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분양가 규제 신중해야
<논단>분양가 규제 신중해야
  • 승인 2003.09.29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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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철 원장(주택산업연구원)


지난 몇 달간 정부는 주택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여러가지 대책을 발표하였다. 투기지역지정, 양도소득세 실거래가 과세, 1가구 1주택 요건 강화, 보유과세 강화 및 재건축 평형 배분 규제 등의 투기억제 대책이다.

최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주택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분양가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70년 중반 분양가를 규제하기 시작한 이후 우여곡절을 거쳐 98년 자율화된 분양가격을 다시 규제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재건축 아파트의 평당 가격이 3천만원을 넘어서면서 가격이 과다하게 높게 책정되었다는 비난의 여론이 있다. 또한 서울지역 동시 분양아파트의 평당 평균 분양가도 98년 521만원에서 2000년 670만원, 2002년에는 840만원으로 급등하고 있는 추세이다.

한 소비자 단체가 서울에서 분양된 아파트의 분양가격을 분석했더니 주택건설업체가 가격을 부풀려 폭리를 취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신규 아파트 분양가 상승은 기존 아파트가격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이는 또다시 신규 아파트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정부는 분양가격을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주택건설업체는 땅값, 자재 및 인건비 상승과 마감재 고급화 등 원가상승 요인 때문에 분양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분양가 규제는 일견 타당성이 있어 보이나 득보다는 실이 많은 정책이다. 소비자를 보호하는 시민단체나 소비자의 입장에는 바람직한 정책으로 보이나 주택의 공급을 감소하여 오히려 중·장기적으로 주택가격을 상승시키고 주택산업의 발전을 저해한다. 우리는 과거 분양가격의 규제로 획일적이며 양질을 주택을 공급받지 못하였음을 기억하고 있다.

분양가 규제는 현재 건설업체가 차지하는 이윤을 최초 분양자에 안겨줄 뿐이며 대부분의 소비자는 현행과 같은 가격을 부담하게 된다. 게다가 기존주택보다 싼 가격으로 주택을 분양하면 과거와 같이 신규주택에 수요가 몰려 필연적으로 주택투기를 유발한다.

아파트 분양가는 공산품처럼 건설원가에 근거하여 책정하는 것은 아닌듯하다. 시행사 또는 주택건설업체는 주변의 시세와 분양율을 고려하여 분양가를 결정한다. 따라서 신규주택의 분양가격이 기존주택가격을 올리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기존주택가격이 상승하여 분양가격이 오르는 것이다.

건설업체가 과도한 이윤을 내고 있으니 원가를 공개하여야 한다는 논리도 근거가 약하다.

우리는 벤처기업이라하여 성공하면 떼돈을 버는 기업이 있다는 사실을 자주 접한다. 벤처기업은 투자에 대한 위험이 크기 때문에 성공하면 일확천금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벤처기업의 원가를 공개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벤처기업과 주택건설업을 직접 비교할 수는 없으나 주택건설업은 주택경기 등에 영향을 많이 받는 위험이 큰 사업이다. 1년에도 수백개의 업체가 도산하고 또한 수백개의 업체가 새로 생기는 부침이 심한 업종이라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일반 제조업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이윤이 보장되어야 기업활동을 할 수 있는 주택건설업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원가공개는 무리한 요구이다.

분양가가 높아진 또 하나의 원인으로는 서울 등 대도시의 택지 고갈이다. 서울의 경우 개발택지의 부족으로 나대지 가격은 큰 폭으로 상승하였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대부분의 주택건설업체가 독자적으로 택지를 매입하고 아파트를 건설한 뒤 분양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토지소유자와 시행사가 주택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택지를 확보한 시행사, 주택을 건설하는 시공사, 그리고 분양을 담당하는 분양대행사가 따로 따로 존재한다. 이들은 각각 이윤을 추구하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토지소유자와 시행사는 주택사업을 지속적으로 하기보다는 확보된 토지로 일회성 사업을 하기 때문에 분양가격을 최대한 높혀 이윤을 극대화한다. 분양을 대행하는 분양대행사도 제한된 기간에 분양율을 높이기 위해 모델하우스를 호화롭게 장식하여 원가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편 대부분의 주택건설업체는 단순히 주택을 시공하는 건설업체에 불과한 실정이다.

규제는 또 다른 규제를 낳는 악순환을 만들며 시장을 왜곡한다. 주택가격 상승의 고리를 분양가 규제라는 정부의 개입을 통해 차단한다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은 정책이다.
정부는 택지공급확대, 민간택지개발 활성화 등 주택공급 확대를 위한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해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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