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형 임대주택시장 재구조화, 시장 불황기에 마무리 지어야
기업형 임대주택시장 재구조화, 시장 불황기에 마무리 지어야
  •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경제금융연구실 부연구위원
  • 승인 2023.08.16 09: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계속되는 전세위기, 대안으로 '기업형 임대' 대두 중
임대료 인상 등 입주민 부담 최소화할 법적 장치 필요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경제금융연구실 부연구위원.

전세 보증금 미반환 문제, 통칭 ‘전세사기’가 연일 화두다. 보유한 자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임대 보증금을 일거에 잃을 위기에 처한 세입자들은 삶의 끈을 놓는 처연한 선택을 통해 사태의 심각성을 세상에 알렸다. 
정부는 피해자들을 구제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사태가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집주인의 전세금 반환 여건을 완화하는 ‘역전세 반환대출’을 1년간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로 하면서 사태가 잦아드는 듯하다.

하지만 전세와 관련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2020년 임대차 2법 개정 이후 가파르게 올랐던 전세가격이 2년 전부터 계속 떨어지고 있어서다. 
시세가 형성되지 않은 신축 빌라나 나홀로 아파트를 전세 놓는 과정에서 발생한 지금까지의 전세사기와는 달리 전세자금 역전세로 인한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태는 여전히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다. 집주인이 역전세 반환대출의 적격 대상자가 되기를 바라면서 기다리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상태다.

이렇듯 전세가 모든 주택 문제의 뇌관이 될 것이라는 경고는 그동안 학계·산업계 등 여러 분야에서 지적돼 왔다. 
일찍이 제대로 평가된 바는 없지만, 전체 전세보증금 규모는 시장에서 대체로 1,000조 원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올해 중앙정부 예산안 총액인 639.0조 원보다 56.5% 더 많은 금액이다. 실로 엄청난 금액을 임대차 계약서 한 장과 「주택임대차보호법」에 기대 개인 간 주고받는 상황이다.

이러한 전세 제도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의 합이 잘 맞았기 때문이다. 
집주인의 경우 전세금을 받아서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주택을 구입하는, 소위 갭투자를 하면 은행보다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전세 제도를 선택했다.

임차인 입장에서 매매와 전세, 보증부월세, 그리고 월세까지 이어진 주택 소유형태의 스펙트럼 중 지금까지 전세를 주된 차가 유형으로 삼았던 요인은 간단하다. 주택을 소유하거나 월세로 이용하는 것보다 저렴해서다. 
매매에 비해 전세가 저렴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주택을 매매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자산 이득은 불확실하지만, 각종 세금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기본적인 유지 비용은 반드시 발생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주택 사용권을 2년 동안 구매한다는 전세금의 생태적 특성상 매매가격보다 비싼 경우는 흔하지 않다. 
소유보다는 거주의 의미가 더 높은 연립·빌라·다세대 등에서 전세금과 매매가격이 유사하게 나타나는데, 특히 매매 수요가 적어 자산 이득을 취할 수 있는 확률이 더욱 줄어들기 때문에 전세의 선택율이 높은 편이다. 최근 전세사기가 이들 유형에 집중적으로 나타난 것도 전세금과 매매금의 격차가 줄어든 상황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한편 월세의 경우 대체로 전세와 월세 가격의 상호 교환율을 결정하는 전월세전환율이 전세자금대출 이율보다 비싸다는 점 때문에 월세와 전세를 비교했을 때 전세를 선택하는 비율이 높았다. 
그런데 전세가가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 매매가까지 함께 떨어지는 현상이 지속되면서 전세와 관련한 문제가 지속될 것이라 볼 수밖에 없는 지표들이 계속해서 시장에 경고를 주고 있다.

이렇듯 전세 제도 존재 자체에 시장이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 우리 시장에서 항상 제안됐던 모델이 바로 ‘기업형 임대주택’ 이다. 기업형 임대주택이란 과거 뉴스테이 정책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편하게 이해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자본이 풍부한 기업이 임대주택 여러 채를 소유하고 세입자들에게 기업의 임대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다. 기업이 임대주택을 보유하는데 소요되는 일체의 비용이나 위험 등을 부담하고 대신 세입자들에게 월세를 받아 하는 운영하는 형태다. 
물론 과거 여러 차례의 논의를 통해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는 등 상당한 진전이 있었지만 기업형 임대주택이 우리 시장에서 자리를 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면 미국과 일본 등 전세보다는 월세가 주를 이루고 관련 산업이 선진화된 지역에서는 기업형 임대가 일반화돼 있다. 미국에서는 과거부터 아파트 개발은 대체로 주택임대기업들이 도맡아 진행했고 해당 주택 유형의 상당수는 지금도 임대주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일본은 임대주택전문 리츠를 구성해 개발하거나 토지소유자의 토지신탁을 통한 임대주택 개발사업을 통해 임대주택기업이 탄탄한 성장세를 보였고 실제로 임대인의 80%가 임대 물건 관리를 전문기업에 위탁하는 등 사업 모델이 탄탄히 자리 잡고 있다.

개인 임대인에 비해 기업형 임대주택이 갖는 최대 장점은 신뢰와 안정성이라 할 수 있겠다. 최근 전세사기 문제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개인 임대인 중에서도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따라서 기업형 모델이 갖는 장점이 소구하는 바가 적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가계 자산의 상당부분이 부동산 관련 자산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전세금 역시 대부분의 가계에서는 평생 모은 자금의 거의 전부일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전세사기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논의 자리에서 ‘경제적 살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사안의 중요성을 각인시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임대주택 서비스 내에서도 기업 간 경쟁을 통해 여러 가지 스펙트럼이 생긴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국내·외 사례를 종합하면, 기업형 임대주택은 각 사의 전략에 따라 상이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이는 결국 임차인의 선택권을 확대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특히 최근에는 주택, 다시 말해 하드웨어 공급뿐 아니라 입주민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시행하면서 다양성이 더욱 확대되는 추세다.

반면 단점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임대료의 인상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우선 꼽을 수 있다. 월세 비율이 80%가 넘어 ‘세입자의 천국’으로 불렸던 독일 베를린에서는 외국인 근로자 유입 등으로 주택 수요가 급증해 임대료가 폭등하는 사례가 나타난 바 있다. 베를린 역시 기업형 임대주택이 보편화되어 있는데 시민들은 임대료 상승의 한가지 원인으로 임대 기업의 무분별한 임대료 인상을 꼽으며 기업에서 운영하는 임대 주택을 모두 국유화하자는 논의까지 이뤄졌던 전례가 있다. 
미국에서는 기업들이 임대형 단독주택 매입에 나서면서 단독주택 수요 확대로 인한 가격 상승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더불어 집값 움직임에 따라 자산 이득을 취하기 위해 대량으로 매입·매각하는 과정에서 매매가격 등락을 부추긴다는 의견도 있다.

따라서 국내에 기업형 임대주택을 본격적으로 도입한다면 먼저 임대료 인상으로 야기되는 입주민들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현행 등록임대사업자에게 허용된 임대료 인상률이 적정한지 여부를 떠나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임차인에게 부담을 지우는 행태를 막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임대주택이 매매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기업에 주는 혜택 등을 고심해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는 불황기가 아니면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집주인은 갭투자를 통해 주택을 매입해 자본이득을 취하려 할 것이며, 세입자는 체감 위험도가 거의 없는 가격 상승장에서 개인 임대인보다 비싼 임대료를 굳이 부담하려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시장이 어려울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개발 이익보다 수익률은 낮지만 안정적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 임대사업을 검토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뉴스테이 정책을 다시 돌아볼 것이라며 기업형 임대사업의 부활을 언급한 이번 정부는 지금과 같은 시장 불황기를 놓치지 말고 논의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