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과연 누구를 위한 법인가?
중대재해처벌법, 과연 누구를 위한 법인가?
  • 황순호 기자
  • 승인 2022.01.10 13:3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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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법령과 충돌, 지나치게 가혹한 형량 등 문제점 다수
中企 “법이 추구하는 내용 애매모호, 이해할 수 없어”
경영자에 책임전가 아닌, 체계적 안전점검 통해 산업재해 근절해야

오는 27일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 건설업계 전체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4일 열린 2022년 첫 국무회의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른 산재사망사고 감축 방안’ 보고를 받고, “산업재해 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정부 공약에 턱없이 못 미친다”고 탄식했다.

이와 더불어 “중대재해처벌법의 현장 안착을 적극 지원하고, 안전 체계를 철저히 구축하는 한편 산업재해의 예방과 그 점검에 각별히 주의하라”고 주문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를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구분, 안전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발생한 재해에 대해 그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으며, 지난 2018년 12월 발생했던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등 산업재해 사망사고에 대한 여론에 힘입어 제정됐다.

재해 발생 시 안전 및 보건 확보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것이 이 법의 특징이다.

그런데 법에서 지정하는 ‘중대재해’의 기준에 대해 건설업계가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질병자에 대한 범위를 ‘유해인자에 따른 것’으로 모호하게 규정한다든지, 부상 및 직업성 질병에 있어서도 그 경중에 대한 기준이 없어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경상자에 대해서도 중상자에 준하는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 과연 형평성에 맞느냐는 논리이다.

‘경영책임자’의 범위 또한 논란의 소지가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경영책임자를 통상 대표이사 또는 안전담당 이사로 규정하고 있으나, 업체에서 경영책임자를 따로 선임한 경우에는 누구에게 그 책임이 있는가를 지정하지 않아 그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이에 건설업체 오너들은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나 최고안전보건책임자(Chief Safety Officer, 이하 CSO)를 선임하는 등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오너들이 줄줄이 경영에서 물러나면서 경영상의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중소 건설업체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12월 15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설명회에는 500명 이상의 중소기업 대표들이 참석해 정부 측 참석자들을 향해 “아무리 법 내용을 살펴봐도 도대체 언제, 어떤 상황에서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알 수 없다” “CSO를 고용할 여력이 안 되는 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그나마 대형 또는 중견 건설업체의 경우 로펌이나 내부 법무팀을 통해 법적 자문을 구하거나 CSO를 선임할 여력이 있지만, 중소 건설업체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다.

심지어 이들의 경우 오너 겸 대표이사 한 명이 복수의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이 구속될 경우 기업 전체의 업무가 마비될 우려도 있다.

이를 두고 한 중견 건설업체 관계자는 “업계 내에서 CSO를 ‘빨간줄 임원’이라고 부르는 실정”이라고 한탄했다. 산업재해 발생 시 오너를 대신해 법적 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는다는 ‘방패’라는 의미이다.

실제로 지난해 4월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이 매출액 상위 1,000대 비금융기업을 대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의 영향 및 개정의견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기업의 56%가 개정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바 있으며, 그 이유에 대한 응답이 ‘사업주・경영책임자의 책임 범위를 넘어선 의무 규정’ ‘모호한 의무로 인한 법 준수의 어려움’이 각각 29.0%와 24.7%를 차지했다.

이와 더불어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의무의 모호함을 지적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 등장하는 ‘충실하게’ ‘적절히’ ‘급박한’ 등의 표현이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을 삼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어 이를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노동부에서 지난해 11월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을 앞두고 관련 해설서를 배포하긴 했으나,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여전히 그 범위를 명확히 알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법조계에서도 기존 법령과의 충돌 문제 등을 우려하고 있다. 이미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해 산업현장의 안전 수칙 제정 및 역량 강화에 노력하고 있으며, 산업재해 발생 시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실시하고 있음에도 굳이 또 새로운 법령을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이다.

형량 수위도 문제다. 미국・영국・일본・독일・프랑스 등 소위 산업안전 선진국들의 산업재해 처벌 형량과 비교했을 때 중대재해처벌법의 형량은 그 도가 지나치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본지 취재 결과 미국은 7,000달러 이하의 벌금형, 영국은 2년 이하의 금고 또는 상한 없는 벌금형, 일본은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엔 이하의 벌금형, 독일은 5,000유로 이하의 벌금형, 프랑스는 1만유로 이하의 벌금형이 전부인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중대재해처벌법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 심지어 사망사고 발생 시에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형량이 대폭 늘어난다.

건설현장 내 안전수칙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 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공감하지만 죗값에 비해 형량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계 또한 이 법령에 대해 ‘유명무실한 종이호랑이와 같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사업장 중 상시고용자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98.8%로, 그 중 5인 미만의 영세 사업장이 전체 79.8%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건설업의 경우 현행법상 1만㎡ 미만의 중·소형 공사장에 민간 건축공사장 안전관리 의무화 규정이 적용되지 않아 이들에 대한 안전관리가 미흡한 실정이다.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민간 건축공사장 안전사고 96건 중 77%에 달하는 74건이 중·소형 공사장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중대재해처벌법에서도 50인 미만의 사업장에 대해 2024년 1월까지 시행을 유예하는 등 영세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를 전혀 지켜주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산업재해 발생 시 인과관계를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경영책임자에게 처벌을 부과하다 보니 고혈압・당뇨 등의 기저질환을 가졌거나 고령인 노동자들의 투입을 꺼리는 등 법령 시행에 대한 리스크가 고스란히 건설노동자에게 돌아가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안전을 지킨다는 취지로 제정된 법령이 오히려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셈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산업재해 근절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체계적인 안전 점검 시스템의 확립’이라고 밝혔다.

모든 공사장에 대한 체계적인 안전관리 계획 수립과 더불어 사전작업허가제를 통한 실질적인 감리 시행  등을 통해 현장 내에서 자발적으로 안전수칙을 준수토록 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말로 산업재해를 근절하고 싶다면 기업 경영자들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 내 위험요소를 점검하고 배제해 재해 자체를 예방하는 게 더 주효하다고 생각한다”며, “기업 경영자들이 산업재해를 조장하는 것도 아니고 산업재해의 모든 책임을 기업 경영자들에게 전가하는 것이 과연 산업재해 근절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라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한국건설신문 황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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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우 2022-01-10 18:26:15
유익한 기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