Hassee라는 주거단지는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생태마을이다. 지금부터 30년 전에 건설됐으니, 독일에서도 초창기에 해당되는 그곳은 불과 20여 가구 남짓한 작은 단지이다.
한데 2003년 여름 방문했을 때 필자는 좀 특별한 정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 단지 중앙에는 비포장의 원형 광장이 있는데 그곳에 여러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대체로 자전거를 타고 있는 가운데 자동차도 두어 대 서 있는데 가까이 가보니 차 트렁크에 피자와 빵 같은 것이 실려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니 옆에 있는 작은 여자 아이를 가리키면서 오늘이 그 아이 생일이라서 모인 거라 했다.
인구 25만인 도시 내 주거단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웃집 아이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음식을 마련해서 하루 종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현장을 목격하고서 필자는 참 많이 부러웠다. 바로 앞집에 누가 사는 지조차 알지 못하고 층간 소음 등으로 인해 심각한 갈등 관계로 치달리는 것이 우리들 아파트 단지의 현실인데….
그곳에서 목격한 모습이 예전의 우리 삶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에서 필자의 마음은 더욱 무거웠다. 어릴 적에 필자가 살았던 동네에서 유독 중시됐던 것은 관계였다. 사람들간의 관계는 물론 주위 자연과의 관계를 좋게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한 동네에서 살아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각 개인의 정체성은 가족 안에서는 물론 이웃 사이에서의 관계에 의해 형성됐다. 그러니 앞뒷집 아이의 생일 챙기기도 자연스러운 일상 수준의 일이지 않았던가?
개발과 건설의 급물결로부터 어느덧 벗어난 현 시점에서 우리는 이제라도 우리네 삶의 모습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 도시의 가장 대표적 유형인 아파트는 단연 성찰의 첫 번째 대상이 될 만하다. 아파트라는 주거 유형의 특징이자 장점으로서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 가치 구현이라는 점을 재인식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단순히 집을 수직으로 쌓아놓은 데서 오는 토지이용상의 효율 혹은 부동산적 차원을 넘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적 장으로서의 의미와 효용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입주민들이 함께 만나고 사용하는 외부환경에서 그러한 공동체적 효용은 각별히 중요하다. 실제로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만나 소통하고 삶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과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주민들의 일상 삶을 함께 나누고 서로간의 관계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데에 유효적절한 물적 환경이 되도록 기획하고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갖 보기 좋고 화려한 프로그램을 집어 넣으려하는 대신에 그 장소와 그 속에서 살 사람을 먼저 생각하되, 보다 창의적이고 유연한 사고와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경제성에 주도되고 폐쇄성과 익명성이 오히려 장점으로 과도하게 포장되는 우리 아파트를 보다 더불어 살만한 삶터로 만드는 일에 조경가들의 진지한 성찰과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네 공동주택단지에서의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와 관계가 더 무너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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