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중대산업재해 수사, 밭 가는 일은 머슴에게 물어봐야
[기자수첩] 중대산업재해 수사, 밭 가는 일은 머슴에게 물어봐야
  • 황순호
  • 승인 2021.09.2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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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설신문 황순호 기자.
한국건설신문 황순호 기자.

고사성어 중에 ‘경당문노(耕當問奴)’라는 말이 있다. 밭 가는 일은 마땅히 머슴에게 물어보라는 말로, 어떤 일을 의논할 때는 반드시 그 전문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는 뜻이다.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를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가리키는 ‘중대산업재해’, 공중이용시설 또는 대중교통 등과 관련된 사고인 ‘중대시민재해’로 구별하고 있다. 이 중 중대산업재해는 고용노동부 소속 근로감독관이 수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이를 위해 조직을 개편하고 하위 법령을 마련하고 있다.
근로감독관은 근로기준법 제105조에 따라 근로기준법 또는 그 밖의 노동관계법령에 따른 현장조사, 서류의 제출, 심문 등의 수사를 검사와 함께 전담 수행하는 특별사법경찰관리로, 이는 ILO 협약에 근거해 노동자의 권리구제와 사업주 처벌을 병행하며 노동질서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과 국민의힘 박대수 의원이 발의한 법안 모두 산업재해 발생 시 근로감독관의 전담수사권을 보장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산업재해에 있어 고용노동부와 근로감독관이 수사를 전담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처사이며, 이는 근로감독관의 직무 수행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조치이다. 또한 중대재해처벌법에서 고용노동부가 수사권을 독점한다는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니다. 중대시민재해는 경찰이 수사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으며, 중대시민재해와 중대산업재해는 엄연히 별개의 사건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도 산업현장에서는 여전히 수많은 노동자들이 안전 불감증에 의한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안 된다. 지금이라도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죽어가는 일을 막아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누구도 아닌 근로감독관이 산업재해의 수사를 담당해야 한다. 밭 가는 일은 종에게 맡겨야 한다는 심경지의 진언을 무시한 채, 백면서생의 말만 듣다가 끝내 패망한 송 효무제를 다시 한 번 떠올려야 할 때다.

 

한국건설신문 황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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