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처벌' 아닌 '예방' 우선해야
중대재해처벌법, '처벌' 아닌 '예방' 우선해야
  • 황순호
  • 승인 2022.05.2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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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건축학회-대한토목학회, 25일 중대재해처벌법 1차 토론회 열어
미국 모범사례 소개 및 현 중대재해처벌법 모순 지적
최창식 건축학회장인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한국건설신문
최창식 건축학회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한국건설신문

지난 1월 27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을 놓고 각계 각층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한건축학회와 대한토목학회는 지난 25일 서울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중대재해처벌법 - 처벌보다 예방이 우선이다' 토론회를 개최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나치게 처벌 일변도인 점, 의무주체가 불명확하고 불합리하다는 지적에 따라 이를 보완할 대책을 찾기 위함이다.
토론회에는 주승호 한국기술사회장, 최창식 대한건축학회장, 김철영 대한토목학회장 등 관‧학 관계자 및 송석준 국회의원이 직접 참석했으며, 그 밖에도 이상민 국회의원, 김영식 국회의원 등이 영상으로 축사를 보내는 등 토론회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주제발표에서는 데이비드 김 美 캐드머스社 한국대표 및 앤드류 강 캐드머스社 예방‧복원 부문 본부장이 미국의 산업 인프라 제도 예방 및 복원력 관련 제도와 그 사례를 소개했다.

앤드류 강 美 캐드머스社 본부장이 25일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토론회에서 미국의 산업 인프라 재해예방과 복원력 관련 제도 등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한국건설신문
앤드류 강 美 캐드머스社 본부장이 25일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토론회에서 미국의 산업 인프라 재해예방과 복원력 관련 제도 등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한국건설신문

데이비드 김 대표는 미국의 '중대사고처벌법(Serious Accident Penalty Act : SAPA)'을 예시로 들며, 우리나라의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안전을 '관리'하는 수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안전경영체제'를 수립해 이를 가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ESG 경영 등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중시하는 시선이 늘어남에 따라 안전‧보건관리 또한 경영의 일부로서 반드시 투자해야 할 항목으로 주목받는 바, 평시에도 안전경영관리시스템이 가동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 데이비드 김 대표의 설명이다.
미국의 경우 사회 인프라의 85% 이상을 민간이 소유하고 있는 만큼 중대재해, 특히 시민 대상 재해에 있어 관심이 높으며, 산업재해 인프라 분야를 국가인프라 재난재해 보호계획(NIPP) 아래 총 18개로 구분, 이에 대한 재난‧재해 처리 절차 등을 별도로 규정하는 등 재해의 대응 및 예방에 주력하고 있다.
데이비드 김 대표는 우리나라의 중대재해처벌법 또한 미국의 모범사례를 받아들여 ▷안전‧보건 목표와 경영방침 설정 ▷안전‧보건 업무 총괄‧관리 조직 설치 ▷현장 내 유해‧위험요소 확인 개선 절차 수립, 점검 등 조치 수행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안전‧보건관리자 등 전문인력 배치 등을 실시해 실질적인 안전사고 예방에 주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진우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가 25일 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토론회에서 중대재해처벌법과 건설안전의 상관관계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한국건설신문
정진우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가 25일 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토론회에서 중대재해처벌법과 건설안전의 상관관계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한국건설신문

정진우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현재 시행중인 중대재해처벌법의 모순과 그 실효성 여부를 지적했다.
정진우 교수는 애당초에 중대재해처벌법 자체가 국민들의 사회적 요구에 따라 정치적‧상징적 효과를 거두고자 급조된 법으로, 중대재해 예방 측면에서 그 실효성을 확보하기는 어렵다고 질타했다.
우리나라의 중대재해처벌법은 영국의 법인과실치사법을 모티프로 제정됐으나,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중대재해 발생의 결과적 가중범을 취하고 있음에도 일반적 결과적 가중범과 달리 안전보건조치의무 위반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어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으면 집행기관이 개입할 법적 근거가 없으며, 이에 따라 현장의 안전‧보건조치 의무 이행에 대한 예방 및 지도감독의 근거가 없다.
또한 산업안전보건법 등 이미 결과적 가중범을 규정하는 법이 존재함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 두 법령 간 충돌 문제 및 지나치게 가혹한 형량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중대재해 발생 시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 사망사고의 경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와 더불어 법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의무주체가 지나치게 불명확‧불합리해 재해 발생 시 누구에게 책임을 지울지 확답하기 어려운 점, 전체 사업장의 98.8%를 차지하는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 3년간 시행을 유예함으로써 실질적으로 해당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있는 점을 지적, "문제투성이인 중대재해처벌법을 폐지하고 차라리 기존 법령을 보완‧개선해 실질적인 법 집행이 이루어지도록 함이 좋다"고 주장했다.

25일 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정광량 한국기술사회 부회장을 좌장으로 하는 종합토론에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한국건설신문
25일 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정광량 한국기술사회 부회장을 좌장으로 하는 종합토론에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한국건설신문

이어진 종합토론에서는 정광량 한국기술사회 부회장을 좌장으로, ▷장덕배 한국기술사회 부회장 ▷김진선 한국기술사회 토목시공분회장 ▷오상근 서울과기대 건축공학과 교수 ▷고경환 삼성건설 EPC사업부 상임고문 ▷이정석 국토안전관리원 정책연구실장 ▷최수영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데이비드 김 美 캐드머스社 한국 대표 ▷정진우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 등이 참석해 의견을 나누었다.
장덕배 부회장은 "기존에 만들어진 안전 관련 매뉴얼도 싱가포르에서 벤치마킹해 활용할 정도로 수준이 뛰어난데 이를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미국의 선진 사례를 적극 참고해 우리나라의 실정에 걸맞는 법과 제도를 제정하는 한편, 이를 실행할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에게 안전 점검 역량 지원을 실시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진선 토목시공분회장은 "건설업은 작업 특성상 재해율, 특히 사망사고의 비중이 높으며, 이 중 70% 이상이 불완전‧불안한 시공이 원인"이라며 "현장에서의 안전관리 제도 및 시스템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바뀐 것이 없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발주자‧현장 책임자‧노동자 등 각 주체별로 안전사고 예방대책을 수립해 안전수칙 및 책임소재를 철저히 파악하고 준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상근 교수는 "붕괴‧추락‧전도‧화재 등 4대 안전사고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각 산업 및 공정별 위험요소를 파악해 이를 안전관리에 반영, 현장 노동자들에게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경환 상임고문은 "건설업의 경우 각 공사현장마다 특성‧공정‧위험요소 등의 변수가 다 다름에도 이를 경영자의 잘못으로 뭉뚱그려 처벌하려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며 "중대재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각 현장 상황을 잘 파악하고 각 주체의 책임소재를 구분해 사고 발생 시 그에 맞는 책임을 지도록 함이 옳다"고 주장했다.
이정석 정책연구실장은 "안전점검은 안전수칙 미준수자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실무자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안전수칙 및 관리절차를 '계도'하고 이를 준수케 함으로써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목적, 중대재해처벌법 역시 이러한 방향으로 제정돼야 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최수영 연구위원은 "안전사고는 현장 내 각 주체가 자신의 의무‧책임소재를 확실히 파악하고 이를 철저히 준수함으로써 예방하는 것,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은 의무와 그 의무를 수행할 주체가 불분명해 그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무조건 강력 처벌 일변도로 나가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고 탄식했다.
한편, 양 학회는 오는 6월 29일 국회에서 2차 토론회를 개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각계 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이를 반영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한국건설신문 황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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