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칼럼] 관성의 조경을 넘어
[조경칼럼] 관성의 조경을 넘어
  • 정욱주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승인 2020.02.26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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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주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정욱주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버드나무 심지 말란다. 꽃가루 문제가 있단다. 자작나무 심지 말란다. 하자 많이 난단다. 튤립나무 심지 말란다. 넘어져서 사람 죽는단다. 은행나무 심지 말란다. 냄새 난단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닐 테지만, 이런 조언들이 쌓이면 결국 활용할 식물재료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생육조건에 맞는다면 이식에 신경 쓸 일이지 무조건 안 된다고 할 필요는 없다. 중부지방에 자생하는 약 3,000여종의 식물 중 조경공사에 쓰이는 80%의 물량이 30종 내외라는 사실은 하자를 줄이려는 노력이라기보다는 공사의 수익성이 고려된 것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조경은 자연이니 조금 촌스러워야 맛이야”, “문주, 소나무, 석가산이 빠지면 아파트조경이라고 볼 수 없지”, “시골가면 흔히 있는 풀 같은 것은 좋은 식물재료라고 볼 수 없지. 눈에 확 띄는 철쭉이나 팬지 같은 게 최고지.” 
여기서 언급된 항목은 편견에 가깝다. 일반인 뿐 아니라 분야전문가, 관련 공무원들에게서도 쉽게 들을 수 있는 훈수이다. 이것이 훈수로 끝나지 않고 설계 작업의 예봉을 꺾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바 이들은 수종제한과 마찬가지로 조경 결과물들이 편향되도록 하는 원흉들이다.
“모든 교목은 지하고를 2m 이상으로 해야 되니 그 아래로 내려오는 가지는 다 전정해야 돼”, “교목은 나뭇가지가 겹칠 정도로 붙여 심으면 안 돼”, “정원석은 수평을 딱딱 맞춰서 쌓아야지.”
조경시공이 한창인 현장. 전국의 농원에서 앞태 뒤태 살피며 정성스레 골라온 나무와 풀들, 채석장까지 직접 방문해서 선정한 포장재와 자연석들, 비싸지만 퀄리티를 위해 투자한 프리미엄 하드우드 데크 재료들이 집결한다. 
감리없는 최악의 경우를 상상해보자. 다양한 수형을 골라왔건만, 전정을 통해 모두 동글동글해졌다. 아래로 쳐져 있던 가지는 다 전정됐다. 도면에 표현된 식재간격은 무시되고, 등간격으로 심어졌다. 한술 더 떠서 초화류들은 마치 모내기한 것처럼 오와 열을 맞췄고, 흙이 드러나는 공간에는 짙은 회색 송이로 채워졌다.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 방식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설계가 뭐라고 돼있든지 이 방식으로 귀결된다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조경을 통해 양질의 정주환경을 만드는 것이 조경 분야가 지향하는 가치라면, 이 과정에서 모든 관행과 편견에 대한 저항과 투쟁이 필수적이다. 
결과를 다르게 하고 싶으면 접근을 달리해야 할 것이고, 결과가 달라지면 위상도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정리 = 한국건설신문 선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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