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재값이 금값… 위기의 건설업을 구해야 한다
자재값이 금값… 위기의 건설업을 구해야 한다
  • 황순호 기자
  • 승인 2022.08.1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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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정연, 건설업종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 좌담회 개최
‘역대 최고 수준’ 인플레이션… 건설경기 위축 ‘심화’
국회 및 정부 차원의 신속하고 과감한 제도 정비 절실

최근 원자재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불거지는 갈등과 자금난으로 건설업계 종사자들의 한숨이 날로 깊어지고 있다.

지난 6월 7일에는 민주노총 화물운송연대가 1회전당 레미콘 운송료를 1만5,000원 인상할 것을 요구하며 집단운송거부를 감행했으며, 서울·경기·인천 철근콘크리트연합회 또한 공사비 20% 증액을 요구하며 지난달 12일 9개 시공사 10개 공사현장을 대상으로 파업을 실시하는 등 그야말로 ‘바람 잘 날’이 없다.

여기에 시멘트업계까지 시멘트 단가를 9월 1일자로 톤당 12~15% 인상하겠다고 통보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양상을 띠고 있다.

이에 건설정책연구원(이하 건정연)이 지난 10일 전문건설협회에서 ‘건설업종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 관련 좌담회를 개최했다. 자재가격 상승 등에 따른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의 쟁점들을 살펴보는 한편, 이를 도입하고 시행하기 위한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 납품단가 연동제의 개요 및 쟁점

‘납품단가 연동제’란 계약 기간 중 원부자재 가격이 변동될 경우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의 납품단가를 인상하는 제도다. 원자재 가격 상승의 부담을 대・중소기업, 또는 원・하도급 기업이 고르게 분담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제조업・건설업 등은 주로 수직적 하도급 거래관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히 건설업의 경우 전문건설업 계약액의 약 70%가 하도급을 통해 창출될 정도로 발주자 및 원도급자의 입김이 매우 강한 실정이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 및 제18대 국회에서부터 이미 해당 제도의 법제화를 위한 움직임이 있었으며, 특히 20대, 21대 국회에서는 김경만(2021년 11월), 강민국(올해 4월), 정태호(올해 7월) 국회의원 등이 납품단가 연동제 관련 하도급법 개정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반대하는 의견을 일부 수용해 ‘납품단가 조정협의제도’로 조정, 지난 2011년과 2021년 각각 중소기업단체의 조정신청 권한이 추가됐다.

그런데 해당 제도의 실효성 여부가 도마 위로 오르면서 이를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날로 커지기 시작했다.

공정위의 조사에 따르면 하도급업체 중 대금조정을 신청한 경험이 있는 업체는 전체의 39.7%로, 전문건설업체의 경우에는 그보다 낮은 2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금조정을 신청하지 않은 이유로는 ‘요청해도 거절할 것 같아서’가 35.7%로 가장 높았으며, ‘거래단절 또는 경쟁사 물량전환 우려’가 33.3%, ‘현행법상 대금조정 요청이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를 몰라서’가 21.5%로 그 뒤를 이었다.

조정을 신청한 경우에도 실제로 협의가 이루어진 경우는 전체의 21%, 아예 협의를 개시하지 않거나 협의 자체를 거부한 경우도 48.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원자재 가격 상승분이 단가조정에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경우도 전체의 57.7%에 달했다. 50% 이상 반영은 전체의 8.8%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납품단가 연동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문건설업을 중심으로 나오기 시작했으며 ▷시장경제 원리 ▷계약자유의 원칙 ▷소비자가격 상승 ▷해외 공급선 변경 ▷가격하락 시 적용 여부 등의 쟁점으로 찬반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 현행 입법안 평가 및 도입 대안

김경만 의원의 개정안은 원자재 기준 가격이 상승한 경우, 추가 발생 비용을 의무적으로 지급토록 하고 이를 위반 시 제재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공사원가에 재료비를 구성하는 원자재 품목의 세분화 및 상승률 확인이 어려워 건설업종에 완벽히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강민국 의원은 원재료의 가격 변동을 하도급대금에 반영하고, 표준하도급대금 연동계약서의 사용을 의무화할 것을 촉구했으나, 연동제에 대한 포괄 위임이라는 추상적인 내용과 더불어 구체적인 법적 근거 없이 표준계약서만으로는 건설업에서의 하도급 관계의 특성을 완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정태호 의원은 하도급계약서에 원재료의 가격 상승률이 3% 이상인 경우 의무적으로 하도급대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수록하는 한편, 위반 시 시정조치・과징금・벌금 등의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는 하도급법 제13조에 근거를 두고 있음에도 조문 성격과 배치된다는 점, 같은 법 제16조의2와 상충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또 정부의 ‘납품단가 조정 가이드북’ 배포 및 시범운영은 사적 자치의 원칙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협의 불성립 시 하도급분쟁조정협의회의 조정을 거치도록 하고 있으나 구속력이 없어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박선구 건정연 연구위원은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고자 납품대금 연동 의무화 및 미이행시 시정조치・과징금・벌금 등의 제재 및 강제 이행 수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납품단가 연동요건의 경우, 원자재 가격을 기준으로 하는 국회 입법안을 보완해 현행 국가계약법상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의 조정’과의 정합성을 확보하고자 그 기준을 ‘물가지수’로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이와 더불어 하도급법과 함께 ‘건설산업기본법’을 함께 개정, 법률 간 유기적인 연계를 통해 수급사업자를 보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박 연구위원은 “납품대금 연동제는 현재 상황에 대한 적용이 아닌 향후 원자재시장 불확실성을 대비하는 것”이라며 “납품대금 연동제가 대・중소기업, 원・하도급기업 간 상생과 공정을 이룩하는 새로운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납품대금 연동제에 대한 각계 의견

이어진 좌담회 토론에서는 각계 각층의 다양한 의견이 이어졌다.

박정수 전문건설협회 공정거래팀장은 “같은 대상이라도 현행 국가계약법에서는 물가, 하도급법에서는 원가로 표현하는 등 각 법에 따라 용어상의 혼란이 다소 존재하나, 원자재에 대한 명확한 기준 설정 및 그 가격 변동에 따라 그것을 공사비용에 신속히 반영토록 하는 것이 납품대금 연동제의 도입 목적”이라며 “시정조치・과징금・벌금 등의 강제 이행 수단을 확보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는 한편, 제도를 반영한 표준하도급계약서가 전 현장에서 쓰일 수 있도록 이를 의무화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하 중소기업중앙회 연구소 박사는 “지난 9일 중기부 장관이 참석한 상생협력 간담회에서 발굴된 많은 상생 방안들이 공론화, 납품단가 연동제 또한 공정한 계약문화 정착이라는 목적 아래 조금씩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며 “다만 미이행 시 ‘페널티’ 부여에 지나치게 치중돼 있는 점이 다소 아쉬우며, 대신 인센티브 등을 통해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건설산업기본법 36조에 3항을 신설해 이를 함께 다루도록 함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강신하 법무법인 상록 변호사는 “대한민국 헌법 119조에서 경제 질서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바, 납품단가 연동제가 과연 이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심층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며 주요 원자재에 대한 기준이 다소 모호한 점, 물가 상승에는 원자재 가격뿐만 아니라 인건비 등 다른 변수들도 크게 작용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원자재 가격 상승이 전체 공사비의 3% 이상일 때로 한정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좌담회에 참여한 기자단 역시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건설현장의 악재와 대금 조정 실태를 질의했다.

기자들은 제도 도입 취지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하는 한편, 지난 2014년 이미 공론화가 진행됐음에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뒤늦게 재조명된 점을 아쉬워하며 보다 효율적인 제도 도입을 위해서는 국가가 발주하는 공공 공사에서 납품단가 연동제를 적극 활용해 민간 공사에서도 자연스럽게 제도가 녹아들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유일한 건정연 원장 직무대행은 “윤석열 정부에서도 납품단가 연동제를 핵심 공약으로 제시하는 등 정부 및 국회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며 “찬반 양쪽 모두 현행 납품단가 조정협의제도의 낮은 실효성과 이를 대신할 새로운 개선방안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대를 형성, 납품대금 연동제 역시 현재 상황이 아닌 향후의 원자재시장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방향으로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설업종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 방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건정연 홈페이지에 게시된 RICON FOCUS 제8호 ‘건설업종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 검토 및 시사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건설신문 황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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