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및 공동체에 대한 존중과 신뢰의 끈 놓쳐서는 안 돼
요즘 밤양갱이 때 아닌 인기를 누린다고 한다. 가수 비비의 ‘밤양갱’이란 노래 덕분이다. 밤양갱의 가사를 들어보면 헤어지는 남녀간의 평범한 노랫말인데 가사나 리듬은 달고 단 밤양갱보다 더 달콤하다. 별 거 아닌 것 같으면서 매력적이고, 익숙한 것 같은 데 처음처럼 신선하다.
사랑과 이별, 너무나 익숙한 스토리이지만 이 노래가 우리에게 처음처럼 다가서는 이유가 뭘까? 이 노래를 듣다 순간 오버랩되는 이미지가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이다.
사랑과 이별을 다른 시선으로 이야기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보자. 박해일의 바다 그리고 안개가 자욱한 미장센의 순간을 영원히 각인시키려는 듯 영화의 OST가 흘러나온다.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 1967년 세상에 처음 선 보인 정훈희의 '안개'가 2023년 '헤어질 결심'에서 함춘호의 기타와 송창식과의 듀엣으로 다시 태어났다.
처음처럼, 익숙하지만 낯설게. 그렇게 우리는 처음처럼 대하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흔히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 새로운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한다.
새로운 것들은 어쩌면 다시 태어나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재들의 '라떼'에나 등장할 법한 양갱이 MZ세대들 덕분에 때 아닌 호사를 누리는 것처럼.
뭔가를 처음처럼 도전해 보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어느 순간 늘 해 왔던 방식에 익숙해져 버린 건 아닌지, 변화를 향한 도전을 꿈꾸는 것마저도 내가 처한 상황에서는 지극히 사치스러운 일이라고 치부하진 않는지, 내가 하는 일을 통해 세상을 향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그저 습관처럼 일에 매달려 있지나 않는지 돌아보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도시, 건축, 조경 등의 삶을 담는 공간을 다루는 영역에서 처음처럼 변화를 꾀하고 새로운 것에 대해 도전할 때 놓쳐서는 안 되는, 변화하지 않는 가치는 아마도 공간의 공동체성과 공공성일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삶터에서 너와 나, 그리고 우리가 함께 사는 공동체성을 향한 도전의 한 걸음, 한 걸음은 공간에서의 더 나은 삶, 더 나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이다.
최근 주목할 만한 공원과 광장, 그리고 공공건축 등의 사례에서 엿 볼 수 있는 익숙하지만 새로운 공동체성과 공공성의 공간언어에는 변화하지 않아야 할 공간의 공공성과 공동체성의 가치를 구현한 더불어 숲의 지혜와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도전정신이 담겨져 있다.
최근 지식사회에서 화제의 중심이 된 이슈가 챗지피티(ChatGPT)이다. 생성인공지능이 만들어 내는 경이로운 지식의 재창조이다. 하지만 미래의 초정보화시대가 펼쳐지더라도 우리는 지식의 한계에 대한 도전,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끝없는 상상, 그리고 동시대를 사는 인간과 공동체에 대한 존중과 신뢰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