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운 감독, '국내 1호' 여성조경가 정영선의 조경 철학 다루다
오는 17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땅에 쓰는 시'의 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지난 2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개최됐다. 간담회에는 정다운 감독, 김종신 PD와 더불어 정영선 조경가가 참석, 기자 및 관람객들과 소통하는 자리를 가졌다.
정영선 조경가는 지난 1973년 설립된 서울대 환경대학원 조경학과의 1기 졸업생이자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국토개발기술사(조경)를 취득한 여성 기술사이다.
정 조경가는 지난 1984년 서울시가 조경설계사무소와 정식으로 맺은 첫번째 설계계약인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아시아공원', '예술의 전당' 등의 설계공모를 시작으로 ▷여의도 샛강생태공원(1997) ▷선유도공원(2002) ▷서울 아산병원(2007) ▷경춘선 숲길(2016) 등 다양한 '핫플레이스'를 만들며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특히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설계 당시 서울시의 샛강 개발계획을 알게 된 정 조경가가 관계자들을 설득하고자 여러 생태학자들을 초빙, 담당자 앞에서 김수영 시인의 '풀'을 낭독하는 등 생태보존을 강력히 촉구한 것은 유명한 사례이다.
이와 더불어 선유도공원은 선유도에 설치돼 있던 '선유정수장' 시설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물'을 주제로 한 공원을 조성해 시민들에게 선사, 대한민국 조경 설계의 혁신을 가져온 공로로 세계조경가협회상, 미국조경가협회상, 대통령국민포장, 김수근문화상 등 수많은 상을 수상한 대표적인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 조경가의 조경 철학은 그 땅이 간직한 고유의 맥락을 읽어내 마치 시를 그리듯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삼국사기 속에 등장하는 '소박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儉而不陋華而不侈)' 전통 미학을 살려, 미나리아재비, 개쑥부쟁이 등 토종 야생화를 통해 한국적 경관을 현대적으로 완성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에는 세계조경가협회(IFLA)가 수여하는 '제프리 젤리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제프리 젤리코상은 세계 조경계에서 가장 영예로운 상으로 꼽히며, 대한민국에서 이를 수상한 것은 정 조경가가 최초다.
정 조경가는 "조경은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일꾼이 지혜를 모으고 힘을 다해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며 "조경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협력과 조화, 그리고 무엇보다 땅을 아끼고 사랑하는 심성"이라고 역설했다.
정다운 감독은 정 조경가의 작품들을 바탕으로 마치 한 편의 시를 음미하는 듯한 장면 및 서정적 연출들을 구사하며 건축과 도시, 그리고 자연을 연결하는 '조경'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정 감독은 "선유도공원, 양재천, 예술의 전당 등 내 인생 속의 수많은 중요한 공간들이 정영선 선생님의 손길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운명과도 같았다"며 "정 조경가의 철학을 통해 자연의 복원과 치유에 대한 희망을 풀어가고자 결심했다"고 밝혔다.
한국건설신문 황순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