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조경 50년, 이제는 '품격'을 높여야 할 때
한국조경 50년, 이제는 '품격'을 높여야 할 때
  • 김태경 한국조경학회장
  • 승인 2023.03.02 09: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적 확장, 질적 향상 넘어 '품격' 그 자체를 높이는 것이 중요
코로나19, 기후변화, 공간 인식 변화 등 사회 변화도 널리 살펴야
김태경 제26대 ㈔한국조경학회 차기 학회장.
김태경 한국조경학회장.

지난해 12월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한국조경 50년 기념식이 열렸다. 1972년 12월, 한국조경학회의 창립으로 태어난 한국조경이 반세기를 넘기는 순간이었다.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공원조성이나 조경산업 등 몇 가지의 분야를 예시로 살펴보면 조경은 ‘1만 달러의 분야’라고 하겠다. 1인당 국민총생산이 OECD 국가의 기준인 2만 달러를 지나, 경제원조국인 3만 달러를 넘긴 지금의 눈으로 보면 조경학회가 창립될 당시에는 1천 달러에도 미치지 못했으니 그저 암담하기만 한 시기였다.
故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그곳의 주정부 공무원으로 있던 한국인 한 분을 청와대 경제1비서실로 불러 들였던 것을 시작으로 한국조경의 씨앗이 뿌려졌고, 중년이 된 지금의 모습을 보면 상당한 성과도 있었음을 자평하고 싶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조경공사라는 공공기관도 있었고, 지방정부는 물론이고 중앙정부에도 조경직 공무원이 배치돼 있다. 여기에 기능사부터 기술사에 이르기까지의 국가가 인정하는 자격제도도 있고, 50여개가 넘는 대학과 조경학과를 가진 특성화고교도 전국적으로 개설돼 있을 뿐더러 올해 초에는 2024년 리옹 세계기능경기대회 참가도 확정되는 등 조경 전문신문들과 잡지, 그리고 온라인 매체에 이르기까지 세상 곳곳에서 그 향기를 내뿜고 있다.

흔히 의식주(衣食住)를 생존의 3요소라고 한다. 이들은 국민소득과는 큰 관련이 없고, 생활이 정상궤도에 오르고도 한 동안은 이들에 집중할 수밖에 없으니 건설 중심의 세상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건설업의 한 분야로서 인간생존보다는 생활의 질을 높이는 것이 목적인 조경이 지금까지 버티면서 성장을 해온 것도 대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구조적으로는 토목사업이 대부분을 차지했으나 조경가가 총괄을 했던 청계천 복원 과정에서 건설산업에서도 잠시나마 질의 시대가 왔던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1만 달러까지는 양적 확장을, 2만 달러까지는 질적 향상을 가져왔다면 3만 달러의 벽을 넘어선 지금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이제는 품격을 높여야 한다. 
한창 공사가 진행되는 중에 무너져 내린 아파트의 한쪽 벽면이나 지금도 자투리땅에 만들어지고 있는 녹지와 휴게공간을 보면 생존기능으로서의 주(住)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듯,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는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그럴수록 열망 또한 강렬해지고, 미세먼지가 자욱한 날이 되면 녹색공간은 책임감으로 바뀌게 된다.

지난 3년은 인간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시간이었다. 그 기간에 유럽인들이 가장 많이 방문했었다는 곳이 주변의 공원과 정원이 있는 친구의 집이었다고 하니 3만 달러 시대의 조경은 새로운 틈새를 발견한 듯하다. 
미래의 세상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지만 코로나19의 형제뻘인 전염병의 지속적 유행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환경의 시대가 아닌가! 브렉시트(Brexit)가 유럽연합과 영국과의 사이에서 벌어진 국가 간의 일이지만 기후환경변화에 바탕을 둔 경제구조의 개편이 이것의 또다른 양상이다. 
환경문제의 글로벌화로 전세계의 관심을 하나로 집중시키고 있는 탄소중립은 선택을 넘어 정도를 정해야 하는 대상이 된 지 오래고 우리도 그것을 세계에 약속했다. 
그 실천방법은 발생을 줄이는 방법과 배출된 것을 가두는 방법이 있으며, 조경은 후자에 해당된다. 탄소중립에 직접 기여할 수도 있고, 전염성 병원균을 막는 데에도 상당한 역할을 수행하는 정원의 가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품격이라는 눈으로 보면 물리적 효과보다는 심리적 효과에 의미가 있음에 따라 3만 달러 시대에 만난 정원문화에 대한 관심은 폭증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해 본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대부분의 지역 광역단체장들이 내세운 정원조성 공약이나 지자체를 비롯한 각종 단체가 하고 있는 정원사 양성 교육과정 등이 그것의 방증이라 하겠다.

양(量)의 시대와 질(質)의 시대에는 너무 작아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정원이었지만 이제는 품격(品格)을 안겨주는 선물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려 한다. 
꽤 오랜 시간을 국가정책으로 시행했던 지역재생사업이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음을 생각하면서 이 사업의 다른 실행수단으로서 ‘정원’을 제안해 본다. 필자는 현재 정원의 지역재생 가능성을 몇 년째 실험하고 있고, 그 결과 자식들도 찾지 않는 지역의 빈집을 생존이라는 생각으로 채우는 것은 이미 지난 시대의 정신임을 느끼고 있다.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인 문화와 환경 그리고 공간이 필요로 하는 품격에 대하여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요즘 인간을 대체하고 있는 인공지능과 챗GPT, 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메타버스(metaverse)의 디지털 세상에 당당히 맞설 정원이라는 아날로그 무기를 준비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정리=한국건설신문 황순호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