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제라 불리는 자하 하디드가 방문했다. 그녀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매체마다 대서특필됐다.
그러나 기자 주변 사람들은(건축인이든 비건축인이든)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보고 호감어려 하는 이가 거의 없다. ‘제대로 지을 수 있을까’ 싶던 불신을 반전시킨 시공기술 덕분에 비호감을 조금 만회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정작 자하 하디드(이하 자하) 본인은 몹시 흡족한 모양이다.
DDP 개관을 앞두고 여제가 토크쇼 하던 날 누군가 물었다지, “DDP가 동대문 주변 지역에 비해 스케일이 너무 과도한 것 같지 않느냐”고. 그러자 자하는 “스케일은 건축가의 특권”이라고 답했다지. ‘어떻게 하면 좋은 건축물을 지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수많은 건축가들에게는 ‘울리는 징’ 소리 같은 망언이지 않았을까 싶다.
도시의 건축은 ‘주변’으로 인해 정체성이 규정된다. 독불장군을 표방하는 건물을 보고 대개 ‘흉물’이라고 부른다. 주변의 풍경과 조직, 그 안의 삶을 읽고 그것에 어울리기 위해 많은 건축가들이 밤을 지새우며 스케치를 한다. 이러한 고민이 도면으로 이어진다.
DDP, 세계 최대의 비정형 건축물이라 떠들썩하지만 언젠가 더 큰 것이 나타나면 그 명성은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된다.
이것이 ‘최大, 최高’의 허상이다. “사람들이 사랑하고 즐겨 찾는 장소가 될 때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건축의 가치가 만들어진다” 이것이 건축가들의 상식이다.
그런데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의 생각은 그 상식을 무색하게 했다. 하지만 자하의 건축철학을 비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동대문운동장 터에 ‘그러한 자’의 건물을 앉혀 놓겠다고 선택한 것은 어쨌든 ‘우리’가 된 셈이니까.
국제설계경기가 있었던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당시 잘 나가는 해외건축가 4명, 우리 국가대표 4명이 지명됐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럼 그들의 안은 정답인가?’ 단언할 수 없지만 적어도 지역성과 역사성을 고민한 안들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자하를 뽑았고 이 결과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아무도 책임질 사람이 없다면?
지금 건축계는 ‘가격입찰’은 불량식품처럼 여기고 ‘설계공모’는 정품 취급한다. 그러나 이런 결과를 낳는다면 ‘공모’, 과연 믿어도 좋은 것인가.
6월부터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이 시행되면 ‘설계공모 의무화’가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그렇지만 설계공모의 폐단을 우려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그들의 의견을 다시 들어보아야 한다. ‘설계공모’는 ‘마스터 키’가 아니다.
한국건설신문 취재부 차장 = 이오주은 수석기자 yoje@conslov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