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총알 택시 문화와 건설 재해
<논단>총알 택시 문화와 건설 재해
  • 승인 2003.04.0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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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수 연구위원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안전 불감증의 사회
길을 걷다보면 비계를 철거하고 있는 기능공들을 보게 된다. 마치 외줄타기를 하듯 휘청거리는 강관파이프에 발을 디딘 채 비계를 해체하는 것이 무척 아슬아슬할 때가 많다.
발코니 창호를 시공하면서도 20층의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서서 이리저리 각도를 재곤 한다. 보는 사람은 아찔한데 당사자는 익숙하게 그러한 일을 수행하고 있다. 건설현장을 가보면 낙하 방지망이 허술한 곳이 많다. 외줄 비계로 버티는 현장도 많고, 음주 상태에서 철골 위를 횡보하는 사례도 있다.
노동부의 산업재해분석 통계를 보면, 2002년의 경우, 건설현장의 재해율은 0.72%로서 1만9천925명이 재해를 당하였고, 이 가운데 3.3%인 667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망률을 보면, 미국이나 일본에 비하여 2배, 독일에 비하여 3배 이상 높다.
우리나라에서 안전 사고율이 높은 이유는 근본적으로 ‘빨리빨리' 또는 ‘대충대충'이라는 전근대적인 습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몇 년 전에는 어느 관광회사에서 총알 택시를 관광 상품으로 내놓은 적이 있다. 서울과 수원, 인천을 총알택시를 타고 질주하는 스릴은 웬만한 롤러코스터를 능가한다. 우리나라에서 건설공사를 수행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마치 총알택시를 연상케 한다. 비좁은 공사 현장과 촉박한 공기, 주말에도 돌관 작업 등…
발주기관에서는 아직도 ‘빨리빨리'라는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러이러한 거대 사업을 몇 년내에 끝냈다는 것을 아직까지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풍토가 있다. 이러한 ‘빨리빨리' 문화가 결과적으로는 안전불감증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으며, 건설 재해를 증가시키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빨리빨리' 보다 안전을 우선시해야
요즈음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으로 인하여 사상자가 수 백명에 이르고 있다. 저러한 무모한 전쟁을 왜 하는가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기도 하지만, 국가로서는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더라도 정책적으로 달성해야 할 목표가 있을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도로나 공항, 주택들도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속에 건설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거의 잊고 있다.
과거 국책 연구기관의 보고서를 보면, 주택 200만호를 건설하면서 500명 이상의 인력이 희생될 것이라는 보고가 있었다. 사후적으로 검증된 바 없지만, 건설현장의 사망자 수가 연간 600명을 넘고 있는 현실에서 볼 때 가능성이 높다.
즉, 주택 200만호 건설이라는 정책적 목표를 위하여 500명 이상의 근로자가 희생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수 백명의 희생을 담보로 건설된 분당이나 일산 등의 신도시에서 평온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부실 공사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았지만,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주거나 SOC의 질적 향상보다는 대량 공급을 통한 경제 성장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대량 공급의 시대가 아니다. ‘빨리빨리'보다는 품질과 안전이 우선시되는 건설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발주 단계에서 충분한 공기 확보가 긴요
정부에서는 그 동안 안전 사고를 저감하기 위하여 시공업체에 대한 벌칙을 강화하여 왔다. 그런데 잠시도 쉴 틈없는 공사 기간을 고려할 때 안전 사고를 줄이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충분한 공사 기간을 확보해야 한다. ‘빨리빨리'라는 조급증에서 벗어나는 것이 안전 사고를 줄일 수 있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사종별로 정확한 공기(工期) 산정식도 거의 없다. 과거 1970년대의 주먹구구식 공기 산정 방식이 아직도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충분한 공기를 확보하고, 품질과 안전을 우선시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는 발주 기관의 인식 변화가 요구된다.
아직까지 건설업에서는 요원한 이야기이지만 주5일 근무제가 정착되기 위하여는 발주·설계 단계에서 충분한 공사 기간과 공사비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한편, 건설 재해를 저감하기 위하여는 근로자의 의식 향상과 더불어 안전 시설에 대한 투자가 강화되어야 한다. 근로자의 안전을 최우선시하고, 안전 난간이나 발판, 가설구조물 등의 안전 관리에 노력한다면 산업 재해를 크게 줄이는 것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는 추락이나 낙하물 비래, 협착, 감전 등과 같은 재래적인 안전 사고가 많기 때문이다.
안전 시설에 대한 투자는 결과적으로 산업 재해를 저감시켜 시공업체의 경제적인 손실을 최소화하고, 작업 환경을 개선시켜 생산성 향상으로 귀결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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