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엔지니어링의 제도개혁을 기대한다
건설엔지니어링의 제도개혁을 기대한다
  • 승인 2007.06.1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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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많은 건설엔지니어링 회사들이 공공부문의 설계발주 물량이 급속하게 감소함으로써 회사의 존폐까지를 걱정해야하는 매우 어려운 환경에 직면해 있다.

건설부문 예산 중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던 도로·철도 등 교통시설과 관련된 신규 프로젝트가 대폭 축소되고, 기착공된 공사의 준공위주로 예산이 투입되다 보니, 신규설계 물량은 예전에 비해 절반 이하로 급감된 상태이다.

이러한 건설엔지니어링 회사의 수주물량 급감은 2-3년 후 건설공사의 급감으로 이어질 것이며, 이로 인해 전반적인 공공건설산업의 극심한 침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공공건설산업의 침체가 1-2년 단기간내에 끝날 것으로 보이지 않으며, 획기적 모멘텀이 발생하지 않는 한, 아주 오랜기간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핵심은 건설엔지니어링의 국제적 기술경쟁력이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설계라는 소프트웨어가 뒷받침되지 않고, 하드웨어인 시공만 단독으로 해외건설시장에 진출한다는 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없음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다.

설계와 시공에 관련된 기술력이 동반 발전하여 국제적으로 그 수준을 인정받을 때에만, 우리 건설업계가 직면한 국내에서의 물량부족에 대한 해법을 해외시장에서 찾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건설교통부는 2003년에 발표한 ‘제3차 건설기술진흥 기본계획’에서 <세계 일류 수준의 건설기술확보>를 비전 및 목표로 제시하고 건설엔지니어링의 국제 경쟁력 강화, 건설엔지니어링의 글로벌화 등 20개의 중점추진 과제를 선정한 바 있다.

이를 위해 건설 R&D 예산을 대폭 확대하고 그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각종 개선책을 마련하고 있으며 각종 건설기술 정책과 제도를 국제기준 및 관행에 맞도록 새롭게 정비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진행해 오고 있다.

설계회사의 사업수행능력 세부평가기준을 새롭게 정비하고 턴키나 대안설계의 심의 절차와 방법에 대한 개선안을 마련하기 위해 외부에 연구용역을 발주한 상태이며, 부디 좋은 연구성과가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다만, 차제에 정말로 우리나라의 건설엔지니어링이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건설산업에 종사하는 관·산·학·연 모두의 구성원이 함께 심각한 고민을 해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건설엔지니어링 시장은 남보다 앞선 기술력으로 무장된 좋은 기술자보다는 발주처와의 네트웍을 가진 로비스트들에게 좀 더 많고 좋은 기회가 주어진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건설엔지니어링 회사는 기술개발과 기술자의 양성에 노력하기보다는 발주처 출신의 인사를 스카우트하여 남보다 많은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회사를 외적으로 확장시키는데 전력을 기울여 왔던 것이 부끄러운 현실이다.

발주처의 담당자들도 같이 근무했던 설계회사의 옛 동료들로부터 들어오는 청탁을 거절하기 힘들고, 자신의 장래를 고려하여, 일부 합리적이지 못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국제기준에 미달되는 PQ 평가기준을 가지고 설계회사를 선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턴키나 대안공사의 낙찰자 선정과정은 어떠한가?

그동안 여러 가지 좋다는 방법을 거의 모두 시행해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설계성과의 품질과 그에 따른 가격 경쟁력에 의해 정직하게 낙찰자가 선정된다고 믿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건산법 개정안을 비롯해 공정경쟁을 유도하기 위한 여러가지 처벌조항들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충실하게 그것을 지키는 사람이 우리의 현실에서 과연 승자가 될 수 있는 것인가?

이러한 많은 문제점 때문에 급기야 오로지 심의 투명성만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전문가의 성과품을 비전문가가 심의’하는 매우 불합리한 현행 심의제도가 탄생되게 되었으며, 비전문가들이 심의를 담당하다보니 현행제도의 최고가치인 투명성마저 다시 의심받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비전문가들로부터 평가를 좋게 받기위해 성과품의 내용보다는 포장과 겉치레에 더욱 신경을 쓰는 이상한 기술경쟁이 상례화 되어 있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제 건설엔지니어링 분야에 획기적 개혁이 필요한 때가 왔다.

이제까지의 제도와 관습에서 과감히 벗어나 기술력으로 정정당당하게 승부하고, 도덕적으로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는 진정한 기술자들이 좋은 대우를 받고, 존경받는 세상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만 한다.

다행히도 지난 10여년간 우리나라에서는 턴키·대안 등의 경쟁설계가 보편화 되면서 나름대로 좋은 기술력을 가진 젊은 기술자들이 많이 양성되어 왔다.

그들에게 희망과 격려를 주고, 그들이 자신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진정한 의미에서 선의의 경쟁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건설엔지니어링 분야에서도 국제경쟁력 확보가 그렇게 어렵지 만은 않을 것이다.

건설엔지니어링에 종사하는 관·산·학 모두의 구성원들이 국제적 환경변화에 빨리 적응하여 이제까지의 구태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진정으로 기술력이 대우받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현제 연구용역이 수행되고 있는 ‘설계 등 용역업자의 사업수행능력 세부평가기준’의 세부내용과 턴키·대안공사의 심의방법에 관한 개선내용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제까지의 기득권과 각종 불합리한 관행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오로지 엔지니어링 산업의 국제 경쟁력에 초점을 맞춘 혁신적인 제도가 탄생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서석구 부사장 (서영엔지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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