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에서 인심난다!
곳간에서 인심난다!
  • 승인 2010.05.10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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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대·중·소 건설업체간 상생이 화두다. 최근 건설경기 침체에 따른 수주난과 채산성 악화 등으로 건설업계가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건설업체간 상생방안 마련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우리 건설산업의 발전을 위한 실질적인 상생방안에 대해 살펴보자.

현재 논의되고 있는 방안들은 종합건설업체간 상생으로 편향되어 있다. 이는 건설산업에 국한된 특이한 현상인데, 건설산업 외 전자, 통신, 철강 등 타 산업분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현상이다.

그러나, 유독 건설산업에서만은 종합건설업자와 종합건설업자간의 상생협력을 주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시공능력평가 상위 업체와 중·소 하위 업체 간의 상생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가 종합건설업자간 무엇을 상생하라는 말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의 생산체계에 의하면 종합건설업자간 하도급 계약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현실에서 말이다.

결국 정책당국이 관심을 갖고 있는 각종 상생관련 논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는 상생이라는 명분 아래 대·중·소 건설업체간 시장분할, 시장제한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현재, 대형건설업자들에게는 상생이라는 명분하에 다양한 형태의 영업활동 제한 규제가 이미 시행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시공능력공시액 상위 10위 업체간 공동도급제한이 그것이며, 지역제한, 지역의무공동도급, 도급하한, 분할발주, PQ변별력 사문화 등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 우리가 해외 플랜트 시장에서 거둔 눈부신 성과를 냉정하게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공공발주 공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토목공사와는 달리 플랜트 공사는 그 사업의 특성상 분할발주나 지역의무공동도급, 지역제한, 형식적인 PQ심사 등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즉, 개별 종합건설업체들이 하나의 프로젝트 전체를 수행할 수 있는 건설분야가 바로 플랜트 공사인 것이다. 이러한 사업수행을 통해 국내 대형업체들은 다양한 시공경험, 실적과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오늘날 해외 플랜트 시장에서 눈부신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공공발주공사의 경우는 어떠한가?

상생이라는 명분 아래 공구분할은 일반화된지 오래되었고, 그 나마도 지역의무공동도급 강제 등으로 인해 실적과 노하우가 축적될 가능성 자체가 없어지고 있다.

국내 유수의 건설회사들이 해외 토목공사의 PQ심사에 통과할 수 없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해외 토목공사의 경우 전체 사업구간을 일괄하여 발주하는 경우가 일반화 되어 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지역제한, 지역의무 공동도급제, 도급하한제도, 분리발주 등 규제와 시장분할 위주의 종합건설업체간 상생방안들은 우리 건설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상생논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종합건설업체와 전문건설업체간 상생방안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개별업체 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형건설업체로 분류되는 국내 종합건설업체들은 대부분 이미 시공단계의 CM을 위주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즉, 종합건설업체들은 개별공사의 종합적인 계획, 관리를 담당하고 개별 전문공종들은 해당 종합건설업체들의 협력업자로 분류되는 전문건설업체 및 자재업체들이 수행하게 되는 하도급기반 생산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각 종합건설업체들은 이러한 생산방식의 효율 극대화를 위해 우수한 협력업자들을 발굴하고 육성·지원하는 다양한 시스템을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다.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협력업자의 경쟁력이 바로 자신들의 경쟁력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최근 가격경쟁 위주의 입찰제도 고착화로 인해 이러한 효율적인 협력관계 구조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안제시가 불가능한 단순 최저가제도의 고착화와 가격 위주 평가의 낙찰자 선정 방식의 턴키공사에 있어서는 필연적으로 저가낙찰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원도급자의 낙찰율이 낮은 상태에서 어떻게 상생문제를 슬기롭게 풀어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오히려 산업계가 정책당국에 묻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상생의 취지에 대해서는 십분 동의한다. 아니, 건설업계가 오히려 그 중요성에 대해 정책당국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우리 속담에 “곳간에서 인심난다”라는 말이 있다.

곳간이 비어 있으면 주위를 살펴 볼 겨를이 없어진다. 상부상조 하는 우리의 미덕이 건설업계에서도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정책당국의 빈 곳간을 채워주는 세심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때이다.

천길주 (현대건설(주) 국내영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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