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은평ㆍ판교 합동사무소 ‘백야’
<현장르포>은평ㆍ판교 합동사무소 ‘백야’
  • 박상익 기자
  • 승인 2006.03.10 1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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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위는 던져 졌다 ‘24시간 풀가동’
오는 3월 15일과 3월 28일은 건설업계서 아주 중요한 날이다.
은평과 판교 턴키입찰일이기 때문이다. 은평과 판교 턴키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건설업체들이 건축사무소와 공동으로 합동사무소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의 건설사들이 설계관리팀을 비상 가동시켜 설계 CM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기존에 함께 움직였던 건축사사무소에 주택설계 간섭을 최소화하고 은평과 판교에 대한 적절한 공법을 통합수행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신기술ㆍ신공법에 대한 정보수집 및 현실 적응성 검토를 위한 설계접목을 유도하고 시공전문가 그룹에 의한 설계의 가능성을 검토해 대체 방안을 제시한다는 계획이다.

박상익 기자 4242park@

■기자가 찾은 합사…여느 사무실과 다를 바 없었다.

강남의 테헤란로 주변 곳곳에 24시간 불이 켜져 있는 오피스가 많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더욱 활발하게 생기가 돋는 그 곳은 다름 아닌 은평뉴타운과 판교 턴키공사에 참여하는 건설사와 건축사 간 비밀 프로젝트가 오고가는 합동사무소이다.

빠르면 이틀, 늦어도 열흘안에 치루어야 할 턴키전쟁 때문에 24시간 풀가동되고 있는 그곳의 열기는 이른 봄 차가운 새벽공기와는 다르게 오뉴월 발사되는 한볕 더위처럼 뜨겁기만 했다.
늦은 새벽 2시, 싸늘한 새벽공기를 맞으며 기자가 어렵게 찾은 은평ㆍ판교 합동사무소에는 50여명이 남짓한 장정들이 한쪽 귀에 연필을 또 다른 귀엔 담배를 꽂고 무언가 열중하는 모습들이었다.

각자의 책상 앞에는 여러가지 도면들이 널부러져 있고 미니모형으로 만들고 부수고, 붙였다 다시 떼었다 하기를 수차례, 모형 구조물은 낡은 상태 그대로 여러 개가 놓여져 있었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도면을 놓고 열심히 회의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50여명 남짓한 장정들 속에서 지친 기색임에도 눈만큼은 초롱초롱한 여직원들도 눈에 띄었다. 일에 대한 집착과 집중력이 상당히 뛰어나 건축 분야에서도 여성이 우위 선점하고 있다는 것을 이곳 합동사무소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합사 어떻게 구성되나

3개월 전부터 합동 사무소가 구성된다. 대부분 강남의 중심가에 자리를 잡는다. 이유는 명성 높은 건축사사무소가 대부분 강남 중심가에 있으며 직원들의 교통편의를 고려해 강남쪽을 택한다. 입찰 공고가 난 이후 PT 준비를 비롯해 질의응답 준비까지 통상 3개월에서 4개월가량 합사가 운영된다.

합사는 시공사의 설계팀은 물론 건축 외 조경, 인테리어, 기타 보고서분야까지 각 분야에서 제몫을 해 줘야 하기 때문에 어느팀하나라도 중요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세분화 되어 있는 것 같지만 결과물은 결국 하나다. 최종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팀 전체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

24시간 풀가동되는 체제에서 육체적 피로로 인해 팀원들간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서로가 일에 대한 집착과 질 높은 결과물을 도출해내기 위한 과정이기에 이해하고 넘어간다고.

■보안이 생명…종이 한 장이라도 내부 유출 금지

‘보안유지…도면만 이곳에’라는 문구가 어느 합사를 가든 붙어 있다. 특히 합동사무소마다 벽 모서리 한쪽에는 갖가지 도면들이 쌓여 있다.

곧장 쓰레기통으로 못가고 쌓인 이유는 정보 유출 때문. 일반인들은 그냥 봐도 모르겠지만 전문가들은 도면에 나오는 점 하나, 선하나, 색채까지도 어떤 설계인지, 어떤 구상인지 바로 알 수가 있어 쓰레기통행으로 보낼 수가 없다고 한다. 정보유출을 막기 위해 폐기 처분될 도면들은 분쇄기로 그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고.

■에피소드 1…체력은 국력 ‘아프면 격리 수용’

하루 평균수면이 3시간이다. 24시간 가동한다고는 하지만 체력에 한계를 느낄 정도가 되면 한달에 한번 정도 휴식기를 갖는다.

체력이 중요한 만큼 병마와의 싸움은 자기의 몫이다. 감기라도 걸렸다 싶으면 격리 수용된다.

감기 바이러스로 인해 50여명이 함께 전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초기 감기에 걸렸다해도 곧바로 퇴근을 시켜 버린다. 어찌 보면 감기 핑계로 인한 달콤한 휴식일 수 있겠지만 ‘몸은 집, 마음은 일’. 머릿속에 해야 할 일들이 휘집고 다닌다며 직업은 못 속인다는 말을 기자에게 털어 놓는다.

■에피소드 2…간식은 필수 ‘족발에 소주 한잔’

새벽 3시쯤이면 배에서 시계가 울린다. 저녁을 7시 정도쯤에 먹고 나도 야간작업은 체력소모를 두 배 이상하기 때문에 새벽 3시경의 야식 타임은 그야말로 또 다른 휴식 시간이다. 갖은 스트레스로 인해 동료에게 짜증을 부리고 찌푸린 얼굴로 냉소해 질 때도 있지만 이 시간으로 인해 시간적 여유와 안정을 되찾는다.

가장 즐겨 찾는 메뉴는 당연 족발. 족발에 소주한잔이면 낮의 피로를 한꺼번에 날려버린다. 해 놓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이 많지만 그래도 이 시간만큼은 즐겁다고.

■합사 동안 가족 포기…새우잠 자면서 찜질방서 샤워

낮이고 밤이고 수시로 설계변경을 체크하는 등 회의가 많다. 수면 부족상태이기 때문에 눈을 감고 반수면 상태서 회의는 이루어진다. 30분을 초과하면 긴장도가 떨어져서 회의에 동참한 직원들은 다 눈을 감고 입으로 말하고 있다고. 그래도 회의 내용은 다 인지하고 있으니 경험 속에 배어나오는 경륜이 아닐 수 없다.

평균 수면이 3시간. 새벽 4시반에서 5시 사이에 잠을 청한다. 소위 말해 책상 앞에 앉아 새우잠을 자며 일부는 인근 찜질방서 잠을 청한다. 늦어도 오전 10시 이전에 모든 직원이 사무실로 복귀해 다시 일에 전념한다.

이처럼 생활 리듬이 바뀌어 낮 보다는 새벽시간에 일에 매진하게 된다. 합사 3개월동안 가족은 거의 포기해야 한다고. 그래도 3달 정도 되면 그것도 이력이 나서 3시간의 새우잠마저도 달콤하게 느껴진다는 한 베테랑 건축사의 말이 뇌리에 박힌다.

■입찰 후 한달이 최대 고비…‘질의응답’ 애간장

입찰 후 한달동안 기술위원 20여명들로부터 질의응답을 받는다. 입찰 전 최종결과물을 만들어 낸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입찰 후 1달이 더 긴장속에서 이루어진다.

기술위원 평가가 2~3일 정도 이루어지는데 이에 대한 도면 검토, 의문사항 질의, 기술적 근거자료, 답변 등과 관련한 PPT를 만들어 내는 일이 더 힘들다고.

■육체적 피로보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가장 힘들어

수면부족으로 오는 육체적 피로보다는 최종결과물 평가에 대한 압박 등으로 오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특히 설계라는 부분은 창의성과 세밀성을 요하는 예술 디자인의 한 분야다. 때문에 창의적인 시안이 안 떠오르면 거기에 대한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또 직원들 피로로 오는 차가운 말 한마디 등에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매번 느끼지만 입찰 전 긴장감도 스트레스로 이어진다고.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건축에 대한 애착으로 버텨

턴키설계작업이 3개월에서 4개월 시간이 소요된다. 일년에 턴키공사 3개만 진행해도 일년이 눈 깜짝 할 사이에 간다. 건축 분야 사람들은 시간에 대한 흐름을 모르고 산다. 오로지 입찰일에만 몰두한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하기도 하다.

식사 시간 이외에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와 싸워야 하기 때문에 갖은 직업병도 많다. 관절염을 비롯해 안구건조증, 빈혈, 결림증 등등 있는 직업병들은 다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일을 왜 하냐는 질문에 한 건축사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명언을 남겼다. 건축에 대한 열정과 애착, 자부심 등으로 인해 육체적ㆍ정신적 피로를 감수하고도 이일을 하고 있다고.

자신이 설계한 아파트가 그대로 지어지는 걸 보면서 뿌듯함과 자부심이 생긴다며 외롭고 힘들어도 결코 멈출 수 없다고 말한다. 내달이면 은평이든 판교든 승패가 판가름 나지만 승자든 패자든 그동안 쏟아 부은 열정만은 우열을 따질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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