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건설현장의 '안전 정상화'는 '시공 정상화'로부터
[기고] 건설현장의 '안전 정상화'는 '시공 정상화'로부터
  • 심규범 건설근로자공제회 조사연구센터장
  • 승인 2021.06.29 16:2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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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임금제를 통해 노동자에게 일정 수준 임금 보장해야
불법 하도급 및 임금체불, 이제는 사라져야 할 때
심규범 건설근로자공제회 조사연구센터장.

그 동안 건설현장의 산재예방을 위해 기술적 금전적 지원, 교육 실시, 규제 및 처벌 강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1.76‰이던 2016년의 건설업 사망만인률은 2020년 2.48‰로 오히려 높아졌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중대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게 아닌지 되짚어 보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다. 

늘 그렇듯 의문도, 그리고 의문에 대한 해답도 모두 건설현장에 있다. 현장에서 만나본 발주자, 원수급자, 하도급자, 팀/반장, 노동자 모두가 한 목소리로 지적하는 것이 있다. 안전수칙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늘 ‘빨리 빨리’ 내몰리게 된다는 것과 그 원인이 바로 ‘다단계 하도급’과 그 과정에서 삭감되는 '노무비’라는 것이다.

예컨대, 저가 수주경쟁으로 다단계 하도급을 거치면서 ‘100원 ⇒ 82원 ⇒ 63원 ⇒ 54원 ⇒ …’으로 실공사비가 삭감될수록 말단의 시공자는 그에 ‘맞춰 먹기 위해’ 무리한 공기 단축, 작업팀 축소, 저임금 외국인 불법체류자 투입, 저질 자재 사용, 위험한 작업의 동시 수행 등 온갖 편법을 동원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안전은 그저 거추장스런 단어일 뿐이다. 오랜 경험을 가진 숙련공들이 용접 작업과 유증기 작업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과 안전대 없는 고소 작업이 위험하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다단계 도급과정에서 삭감된 돈이 이들을 절박한 상황으로 내몰았다고 보는 게 보다 현실적이리라.

‘그 돈으로는 어쩔 수 없다’라며 애써 스스로를 정당화할 뿐이다. 오죽하면 ‘안전은 사치’라고 공공연히 떠들기까지 할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다단계 하도급과 반으로 줄어든 공사비는 그대로 둔 채, 무턱대고 처벌과 규제와 감독을 강화한다고 해서 정말로 현장 내 안전이 보장될 수 있을까.

혹자는 ‘관리 감독만 잘 하면 공사비가 얼마나 들건 시공과 안전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호언장담하기도 하지만, 일선에서 일하는 현장 감독관들은 ‘잘못 꿴 첫 단추를 바로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털어놓는다. 저가수주 현장에 참여한 모두가 처음부터 ‘이런 상황에서 정상시공은 불가능하다’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느닷없이 시방서 규정, 안전관련 제반 규칙, 합법 고용 등을 준수하라고 다그친다면 시공자는 공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규정대로 공사를 진행하려면 새로운 시공자로 대체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만 3~4개월이 소요된다. 그리고 그만큼 공기가 더욱 단축된다.

이러한 속내를 잘 알고 있는 감독관이 선택할 수 있는 차악의 대책은 ‘당장 건물이 무너져서 누군가 죽지 않는 한 현실에서 눈을 돌려 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새로 지은 아파트에서 물이 새고, 어이없는 부실시공이 드러나고, 공공공사 현장에서조차 불법 고용이 만연하는 등 우리가 그렇게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건설현장 내 사망사고가 줄지 않는 근본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건설현장에서 공사와 안전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다. 안전을 정상화하려면 먼저 시공을 정상화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다단계 하도급을 억제하고 정상시공에 필요한 ‘제값’을 확보해 시공자까지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첫 단추’다. 하지만 원수급자에게 제값을 준다고 그것이 하도급자와 노동자 본인에게까지 저절로 전달되지는 않는다. 각 단계에서 벌어지는, 이른바 ‘똥떼기’를 막지 못하는 한 실현될 수 없는 것이다.

목적을 달성하려면 별도의 법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국의 프리베일링 웨이지(prevailing wage) 제도다. 정부가 공표한 직종별 임금 이상을 노동자에게 지급하도록 의무화(1931년)하고, 위반 시 입찰을 제한하는 제도다.

90년 간 축적된 경험과 통계에 의하면, 가격경쟁에서 가장 취약한 노무비의 삭감을 막자 공공공사의 낙찰률이 90% 이상으로 상승해 원수급자는 적정공사비를 확보할 수 있었고, 공표된 임금 이상의 숙련도를 지닌 내국인 기능공을 공사현장에 효율적으로 투입할 수 있었으며, 노동자에게 직접 임금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하도급자의 이윤도 함께 보장됐다.

임금을 삭감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던 하도급이 줄어들었고, ‘삭감된 돈’ 때문에 야기되던 현장 내 폐단들이 사라졌다. 보다 합리적인 기술경쟁을 통해 선정된 우수업체가 내국인 숙련인력을 고용해 시공을 정상화하면서 안전 역시 정상화, 일반재해는 50%, 사망재해는 15% 감소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제 우리도 미국의 제도를 벤치마킹해 정부가 공표하는 적정임금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의무화하는 ‘건설노동자 적정임금제’의 도입을 추진해야 할 때다. 2017년의 서울시에서 시범사업을 진행한 결과 건설업체의 적정공사비 확보(낙찰률 87%), 내국인 우선 고용(내국인 95%), 품질 및 생산성 제고, 직접 시공, 산재 감소 등의 효과가 나타났다.

발주자인 서울시는 제값을 지불한 대신 시방서와 안전규정을 엄격히 적용했으며, 건설업체는 같은 임금이면 내국인을 고용하게 되었고, 임금 삭감을 통한 저가입찰과 다단계 하도급이 줄어들었다. 난생 처음으로 주휴수당까지 받은 노동자들은 높은 사기와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성심성의껏 일하며 제반 규정을 준수했다. 발주자의 엄격한 기준에 맞추기 위해 시공업체는 작업속도를 높이는 ‘물량단위 성과급 방식’ 대신 숙련인력에 의한 직접시공을 통해 품질과 안전을 모두 확보할 수 있었다. 

요컨대, 첫 단추인 정상적인 시공 여건을 조성하고 엄격한 품질 및 안전 기준을 요구하면, 비로소 안전규정의 준수와 제반 산재예방 노력이 어우러져 작동하면서, 마침내 ‘안전한 현장’이 구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시공 정상화’를 통해 ‘안전 정상화’를 견인할 적정임금제의 조속한 도입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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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 2021-06-30 10:03:24
좋은 글 감사합니다. 후속기사 원해요!

김철호 2021-06-30 17:42:46
핵심!!
인간답게 살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