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한 공공공사 계약, 건설산업이 멍든다
불공정한 공공공사 계약, 건설산업이 멍든다
  • 황순호 기자
  • 승인 2022.07.11 1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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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한 국가계약법이 부실공사 유발 ‘원흉’
발주만 해놓고 ‘나 몰라라’… 공사관리 미흡
국가 조달계약 공정화, 종합사업관리제도 등 필요

부조리한 국가계약법이 공공공사 품질, 나아가 대한민국 건설업의 자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현재 하도급계약은 국가계약법, 근로기준법, 하도급법 등의 관련 법령들이 주관하고 있으나, 세 법령이 제대로 일원화돼 있지 않아 노동현장 및 계약 체결에서 이를 제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현재 발주자와 원도급자 간의 관계는 국가계약법, 원도급자와 하도급자 간의 관계는 하도급법으로 분리 규율돼 있는데, 이로 인해 동일한 발주요구조건 이행단계인 생산체계의 연대가 무너지면서 ▷발주자의 공익 추구 및 사전규제 등 계약공정 준수 책임 회피 ▷산업구조의 수직적 서열화 ▷사업 수행주체 및 업역간 정보 단절 등이 발생하고 있다.

어설픈 법체계로 인해 생명, 인권 및 재산권 등 헌법으로 보장돼 있는 국민 기본권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 현행 공공공사 계약체계 문제점

국가계약법 제5조의4에 따르면 수급사업자가 계약상대자로 하여금 해당 계약을 이행하는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근로기준법 등 법령을 준수토록 하는 내용을 계약서에 포함시킬 수 있다고 돼 있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등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근로기준법 제55조에 따라 휴일을 유급으로 보장해야 함에도 국가계약법과 하도급법과의 충돌로 인해 노동자에게 주휴수당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으며, 이를 요구하는 하도급업체의 파업행위에 대해 도리어 발주자 및 원사업자가 계약을 해지하겠다며 보증금 청구를 압박하는 실정이다.

공공공사를 체결하는 공공계약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 시행 중인 국가(지방)계약법에 따른 절차를 그대로 밟는다면, 발주자(국가)는 원도급자에게 사업을 진행할 권한과 책임을 일임하면서 시장 논리를 존중한다는 명목 하에 최소한의 사전 규제조차 실시하지 않게 된다.

법체계 이원화는 곧 국가가 공공조달의 투명성, 경제성, 공정성 및 안전성 등의 공익 확보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라 볼 수 있으며, 건설업 특성 상 하나의 현장에서 여러 공정이 동시에 진행됨에도 착공부터 완공까지 절차 등에 대한 규정을 정하지 않아 불공정 및 안전사고 발생의 불씨가 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견해이다.

국내 건설업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인 불법 재하도급 또한 여기에 그 원인이 있다.

하도급자의 재하도급은 법적으로 금지돼 있으나, 발주자가 원도급자의 공사 계획 및 진행 여부 등을 제대로 점검하지 않기 때문에 원도급자 역시 하도급자에게 공사를 하청한 뒤 이들의 재하도급을 방기하고, 이 과정에서 자재・장비・용역 등 하도급업체들과 현장 노동자들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건설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피라미드식’ 재하도급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공사비가 삭감되는 것도 문제점 중 하나다.

예를 들면, 국가가 원도급자에 10억원 규모의 공사를 발주하면 원도급자는 이를 9억원에 하도급자에 넘기고, 하도급자는 다시 7억5,000만원에 불법 재하도급을 실시한다. 이렇게 여러 단계의 재하도급을 거치면서 공사비가 점점 삭감되고, 점점 촉박해지는 비용과 공기 내에서 어떻게든 공사를 완성하기 위해 저질 원자재로 부실시공을 감행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기지연을 구실로 발주처-감리단-시공사의 품질검사 소홀 ▷현장 품질관리자에 무자격자 채용, 특정 시험기관 몰아주기 등 인사권한 남용 ▷규격 미달 자재 사용 등 안전품질 미확보 ▷하도급 업체에 품질 시험비 전가 등 무너진 공사윤리로 인해 공공공사뿐만 아니라 민간공사의 질까지 동반 하락, 나아가 대한민국 건설업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대한건축학회 국가계약법 개정 추진단이 2월 15일 개최한 1차 워크숍에서 종합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 한국건설신문
◇대한건축학회 국가계약법 개정 추진단이 2월 15일 개최한 1차 워크숍에서 종합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 한국건설신문

◼ 국가계약법 개정 위한 노력

이에 지난 2020년 8월 대한건축학회 내 국가계약 법제도 개혁 추진단(이하 추진단)이 발족, 국가(지방)계약법 개정안을 발의, 공공공사 발주에 대한 국가의 책임 이행 등을 촉구하고 나섰다.

추진단은 지난 2월 15일과 4월 28일 각각 1차, 2차 토론회를 갖고 건설공사 원・하도급 계약 내 불공정 관행들과 그 원인을 파악하는 한편, 향후 국가(지방)계약법의 개선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추진단의 국가(지방)계약법 개정안은 ▷발주자 책임 하에 안전과 공정거래 및 품질 관리 이행 ▷각 사업 단계별 안전사고 예방여부 검토 ▷시공 과정에서 실시간으로 안전 및 성능 감독 실시 ▷원도급자 및 하도급자의 설계변경에 대해 발주자가 책임지는 종합사업관리(PMC) 제도 도입 ▷건설산업 구조의 ‘소통’ 기반 수평적 융복합 협업구조 변화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 지난해 2월에는 우원식 국회의원이 ‘국가(지방)계약법 개정안’을 발의 ▷공사 내 이해관계자간 불공정 행위 예방 및 해결 노력(제3조의2 신설) ▷공사계약 체결시 하도급거래 계획 및 대금 지급에 대한 보증 서약서 작성(제11조제1항제7호 및 제8호 신설) ▷수급사업자의 하도급 대금 조정시 그 사무 감독 의무화(제13조제2항 신설) ▷하도급계약 체결시 해당 대금을 수급사업자에게 직접 지급(안 제15조제4항) 등으로, 공사계약 체결 후 원도급자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던 기존의 체제를 개선해 발주자(국가)가 공사계약을 감독, 그 책임을 이행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특히 하도급거래에 있어 하도급자가 부당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원도급자가 하도급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 해당 하도급자가 계약의 성립을 취소하거나 시정할 수 있도록 이의 신청을 허용케 하도록 하는 것이 개정안의 핵심이다.

미국에서는 연방조달규정 FAR 1.201을 통해 국가의 조달 원칙을 성명서로 규정, 공사의 모든 참여자들이 각자의 책임 범위 내에서 대등한 지위를 갖고 공사 진행을 결정할 책임과 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하도급자의 권리가 침해됐을 경우 발주자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상기한 PMC를 통해 사업 집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탈행위 등을 사전 예방하고자 국가가 직접 공사 과정을 감독함으로써 각 공사 주체들이 자발적으로 공정한 조달계약규정 일원화를 이룩하도록 유도했다.

실제로 주한미군 기지 이전사업의 경우 국방부에서 미국의 규정을 채택해 추진함으로써 국내에 PMC를 적극 도입함으로써 공공공사의 질과 신뢰도를 끌어올리고, 초기 기획 단계부터 전체 계획(Master Plan), 개발계획, 실행, 운영 및 유지관리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주기에 사업단계마다 사전, 집행과정 및 사후 관리에 이르기까지 비용 최적화, 공사기간, 품질 및 안전 향상 등을 실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평가받기도 했다.

안동수 한국건설안전환경실천연합 사무총장이 4월 28일 열린 ‘국가계약법 법체계 일원화를 위한 추진연대 활동방안 토론회’에서 저가 수주의 폐해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 = 한국건설신문
안동수 한국건설안전환경실천연합 사무총장이 4월 28일 열린 ‘국가계약법 법체계 일원화를 위한 추진연대 활동방안 토론회’에서 저가 수주의 폐해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 = 한국건설신문

오상근 추진단장은 1차 토론회에서 “현행 계약법 체계의 대대적인 정비, 특히 관련 법체계들을 일원화해 공사계약 체결시 발주자, 원도급자, 하도급자 등 각 주체들이 각자의 의무를 분명히 인지하고 또 그 책임을 이행하는 풍토가 조성되도록 해야 한다”며 “그동안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특정 사건에 치중해 법안을 제정하다보니 전반적인 상황을 아우르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모든 현장에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법 일원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동수 한국건설안전환경실천연합 사무총장 역시 2차 토론회에서 전문건설 내 불공정 계약 사례들을 소개하며 “발주처가 품질관리 절차를 무시하고 품질 시험비를 하도급 업체한테 모조리 떠넘기는 등의 관행이 있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영세한 규모의 하도급업체에 있어 너무나 큰 부담”이라며 “국가가 공공공사에서 하도급계약 및 안전에 대한 관리를 제대로 실시하는 등 공사윤리만 잘 지켜줬어도 성수대교 붕괴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씨랜드 청소녀수련원 화재사고,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사고 등 민간공사에서까지 공사윤리가 무너지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김병수 한국구매조달학회장은 이러한 상황을 두고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양적인 성장에만 집중한 나머지 법령 및 제도 개선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고 탄식하며 “하도급사 피해사례 등을 수집해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이를 현행 법체계의 모순 해결 등에 활용해야 한다”고 정부에 촉구했다.

 

한국건설신문 황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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