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판례>분양계약의 효력과 약관규제
<건설판례>분양계약의 효력과 약관규제
  • 승인 2005.10.29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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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분양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분양계약 약관은 효력이 없어
들어가며

민사관계에 있어 기본적인 대원칙은 계약자유의 원칙이다. 이는 당사자간의 합의만 있으면 어떠한 내용의 계약이라도 그 효력이 인정되고 준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법체계는 실질적인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계약자유의 원칙에 많은 수정을 가하고 있는바 그 대표적인 것이 약관에 대한 규제다. 약관은 그것이 계약당사자 일방에 의해 획일적으로 작성된다는 특징이 있으나, 기본적으로 약관규정들은 당사자간의 계약내용으로 편입되는 것이므로 원칙적으로 당사자가 약관에 동의한 이상 약관규정은 지켜져야 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약관규제법은 불공정한 약관규정들에 대해 그 효력을 부인하고 있다.

소개할 판례는 당사자간에 체결된 계약의 유효성과 약관규제의 필요성 사이에서 많은 점을 시사해 준다.

사실관계

원고들은 피고 건설회사가 신축하는 아파트를 분양받기로 하고 피고와 주택공급계약을 체결했는데, 계약의 내용은 원고들이 중도금까지 완납하면 피고는 옥상층에 철근배치를 완료한다는 것이었다. 원고는 계약내용에 따라 계약체결시 계약금을 납부하고, 그후 6회에 걸쳐 3개월 내지 4개월 단위로 중도금을 분할납부했다. 피고 회사는 중도금 납부기한이 경과한 후 옥상층에 철근배치를 완료하고 원고들을 입주시켰다.

한편 구 주택건설촉진법 및 주택공급에관한규칙에 따르면 사업자가 아파트를 공급하는 경우 중도금은 옥상층의 철근배치가 완료된 때를 기준으로 전후 각 2회 이상 분할해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약관의규제에관한법률 제11조 제2호는 ‘고객에게 부여된 기한의 이익을 상당한 이유 없이 박탈하는 조항은 무효로 한다’라고 규정하였다.

원고들은 옥상층 철근배치 완료 이전에 중도금 납부를 완료하도록 정한 주택공급계약의 조항이 약관규제법에 반해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중도금 납부일로부터 실제 철근배치를 완료한 시점까지 약정된 이율에 따른 할인이자 상당액을 피고가 법률상 원인 없이 취득했다면서 이것의 반환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 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이 사건 주택공급계약상의 해당 조항은 유효하다고 판단해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가. 구 주택건설촉진법 제32조 및 이에 따른 구 주택공급에관한규칙 제26조 제4항은 사업 주체가 아파트인 분양주택을 공급하는 경우에 중도금을 옥상층의 철근배치가 완료된 때를 기준으로 전후 각 2회 이상 분할해 지급받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이에 위반되는 내용의 주택공급계약의 사법적 효력은 인정된다.

나. 사업 주체가 주택을 공급받고자 하는 자들과 주택공급계약을 체결함에 있어서 예상 건축공정에 따라 계약금 납부일 이후 입주예정일까지 사이의 기간에 대해 3개월 또는 4개월 단위로 6회에 나누어 중도금 지급기일을 지정한 것은 거래통념상 합당하고, 이러한 약관조항이 약관의규제에관한법률에 의해 무효라고 볼 수 없다.

다. 만약 사업 주체측의 신용불안이나 재산상태의 악화, 건축공정의 부당한 지연 등의 사정으로 인해 사업 주체의 의무이행이 곤란할 현저한 사유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주택을 공급받고자 하는 자들의 일체의 항변권을 배제시킨 채 그 이행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라면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되고 불공정한 계약으로 무효가 될 수 있으나, 위 조항은 그러한 정도에는 이르지 않았다.

평 석

판례는 주택건설촉진법 및 주택공급에관한규칙에 위반하는 이 사건 계약에 대해 그 사법적 효력은 인정하고 있다. 이는 위 법률에서 규정한 사항들이 그것을 위반한 경우 형사적으로 처벌대상이 되는 단속규정은 될 수 있을지라도 당사자간의 계약을 무효화시킬 수 있는 이른바 효력규정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계약조항이 약관규제법에 의해 그 효력이 무효가 되는 정도에 이르기 위해서는 사업자측의 재산상태의 악화, 건축공정의 부당한 지연 등의 사정이 있더라도 수분양자들의 이행거절 등 일체의 항변권을 배제시킨 채 수분양자측의 의무이행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고 보았다.

판결 이유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있지는 않으나, 생각컨대 대법원은 이 사건 주택공급계약이 원만하게 이행되어 특별히 분양을 받은 사람의 이익을 보호해야 할 사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과 중도금을 조달해 공사를 시행하는 시공사들의 일반적인 사정을 고려한 것이라 판단된다. 같은 맥락에서 만약 수분양자들이 중도금을 납부한 때로부터 상당기간이 지났는데도 옥상층 철근배치공사가 진행되지 않았다면 판례는 다른 태도를 취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 사건에서 대법원이 원고들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사건의 구체적인 사정을 고려할 때 당사자간 계약의 효력을 부정하면서까지 원고측에 유리한 판단을 해야 할 필요성이 없다는 점 때문이라고 사료된다.


김현 변호사 (법무법인 세창 대표/건설교통부 법률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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