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이라는 거짓 패러다임
‘상생’이라는 거짓 패러다임
  • 김은경 기자
  • 승인 2007.11.26 09: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느 때부턴가 우리 사회에는 키워드가 생기기 시작했다. 단어 하나가 갖는 의미가 본래 의미 이상으로 확대되면서 이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나타내고 파워를 갖기 시작한 것이다. 오렌지족 혹은 X세대로 시작된 이런 키워드는 어느샌가 블루오션을 유행시키고 상생이란 단어를 남발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함께 공존하면서 살아간다’는 의미를 가진 ‘상생’은 지난해 광풍을 몰아치며 다양한 이익집단의 패러다임 속에 당당히 자리를 꿰차고 들어앉았다. 그런데 과연 그 속에서 진짜 상생의 본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건 얼마나 될까.

최근의 사례만 보자. 지난 10월말에는 중소기업중앙회 납품단가현실화특별위원회는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를 중단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에 앞서 재정경제부와 행정자치부는 국가계약법과 지방계약법을 개정하면서 하도급계획을 어긴 부정당업자에 대해 최대 6개월까지 공공공사의 입찰을 제안하는 안을 제정했다. 또 공정거래위원회는 하도급 공정거래협약 체결 선포식을 갖기도 하고 ‘대ㆍ중소기업간 상생협력을 위한 바람직한 계약 체결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직 하도급업체들은 도대체 무엇이 나아졌는지 체감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기업에 건설자재를 납품하는 몇몇 중소기업 사장들을 만나보니 횡포가 심한 곳은 여전하다. 그 중에서도 기업풍토부터 싸구려로 의심받고 있는 한 건설업체에 대해선 업체 이름이 나오자마자 고개를 설레설레한다. 생각하기도 싫다는 것이다. 차라리 거래를 끊고 싶다며 원성을 높이는 사장들도 있었다. 반면 모 건설사 우수협력업체 특집을 위해 만났던 사장들의 “밥 한번 제대로 살 수 없었다”는 희한한(?) 하소연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몇 번이나 진짜냐고 되물었으니 그야말로 코미디 아닌가.

상생을 외친지 거의 2년여가 지나고 있으나 아직도 우리 사회는 진정한 그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다. 사전적 의미의 상생은 이미 키워드 속의 거짓 패러다임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패러다임 속 진정한 상생은 함께 잘 살자가 아니라 ‘어쨌든 나라도 잘 살아보자’는 의미가 더 짙으니 말이다.

김은경 취재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