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M-6] 1960년 이후 NATM 공법·대형굴착장비 TBM 개발
[TBM-6] 1960년 이후 NATM 공법·대형굴착장비 TBM 개발
  • 오원섭 사장
  • 승인 2013.12.27 13:5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굴착장비뿐만 아니라 지반 탐사·구조해석 통해 정밀한 설계 가능
 

6. 지하공간 활용사례

지하공간의 이용은 원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자연동굴 형태가 지하공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지하공간이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영국,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지하터널과 지하 하수처리시설 등을 건설하면서부터이다.
우리나라는 1974년 지하철 1호선 개통을 시작으로 대도시를 중심으로 지하상가 등의 지하공간 개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같은 개발은 소규모이고 단편적인 개발로 본격적인 지하개발이라고는 볼 수 없다. 현재 대도시 중심부의 도시기능이 포화상태이고, 한정된 개발가능 토지를 유효하게 이용하기 위해 지하공간의 효율적 이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현재 서울, 부신, 대구, 인천 등과 같은 대도시의 지하철과 같은 교통시설은 도시기능에서 필수 불가결한 시설로 점차 다른 도시에서도 이런 시설의 건설이 대두되고 있다. 교통시설로서의 지하철, 지하철역사, 터널, 지하교차로, 지하보도 등과 같은 지하공간 개발이 확대되고 있다.
현재 지하공간의 주택 스포츠시설 교회 등의 생활관련시설, 사무소, 지하상가, 지하주차장, 창고 등의 도시시설, 에너지공급과 사하수도 폐기물 운반처리, 공동구와 같은 공급처리시설, 정보통신시설, 지하공장 등의 생산시설, 도로와 철도등의 교통시설, 지하하천, 지하유수지 등 다양한 분야에 이용되고 있다.
스웨덴 노르웨이 등의 북유럽국가는 세계대적을 경험하면서 방어시설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지하공간의 개발이 본격화 되었고 미국의 캔사스시는 자연 환경적 특성으로 지하의 광물자원을 채취한 후 동굴을 저장시설로 이용하므로써 시작, 지금은 대규모 아파트시설로까지 건설되었다.
일본은 북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지상공간의 포화로 인한 새로운 도시 공간의 공급을 주목적으로 지하 공간을 개발하였다. 최근에는 이와 같은 지하공간 개발 동기 보다는 도시 혐오시설에 대한 지하화, 도시 교통시설의 지하 설치 등 도시고간 수요의 새로운 공급수단으로 지하공간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2차 대전 이후부터 적극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지하공간은 현재 미국, 캐나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스위스, 프랑스 그리고 일본 등에 지하공간을 잘 활용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지하공간 활용에 있어 채광, 채석을 하고 남은 지하공간을 종합계획에 따라 타 목적으로 전용한 대표적인 예는 미국 미주리주 캔사스시로서 캔사스시는 미국 중앙부에 입지한 교통의 요충지로서 대도시권 전역에 걸쳐 사방 50마일에 이르는 양질의 석회암층으로 형성되어있어 1940년대부터 건설석재용도의 석탄암을 채석한 이래 오늘날에는 전체 규모 500만평중 60만평을 저장창고, 제조공장, 오피스 등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매년 15~20만평이 타 목적으로의 전용을 위해 개발되고 있다.
특정 목적을 위해 지하공간을 개발 활용한 대표적인 예로는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지하시설을 들 수 있다.
노르웨이는 세계 2차 대전 중 독일군에 의해 점령당한 쓰라린 역사를 가지고 있어 일찍부터 군사시설 및 민방위시설을 주축으로 지하시설이 잘 발달해 있으며, 스웨덴, 핀란드는 발전소를 비롯하여 각종 저장 공급처리시설 등의 산업시설 등의 산업시설이 지하에 설치되어있다. 북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는 세계적인 사회 복지국가로서 평시에는 지역 단위의 문화, 체육시설로 사용하고 비상시에는 민방위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주요시설 별 지하공간 사례는 다음 표와 같다.
1. 세계 터널의 역사
인류가 지구에 태어나서 어떻게 자연 환경에 적응해 왔을까? 많은 답이 있겠지만 수렵생활 기에 인간의 생존 조건중의 하나로 동굴을 이용 했을 것이다. 동굴은 안전을 지켜주고 기후와 계절의 변화, 홍수와 재해 등 수시로 바뀌는 환경에서도 동굴은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인간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장소였을 것이다. 위협이 가득한 환경 속에서 동굴은 아늑하고 소중한 공간이었다. 어느 정도 경계를 풀 수 있고 적을 방어하기에도 좋고 적당히 따뜻하고 적당히 서늘하기도 하여 생활하기에 적당했다. 또 먹을 것 이나 도구 등을 저장해 놓을 수 있는 동굴에서 인간은 문명으로의 진화를 시작했을 것이다. 현재우리가 활용하는 지하공간이나 터널의 원조가 동굴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러면 시대별 터널의 역사를 살펴보고 아래와 같이 정리 할 수 있을 것이다.

 

Ⅵ지하공간 개발과 터널의 역사

1. 선사시대
자연동굴을 이용하던 인간이 처음으로 굴을 뚫기 시작한 것은 부족한 주거공간을 확장하거나 광물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동굴 중 인간이 판 흔적이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동굴은 아프리카 스와질란드에 있는 라이언 케이브(lion cave)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고고학적 탐사결과 최소 4만3천년 전부터 굴을 파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슷한 시기에 네안델탈인의 흔적으로 보이는 헝가리의 산악동굴에서는 그 당시 무기와 도구 등의 생산에 필요한 재료인 부싯돌을 채굴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흔적은 인간이 새롭게 뚫은 터널은 아니고 동굴을 좀 넓힌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 인구가 늘어나고 부족간의 전쟁과 정복으로 더 안전한 피난처가 요구되면서 새로운 동굴을 뚫기 시작했다.

2. 고대시대 터널
고대시대에는 손 연장으로 터널을 뚫었을 것이다. 고대의 동굴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터키 아나톨리아고원에 흩어져있는 지하도시 유적이다. 원시적인 도구밖에 없었던 석기시대인들이 동굴을 팔 수 있었던 데는 이 지역의 지반인 응회암의 특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응회암은 땅속에 묻혀 있을 때 는 손 연장으로 쉽게 파낼 수 있으나 일단 공기와 접촉할수록 단단하게 굳어져가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로마인들은 종교탄압을 피하기 위해 기독교인들이 숨어 살았다는 데린쿠유(Derinkuyu)와 카이마클리(Kaymakli)지하도시는 기독교인들이 정교하게 다듬고 확장했지만 처음 만들어진 것은 신석기시대부터이다.

3. 철기문명시대
철기문명 이후부터는 주거 목적 이외에 다양한 광물과 보석등 광물을 파내는 과정에서 많은 동굴들이 생겨났다. 이집트의 와디 메카르(wady maghareh) 이래에는 고대 이집트시대부터 터키석을 채굴한 흔적이 보이는 동굴이 여러 곳이 있다.
당시 중요한 보석이었던 터기석은 시기적인 차이는 있으나 북미대륙의 세릴로스 광산 지역(Cerillos Mininp Distict 미국 뉴멕시코)에서도 채굴한 흔적이 있다. 주거나 자원 채취가 아니라 지하통로나 수로 등 생활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터널을 축소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5천년 고대도시가 성립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이때는 신전이나 피라미드 등 석물을 이용한 대규모 시설이 수축되었는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유적을 보면 당시의 지하공간 축조기술이 얼마나 발전되어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신전이나 피라미드 외에 현재기록으로 전하는 가장 오래된 터널은 기원전 2160년경에 축조된 고 바빌로니아의 하저 터널이다. 적의 침입시 신속하게 강건너 요새로 대피하기 위해 건설된 이 터널의 기록을 살펴보면 건설기술면이나 규모면 에서나 근대의 터널축조기술에 버금가는데 놀라울 뿐이다.
현존하는 터널 중 암반을 파내어 만든 것은 기원전687년경 그리이스 사모스섬에 만든 연장 1천600m의 터널이다. 이 터널은 섬 반대편의 샘물을 성곽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뚫었는데 정교한 측량과 공사내용이 헤르도토스의 역사3권에 기록되어있다. 로마시대에는 도로나 수로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되어 한층 정교해 졌으며 건축물의 지하공간을 축조하거나 터널을 뚫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나 이런 기술 발전과는 대조적으로 터널에서 바위를 깨내는 작업자체는 원시적인 방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거대신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돌을 다듬는 기술은 발전 되어 있었으나 좁은 갱내에서 바위를 뚫는 것은 어려움이 많았다.
대규모 인력을 투입하거나 구간을 나누어 일하기도 어려워 고작해야 소수인원을 투입하여 망치와 정으로 일일이 쪼아나가는 정도였다. 이시대 터널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이스라엘 기혼샘터널(Gihon silo a, 500m, bc687년경) 로마플라미니우스가도 (Via Flaminius)의 플루로 터널 (Furlo, 38m bc220년)이 남아있다.
물사정이 좋지 않았던 로마는 많은 수로를 건설하였는데 일정한 깊이로 도랑을 판 다음 석재로 바닥과 측벽 덮개를 설치하고 흙을 매워 물길을 만드는 개착식 터널 공법을 사용했다. 이외에도 베르지네 수로 (BC19년) 나 알시에티나수로(BC2년)등에도 많은 터널이 포함되어있다,

4. 중세시대 터널
서로마에 이어 신성 로마제국까지 몰락하면서 유럽과 지중해연안지역은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런 상태가 지속되니 국가의 모든 재정은 군사력에 집중되어 대규모 공공사업을 벌일 여력이 없었고 소규모의 터널이나 지하공간 축조도 거의 군사적 목적으로 축조되었다.
14세기경 흑색화약의 정밀한 제조기법이 알려져 있었으나 소총이나 대포 등 군사용 목적으로 활용되었고 암반 굴착에는 사용된 사례를 찾을 수 없다.
1556년 독일의 Georgius Agricola가 쓴 공학기술서인 모탈리카 (De Re Motallica)는 당시 토목 공학을 비롯하여 금속 지질 측량기술 등을 자세히 기술했다. 이 책에는 암반을 굴착하는 기술 외에는 갱내에서 캐낸 광석을 운반하거나 붕락을 방지하기 위해 지지하는 다양한 기술을 소개했다.
터널 내 에서 정밀한 측량을 위한 기구나 지하수를 배출하기 위해 사용된 톱니 바퀴와 체인 회전 축이 조합된 펌프는 지금 사용해도 가능할 정도로 정밀하다.
1370년경 프랑스 파리에서 하수배출을 위해 만든 직경2~2m의 원형터널은 해수면2,882m고지에 설치한 보트터널로 높이는 2m 폭은 2~5m이며 연장은 75m이다. 이 두 터널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터널이다.

5. 17~18세기 터널 축조기술
터널축조기술이 한 단계 진전을 이룬 것은 운하개발 붐이 일기 시작한 17세기부터 이다. 르네상스는 인문학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눈부신 발전이 이루어졌다. 기계, 토목, 화학 등 각 분야의 발달된 기술은 서로 연계되고 복합되면서 터널축조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흑색화약은 1679년 프랑스 랑그도크운하(Languedoc Canal)를 건설하면서 처음 사용되었는데 바위를 손으로 깨던 시대인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처음에는 바위틈에 화약을 넣는 원시적인 방법을 사용했으나 점차 수동식천공기로 구멍을 뚫고 발파하는 수준으로 발전되었다. 취급이 어려운 화약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하여 도화선을 이용하여 멀리서 발파를 하는 기술도 발전하여 시간이 갈수록 안전하고 정교한 발파가 가능하게 되었다.
영국에서는 1761년 그랜드 트렁크 운한(Grand Trunk Canal)에서 처음 화약을 사용하였다. 이 운하에서 가장 어려운 공사 구간이었던 헤어 캐슬 터널(Harecastle tunnel)은 1766년 완공되었는데 2천620m 전구간을 발파로 굴착하였다,
당시 흑색 화약은 연소가스가 많아 가스배출장치를 설치하여 문제를 해결해고 터널에서 발생하는 물이나 암버럭을 반출하는 작업도 효율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터널에 적용한 말발굽형 터널은 현재까지 산악터널의 기본형식으로 이용되고 있다.
헤어캐슬터널의 성공에 이어 영국은 이후 살타스포드터널, 밴톤터널 아미티지터널, 브래스톤터널을 건설하면서 철도터널의 선두주자를 지키게 되고 이런 시설이 산업혁명의 밑거름이 되었다.
운하터널은 유럽뿐만 아니라 북미와 일본에서도 많이 건설되었다. 미국은 1821년 펜실베니아 슈일킬운하(Schuylkill Conal)에 어번터널(auburn Tunnel)을 뚫었는데 비록137m의 소규모였지만 이를 계기로 1828년 레바논(Lebanon)터널을 만들었다. 1660년대에 만들어진 이터널은 1천780M전구간을 곡괭이나 정, 망치 등 원시적인 도구만을 이용하여 뚫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군사적 목적으로 흑색화약을 사용했으나 암반을 굴착 하는데는 사용되지 않았다.

6. 19~20세기초 산업혁명 시대 터널
산업생산이 광산이나 소규모 가내공업에 의존하던 시대에는 운하만으로도 물류수송에 어려움이 없었지만 1760년대부터 시작된 산업혁명은 새로운 운송수송 즉 철도의 가설을 부추겼다. 이로 인해 터널도 운하터널 보다는 철도터널이 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터널도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산업혁명을 통해 증기기관, 철강산업 측량장비 등 기계기구의 발달이 뒷받침되어 가능했다. 1841년 리버플 맨체스터 철도에 만들어진 2천880m의 복스터널(Box Tunnel)을 계기로 철도는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각광받으며 프랑스와 독일등 유럽 각국으로 번져나갔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함께 알프스를 관통하는 철도노선을 1782년에 시작되어 약 2천500m를 굴착하다 중단되었지만 이후 1857년 몽세니(Mont Cenis)봉 하부로 계획을 변경하여 1만2천847m의 터널을 완공시켰는데 여기에는 보다 정밀해진 화약과 고성능 착암기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런 발전에도 불구하고 터널이 점차 대형화 되면서 작업환경은 더욱 열악해져 많은 사고와 함께 희생자가 발생했다. 한 예로 생고타르 터널에서는 지하수 용출과 막장 붕괴, 발파 사고로 인해 사망자가 310명이며 중상자도 877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이런 악조건 에도 불구하고 생고타르 터널 이후 알프스에는 아를베르크 터널(Arlberg,10,200m, 1883년) 심플론터널(Simplon, 19,700m, 1911년) 몽블랑 터널 (Mt, Blanc, 1,500, 1964년)이 계속 건설되어 유럽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연결할 수 있게 되었다,

7. 현대, 새로운 공간시대
지하공간 역사에서 현대는 대체로 NATM공법(New Austria Tunnel Method)과 대형굴착장비인 TBM(Tunnel Boring Machine)이 개발된 1960년대 이후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굴착장비뿐만 아니라 지반 탐사 및 구조해석을 통해 정밀한 설계가 가능해 지면서 공간의 규모나 터널길이에 제한을 받지 않게 되었다. 현대의 대표적인 터널은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해협을 통과하는 유로(Euro)터널이다. 오랫동안 중단 되었던 이 터널은 1987년 다시 공사에 착수하여 1993년에 완공되었다. 터널연장은 총 50.45km(해저37.9Km)로 초장대 터널이다. 유로터널에 버금가는 일본의 세이칸 터널은 1988년 완성되었고 연장은 53.85Km(해저23.3Km) 이다.
그러나 현재 세계에서 가장 긴 터널은 2010년 관통된 스위스의 고타르베이스(Gotthard Base)터널로 연장이 57.07Km에 이른다. 현대터널의 근본적인 특징은 지하공간에 대한 패러다임이 변하여 종전의 교통이나 수로 건설 등을 위한 터널건설이 대부분이었지만 앞으로는 도시의 인구집중에 따른 지상의 가용토지의 부족과 대기오염, 자외선, 방사능, 지구온난화와 같은 환경문제로 지상과 지하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보고 개발하는 도시 계획의 경향을 볼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재성 2015-06-09 08:36:24
http://cafe.naver.com/hbcivil/book2218487/111
위 글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김재성 2015-06-08 15:23:45
이 글의 지하공간 개발과 터널의 역사는
2012년 3월 '서울특별시 기술회보'지에 발표한 김재성,본인의 글이고
제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는 글입니다. 또한 본인의 저서 '문명과 지하공간'에
삽입되어있는 글이기도 합니다. 타인의 글을 임의로 복사하여
신문사에 개제까지 하였다니 명백한 저작권 침해에 해당합니다
김재성 : 010-5027-8071. kim590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