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칼럼] 공사대금채무를 남겨둔 채 새로운 건설회사로 영업을 계속한 경우 법인격 남용이 인정된 사례

신설시점, 시공권 이전의 대가 유무 등 사실 따져봐야 해 사정에 따라 신설회사도 기존 채무 책임 인정될 수 있어

2026-10-28     강지윤 법무법인 산하 기업법무팀 수석변호사

1. 문제의 소재

강지윤

건설공사의 하수급인 등이 공사를 마친 뒤에도 공사대금을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어렵게 채권을 확정했더라도 기존 건설회사에는 집행할 재산이 없고, 그 회사가 수행하던 공사와 인력, 거래관계가 다른 회사로 이전된 뒤 그 회사가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면 채권자로서는 더욱 곤란해진다.
주식회사는 원칙적으로 서로 별개의 법인격을 가지므로, 기존 회사에 대한 채권을 이유로 신설회사에 곧바로 변제를 청구할 수는 없다. 다만 회사제도가 채무면탈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법인격의 독립성이 부정될 수 있다.
최근 수원지방법원은 기존 건설회사에 대한 공사대금채권이 확정된 상황에서, 그 회사가 수행하던 공사와 임직원, 거래관계 등이 신설회사로 사실상 이전된 사안에 관해 신설회사에도 공사대금채무의 이행을 명했다.

2. 판례의 입장 [수원지방법원 2026. 6. 23. 선고 2025가단515768 판결]

가. 사실관계
원고는 C로부터 건물 신축공사 중 창호공사를 하도급받아 공사를 수행했으나 공사대금을 지급받지 못했고, C를 상대로 공사대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 결과 3억원 상당의 공사대금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화해권고결정이 확정됐다.
그런데 원고가 C를 상대로 지급명령을 신청하고 C가 이에 이의를 제기한 직후, C와 동일한 건물에 본점을 두고 유사한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피고 회사가 설립됐다.
이후 C가 수행하던 다른 신축공사의 시공자가 피고로 변경됐고, 원고는 피고가 C의 채무를 면탈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이므로 피고 역시 C의 공사대금채무를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 법원의 판단
법원은 기존 회사가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형태와 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신설회사를 설립한 경우, 신설회사가 기존 회사와 별개의 법인격을 가지고 있음을 채권자에게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는 기존 대법원 법리를 전제로 판단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피고의 설립 시점, 두 회사의 임원 및 주주 관계, 본점 소재지, 기존 공사의 승계 경위, 거래업체와 임직원의 이동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봤다.
우선 피고는 원고와 C 사이의 공사대금 분쟁이 현실화된 직후 설립됐고, 피고의 대표이사와 사내이사는 기존 C에서도 같은 지위에 있었다. 기존 회사의 최대주주와 피고의 주요 주주 사이에는 가족관계도 존재했다.
사업의 연속성도 인정됐다. C가 진행하던 신축공사를 타절정산한 바로 다음 날 피고가 잔여공사와 동일한 금액으로 같은 현장에 관한 도급계약을 체결했고, 그 과정에서 피고가 C에 시공권 승계의 대가를 지급했다는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다. 기존 거래업체 상당수도 그대로 피고와 거래했고, 피고 임직원 9명 모두 C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었다.
또 C는 당시 보유하던 주요 공사들을 피고에게 승계해 원고가 C를 상대로 실질적인 채권확보 조치를 취하기 어려워진 반면, 피고는 기존 사업을 이어받아 계속 영업하고 있었다.
이에 법원은 피고가 C와 형태와 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사업체고, C의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피고가 자신은 C와 별개의 법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고, 원고는 C뿐만 아니라 피고에 대해서도 채무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고 보았다.

3. 결론

대상판결은 법인이 새로 설립됐다는 형식보다 실제 사업의 내용과 영업기반이 어디로 이전됐는지를 중심으로 법인격 남용 여부를 판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법인격 남용은 서로 다른 법인의 독립성을 예외적으로 부정하는 법리이므로 실무상 쉽게 인정되지는 않는다. 만약 대표자나 사업목적, 거래처 등이 일부 중복된다는 사정만으로 법인격 남용을 폭넓게 인정한다면, 적법하게 설립·운영되는 별개 회사에 다른 법인의 채무를 부담시키는 부당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고 법인격 독립의 원칙 자체가 훼손될 우려도 있다. 따라서 그 인정 여부는 신설 경위와 목적, 두 회사 사이의 인적·물적 동일성, 자산이나 영업의 이전 과정 등을 종합해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대상판결은 신설 시점, 임원과 주주 관계, 공사 승계, 거래처 및 임직원의 이동, 시공권 이전의 대가 유무 등 여러 객관적 사정을 종합해 실제로 법인격 남용을 인정했다.

대상판결은 결국 법인격 남용의 인정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으나, 채무는 기존 회사에 남겨둔 채 사업의 실질만 새로운 회사로 옮긴 것이 객관적인 사정들에 의해 확인되는 경우에는 신설회사 역시 기존 채무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국건설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