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칼럼] 의자에 머무는 공공공간의 환대
[조경칼럼] 의자에 머무는 공공공간의 환대
  • 온수진 서울시 양천구청 공원녹지과장
  • 승인 2024.05.22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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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은 도시의 쉼표, 의자는 공원의 쉼표
방문객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 마련 필요
온수진 서울시 양천구청 공원녹지과장.
온수진 서울시 양천구청 공원녹지과장.

지난 4월말 안양천공원에 스무 개 정도의 의자를 설치했다. 작년 환경부가 양평교 주변 1만5000㎡ 둔치에 초화원을 조성하면서 수변 산책로와 포켓쉼터를 설치했는데, 정작 쉼터에는 의자 없이 포장만 해놓았기 때문이었다. 물멍하기 알맞은 장소라 오래 앉을 수 있는 등의자를 골라야 했는데 간혹 침수가 되는 곳이라 한참을 망설였다. 
홍수가 무서운 것이 물만 덮치는 게 아니라 토사는 물론 각종 나뭇가지와 풀, 쓰레기 등이 뒤엉켜 내려오는데, 의자와 같은 시설에 달라붙으면 수압을 받는 면적이 커지며 뿌리째 뽑힐 수 있기 때문이다. 
장고 끝에 외발로 선 단순한 등의자를 골라 설치했고, 지나는 분들이 간간이 물멍하며 다리쉼을 하신다. 끝났나 싶었지만 곧 햇볕이 따가워지는 철이라 다시 고민에 들었다. 결국 쉼터마다 그늘목을 심기로 하고 강가에서 잘 버티면서도 겨울 철새들 먹이로 유익한 참느릅나무를 수배했다.

공원을 관리하는 일에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사람뿐 아닌 방문하는 뭇 생명에게 환대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바쁜 도시인들이 잠시나마 그곳에 머물길 바란다면 의자는 필수다. 공원은 도시의 쉼표고 의자는 공원의 쉼표다. 삭막한 도시라는 표현도 한편으론 몸 누일 공간(집)도 몸 쉴 공간(의자)도 부족한 탓일 테니, 우리가 유독 카페에 집착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점심때마다 직원들과 카페를 찾는데, 커피 맛이 우선이지만 멋진 경관과 쾌적한 공간과 편안한 의자도 중요한 기준이다. 
언제나 우리를, 아니 우리의 카드를 환대하는 공간이지만, 아뿔싸, 자리가 없는 경우도 다반사고, 원하는 자리는 늘 귀하고, 아니, 원하는 숫자만큼의 자리마저도 쉽지 않다. 어쩌면 이리도 도시의 공간들과 빼닮았는지.

(위로부터) 각각 안양천공원과 오목공원에 의자를 설치한 모습. 사진=온수진
(위로부터) 각각 안양천공원과 오목공원에 의자를 설치한 모습. 사진=온수진

이런 빈틈을 메우는 완충공간이 공원과 같은 공공공간이라 무척 소중하다. 특히 의자는 공공공간이 제공하는 환대의 수준과 정비례하는데, 도시에서 늘 공원이 부족한 것처럼 공원에서도 늘 의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늘 깊은 숲, 멋진 전망, 시원하고 맑은 물, 사랑스런 아이를 바라보는 자리에 의자는 더 놓여야 한다. 그래야 더 머무른다. 상업 서비스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게 체류시간인데, 공원도 마찬가지다. 경쟁력이 높다는 것은 기꺼이 오랜 시간을 내어 줄 만큼 감동받는 것이고, 의자는 그 핵심이다.
누구나 소중한 시간을 편안하게 보내려는 욕망을 충분히 받아 안는 공원을 꿈꾼다. 도시인의 자존감을 높이는 공공공간의 환대가 온갖 위기 속에서도 결국 도시를 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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