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미덕과 악덕 - 2013년 건축계를 정리하며
건축의 미덕과 악덕 - 2013년 건축계를 정리하며
  • 전진삼 건축비평가
  • 승인 2013.12.18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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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1〉 공간사옥이 매각됐다. 미술계의 큰손 아라리오그룹 김창일 회장이 매입하기로 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공공의 개입을 주선하던 차에 속성이 의심되는 민간 자본이 침투한 격이라며 공매 저지에 불붙였던 일군의 건축가가 거세게 반발했다. 일단 공간그룹의 회생 프로세스에 가속이 붙을 전망이다.
공간사옥을 둘러싼 이해 당사자 간 내분으로 심화되는 양상은 곧장 중심을 잃은 건축계의 파열음으로 전파됐다. 남의 집 불구경하듯 손 놓고 있던 건축계는 망신살이 뻗혔다. 제 잇속만 차리면 그만인 부끄러운 자화상을 세상에 들킨 꼴이다.

악덕2〉 건축사의 권익을 앞세운 설계ㆍ감리 분리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찬성 95%, 반대 5%의 일방적 게임 분위기로 국회의원 발의에 힘이 얹어지고 있다. 이를 두고 생계형 건축설계업 종사자의 보호차원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동시에 사회 리더로서의 위상을 스스로 포기한 심각한 사태로 인식하는 입장이 앞선다.
설계ㆍ감리 분리를 주장하는 이들의 허점은 건축전문가 사회의 상호 불신을 대내외에 공표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원설계자가 최종 품질을 보증할 수 없는 기형적 구조를 용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악덕3〉 3〜40대 신진 건축가 등용문으로 자리 잡은 ‘젊은 건축가상’이 6년을 맞았다.
성과라면 새로운 세대의 탄생이 이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 하에 새건축사협의회(이하 새건협)와 한국건축가연합이 주관하는 행사다.
뒤늦게 국토교통부의 뒷북치기 사업으로 유사 성격의 ‘대한민국 신인건축사 대상’이 제정돼 첫 회 수상자를 배출했다. 부처 간 힘겨루기의 난맥상이 아닐 수 없고, 권위와 권력을 욕망하는 구태가 건축계를 향한 사회의 시선을 우스갯거리로 만들어 버렸다.

악덕4〉 2014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커미셔너는 공모제라는 기이한 방식으로 선정했다.
자천타천으로 공모에 응한 지원자의 계획안과 그의 국제적 위상을 판단의 근거로 삼아 결정한 것이다. 직전 커미셔너의 주제기획과 관리 능력을 파행적으로 파악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건축계가 후보 천거에 의한 커미셔너 선정의 단점을 보완한다며 만든 후속조치였다. 일견 합리적일 것 같은 커미셔너의 공모 방식은 건축계에 뿌리박힌 불신 구조를 확인시킬 뿐이다. 2014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결과와 무관하게 지금은 2016 비엔날레 커미셔너 선정방식에 대해 다시 고민할 시점이다.

미덕1〉 대통령 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가 난파돼 침몰 직전의 위기상황을 맞은 가운데 박근혜정부의 무관심으로 인해 건축기본법의 정신과 의무를 방기, 훼손하고 있는 정황임에도 입 닫은 건축계는 리더십 부재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때에 그와 대비되는 행보가 박원순의 서울시를 중심으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서울시건축정책위원회의 발의와 공공건축가와의 연대로 서울건축포럼이 탄생하고 건축과 전문 직능의 헌장이라 할 만한 서울건축선언문이 작성됐으며, 공무원 및 시민들과 건축의 교감이 이뤄지고 있다.

미덕2〉 중소 우수 건설사를 선정해 응원하는 제도가 ‘건축명장’이다.
작가정신에 입각한 시공자의 기술력을 평가하고 장인정신에 근접한 이들의 작업태도를 응원하는 것으로써 단시일 내에 건축계의 성숙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새건협이 주도한지 2년 만에 괄목할 성과를 내고 있는데 중간지대 건축물을 생산하는 건설현장 주체들에 대한 건축계 내부의 동의와 사회적 환기는 종의 다양화를 외쳐온 문화적 성취로 주목될 만하다.

미덕3〉 국내 유일의, 민간이 운영하는 건축아카이브를 통해 노장세대와 신진세대를 동시에 껴안은 목천김정식문화재단이 연거푸 일을 내고 있다.
노장 건축가의 구술대담집을 발행하고, 관리 부실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1세대 선배 건축가들의 자료를 모으고, 후세대의 활용을 위해 체계적으로 정리할뿐더러, 주목받는 젊은 건축가의 작품까지 선별해 현대건축물의 아카이브 작업을 선언하고 있는 재단은 4〜50대 건축역사학자 및 이론가들이 주축이 된 현대건축연구회를 측면 지원하는 등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건축문화의 새로운 발판을 놓은 것으로 평가될만하다.

미덕4〉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지원하고, 정림건축문화재단과 K12건축학교가 공동 운영해오고 있는 ‘새싹 꿈·푸른 꿈 건축학교’는 어린이 청소년 세대와 젊은 학부모 세대를 아우르는 기초건축교육의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교육을 통한 건축가의 재능기부로 사회를 향한 건축의 진정성을 퍼뜨리고 나눔의 문화를 통해 건축가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는 전령들이란 점에서 일찍부터 시선을 모아 왔다. 건축의 희망이 이들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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