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관계심리와 건설문화
한국인의 관계심리와 건설문화
  • 승인 2010.01.11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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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미국 정신과협회에서 화병을 한국인의 고유한 정신 질환으로 공인한 바 있다. 가정의학자 유태우는 이 화병을 관계의 병으로 규정한다.

그는 서양인은 마음의 병을 앓지만 한국인은 주로 관계의 병을 앓는다고 진단한다. 한국인은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대하여 유달리 민감한 편이다.

리처드 니스벳 교수가 쓴 ‘생각의 지도’를 보면 서양인과 동양인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자기 소개를 하라고 하면, 서양아이는 자신의 특징과 생각을 말하는 반면 동양아이는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를 주로 말한다고 한다.

배경이 있는 화면을 보여 주고 설명하라는 실험을 하면, 서양학생은 특정 사물을 주로 설명하는 반면 동양학생들은 배경요소를 동시에 언급한다고 한다. 서양인이 홀로 산다면 동양인은 더불어 사는 셈이다.

중국에서 사업에 성공하려면 즉, 관계가 중요하다고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관계지향 심리는 한국인들의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문화이다.

관계지향 심리의 특징 중 하나가 내 편과 네 편을 구분하는 것이다.

자기 생각보다는 내 편인가 아닌가가 더 중요하다. 무슨 일에서든지 한국에서 성공하려면 자기 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의 폭의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에 사람과 기업이 많이 몰려드는 것도 관계를 중요시하는 한국적 문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인의 관계지향 심리는 건설산업 문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건설산업은 계약 산업이면서 동시에 네트워크 산업이다.

그런데 서구의 건설산업에 비하여 한국 건설산업은 네트워크 지향적이다. 수주에서 클레임에 이르기까지 합리적인 계약 행위로 풀려고 하기보다는 관계를 통하여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과거에 비하여 계약을 중시하는 정도는 훨씬 강해졌다. 그러나, 아직도 관계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습성은 여전히 건설인들의 의식 속에 남아 있다.

한국 건설문화의 특징 중 하나인 연고주의 역시 관계지향 심리에서 비롯된다. 문제를 법과 원칙보다는 연고관계를 활용하여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국민들은 다른 산업에 비하여 건설업계가 법을 어기는 정도가 심하다고 생각한다.

관계지향 심리로 이해하면 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설득력 있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법보다는 관계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국민적 심리가 네트워크의 중요성이 큰 건설산업에서는 더 크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내집단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한국의 직장인들은 법보다 회사의 방침을 더 중요하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건설산업은 불확실성이 높은 대표적인 산업이다. 그래서 다른 어느 산업보다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건설기업들은 리스크 관리능력이 취약하다.

아예 시장환경이나 자기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무모하게 도전하는 기업들도 있다. 역시 관계지향 심리가 빚어낸 문화적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

자기 통제력을 중시하는 서구문화에 비하여 관계적 상황을 중시하는 동양적 문화가 상대적으로 리스크 관리 능력의 배양을 무시할 가능성이 높다.

관계지향 심리가 부정적인 측면이 많기는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서구의 합리적 계약문화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관계지향 심리는 잘만 활용하면 더 높은 생산성을 창출한다. 최근 영국과 같은 건설 선진국에서 파트너링방식의 발주제도가 생겨나고 있는 것은 합리적 계약문화가 갖는 한계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의 건설인들은 내 편이라고 여기는 관계성만 잘 정립되면 열정적으로 일하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다만, 그것이 지나치게 편협되게 작용하는 것이 문제이다.

건설산업의 리더들은 한국인의 의식 속에 강하게 남아 있는 관계지향의 심리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 기업 내부는 물론 산업 전체에서 건설 종사자 모두가 하나라는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데 보다 많은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다.

윤영선 박사 (건설산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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