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칼럼] 식물, 얼마나 아십니까?
[조경칼럼] 식물, 얼마나 아십니까?
  • 이근향 서울식물원 전시교육과장
  • 승인 2021.08.1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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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향 서울식물원 전시교육과장
이근향 서울식물원 전시교육과장

식물을 안다는 것이 단지 이름과 식별에 관한 것이라면 그리 걱정할 거 없다. 길가에서 마주친 식물 이름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쉽게 알 수 있고 궁금한 내용은 검색을 통해 무한한 지식으로 장전할 수 있는 요즈음이다.

그러나 축적된 정보의 총량이 증가했을 뿐이지 식물에 대한 이해나 기본 철학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식물이름 안다는 것에 언감생심 철학을 갖다 대다니 지나친 확대라고 생각하겠지만 식물과 철학과의 관계는 우리 예상보다 꽤 오래되고 깊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 테오프라스투스(B.C.371~287)는 식물의 이름을 짓는 일에 진지하게 임한 최초의 철학자였다. 당시 그리스 사람들이 마법과 의약품 등 현실적인 측면에서 관심을 가졌던 것에 반해 테오프라스투스는 우리 주변에 어떤 식물이 있을까? 식물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의문을 가지고 식물 자체를 탐구하였다.

특히 그가 식물을 나무, 관목, 아관목, 초화류 네 가지로 분류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사용해 왔던 분류 체계의 시작이 철학자의 고안이었고, 식물계의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여정이 철학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우리가 알고 있는 린네 역시 식물학을 법칙과 규칙에 기초한 학문으로 보았으며, 라틴어 학명 규칙을 창안하기 2년 전인 1751년 '식물철학'을 펴냈다. 식물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철학자이자 교육자였던 장 자크 루소는 그의 저서 '고백론'에서 “린네는 박물학자로서 그리고 철학자로서 식물학을 연구한 유일한 사람이다”라고 언급하였다. 이렇듯 철학과 식물학의 만남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되풀이 되었다. 

한편 식물에 이름을 부여하고 식별하려는 노력은 식물 삽화를 통해 더욱 발전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식물세밀화로 부르는 식물 묘사의 전통은 그리스 식물학자이자 의사였던 디오스코리데스(A.D. 40~90?)의 '약물지'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는 식물의 이름과 유래, 서식환경, 의학적 특성에 대해 명확히 서술하면서 후세에 식물식별이 가능하도록 식물 삽화를 포함하였다.

유럽에 널리 읽힌 최초 식물의학서는 1530년 오토 브룬펠스가 쓴 '식물의 생태도'로, 성공을 거둔 이유는 화가 한스 바이디츠가 기존의 그림을 복제하지 않고 살아있는 식물을 직접 보고 그린 그림 때문이었다. 이 식물세밀화가 식물연구의 체계적인 방식을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요즘 식물이 대세라고 한다. 하지만 식물에 대한 관심이 시대를 정의하는 특징으로 자리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식물의 긴 역사와 인간과의 관계맺음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다. 이천년 전 테오프라스투스가 살아있는 식물을 직접 관찰하고 식물간의 유사성과 차이를 논의하기 시작하면서 세상의 이목을 받게 된 식물, 이제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도, 삶의 윤활유로서도 반드시 습득해야 하는 필수적인 지식으로 간주하자.

바야흐로 식물의 활력에 귀 기울이고, 존중할 시간이다. 

 

정리=한국건설신문 황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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